[인터뷰]박성재 PD, “개그맨들의 엄격한 기수 문화, 종속 관계…‘코빅’엔 없죠”

[헤럴드 경제=고승희·정희조 기자]지난 2011년 9월 첫 방송된 tvN ‘코미디빅리그’(이하 코빅)은 올해로 5년차를 맞았다. 방송 코미디가 ‘개그콘서트’(KBS2)의 아성을 꺾지 못할 당시 태어나 ‘개콘’의 위세가 꺾이고,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이 고군분투하는 틈바구니에서 프로그램은 매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다. 채널 내부에선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한 시청률(3%대)을 내는 ‘효자상품’”으로 불린다.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박성재 PD는 “시청률이 올랐다지만 여전히 꼴등”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실력있는 개그맨들이 설 수 있는” 프로그램의 방식이 ‘코빅’의 경쟁력을 만들었다고 봤다. 


‘코빅’에는 타사 코미디 프로그램에는 없는 독특한 시스템과 문화가 있다. 건강한 경쟁을 유도하는 서바이벌과 순위제를 도입했다. 엄격한 수직구조(선후배, PD와 개그맨)를 개선한 열린 문화가 어우러지며 ‘코빅’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한국 코미디가 독특하죠. 방송사가 지나치게 힘을 가졌어요. 개그맨들을 선발하는 공채 시스템이 엄격한 문화를 만들어요. 여긴 신입은 뽑지만 공채는 없어요. 신입 개그맨에게 ‘넌 공채 몇 기야’라고 하는 게 아니라 ‘넌 개그맨이야’라고 말하죠. 선후배 관계는 있지만 기수는 없어요. 기수로 인한 군대 문화를 만들지 않고, 패밀리나 파벌의 형성을 꺼리는 그룹(CJ)의 조직문화도 영향을 미쳤죠”


‘코빅’은 방송사의 공채 시스템 안에서 성장한 지상파 출신 개그맨과 KBS 출신 김석현 국장을 필두로 모여 터를 잡았다. 박성재 PD 역시 KBS 출신이다. “‘개콘’만이 전부”이고, “그것만이 밥줄”이라 여겨 단 한 번도 울타리를 벗어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개그맨들은 이 프로그램과 모험을 시작했다. 시청률이 0.5%에 머물던 당시 동시간대 40%를 넘나들던 KBS2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 ‘왕가네 식구들’ 등을 묵묵히 상대했다. 타사의 스카웃 제의도 마다한 개그맨들도 숱하다.

김석현 국장을 비롯한 ‘코빅’의 PD들은 함께 한 개그맨들을 위해 지상파 방송사가 가지 않은 길을 갔다. 박 PD는 “저 역시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기수로 군림하는 선후배 관계나 권위적인 제작진과 순응하는 개그맨의 관계를 좋아하진 않았다”고 한다.

‘코빅’은 방송사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왔던 한국만의 코미디 환경에서 벗어났다. 한국형 코미디는 방송사가 개그맨을 선발하고, 훈련시키고, 스타로 키워내는 것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관리 감독한다. 소속된 방송사의 코미디 프로그램 이외의 예능 등에는 출연이 어려워 법벌이조차 힘든 개그맨들이 적지 않다. 무대에 올라 코너를 선보이기 까지의 과정은 무한경쟁의 연속이다. 지금은 어디나 환경이 나아졌다지만, 수십년간 지배구조는 이어졌다. 개그맨의 생사여탈권을 프로그램 PD가 쥐고 있으니 갑을관계가 형성된다.

“개그맨들도 자유로운 개인이잖아요. 현재의 방송 코미디는 내용을 떠나 생활ㆍ관계설정에 있어 제작진의 권위가 세서 종속된 구조가 나타나죠. ‘코빅’에서도 다른 방송사처럼 연습도 하고 코너 검사를 해요. 하지만 코너가 없는 개그맨들이 직장인처럼 출근해 청소를 하거나 선배들의 뒤치닥꺼리를 못 하게 해요. 신인들의 경우 오히려 출근하지 말라고 하죠. 앵벌이 하듯이 개그를 할 수는 없잖아요.”

‘코빅’의 열린 문화는 방청객의 결정을 통해 순위가 매겨지는 경쟁 시스템과 만나 빛을 발한다. 대중의 평가와 만난 시스템이 개그맨들을 스스로 성장하게 한다. 흔히 코미디언이 리얼 버라이어티 등 예능으로의 외도가 잦아지면 특유의 감각을 잊는다고 한다. “버라이어티에선 10초 짜리 성대모사로 석 달을 먹고 살 수 있으니 그 맛을 본 개그맨들은 코미디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박 PD는 말했다. 하지만 ‘코빅’에 출연하는 안영미, 장도연, 유상무 등 코미디언들은 방송사를 넘나들며 서로 다른 영역에서 만나도 어색함이 없다.

“순위제의 장점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분야를 넓혀 활동하다가도 자기 스스로 깨우치며 본업으로 돌아오는 친구들이 많아요. 일등하던 코너가 10등 아래로 내려가고, 박수 소리가 안 나면 자존심도 상하겠죠.“

제작진은 권위를 앞세우지 않은 평등한 관계 설정, 보다 자유로운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며 코미디언들에게 판을 만들어 준다. 원칙은 철저하게 “실력있는 사람들” 위주로 ‘코빅’의 무대에 세운다는 것이다. 개그맨들은 박 PD가 추구하는 코미디의 방향성과 뜻을 맞춰 ‘코빅’을 만든다. 전체 코너를 아울러 살펴보면 ‘코빅’ 코미디의 기본은 ‘논리’다.

“개그맨들에게 ‘어쨌든’, ‘하여튼’, ‘이젠 됐고’ 등의 단어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굉장히 비논리적인 언어거든요.”

박 PD는 “코미디에도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전개, 잘 다듬어진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잘 짜여진 상황에 논리적인 스토리를 입혀 납득할 만한 웃음을 나눈다. 애드리브가 개입할 공간이 없다. “‘코빅’엔 애드리브가 없어요. 애드리브가 한 번 치고 나오면 극의 흐름이 깨지거든요. 감정선을 살려 애써 만들어놓은 이야기가 실패하는거죠. 공개 코미디 형식으로 현장에서 진행하지만, 시청자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기에 돌발적으로 나오는 현장성 애드리브, 맥락없이 나오는 애드리브를 경계하죠.”

대중의 트렌드를 기민하게 포착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매주 같은 설정을 반복하는 방송 코미디의 지루함을 지우기 위해 “기본틀이 같은 코너에 매주 장소 변경이나 새로운 상황 설정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

하루에 연속 세 편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영되다 보니 장르 자체의 경쟁력 하락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세상에 누가 하루에 코미디 프로그램을 세 시간 이상 보고 있겠어요.“ 박 PD 역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코미디 시장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자신한다.

“‘SNL’의 경우 현재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뿐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웃긴 걸 참 좋아해요. 웃음과 재미에 대한 욕구가 있어요. 예능이 더 재미있어지기 위해선 똘끼 많은 코미디언들이 배출돼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콘텐츠를 사고 파는 시대가 왔고, 생각을 바꾸면 개그맨들에게도 기회가 많아요. 지금은 무대가 너무 없어 아쉽지만, ‘코빅’이 개그 문화로는 독특한 케이스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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