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도세자’ 이야기는 여태껏 너무나 많은 형태로 재구성돼 우리에게 전해졌다. 이렇게 접하고 또 접하게 되는 ‘사도세자’의 비극은 자극적이면서도 부자간의 엇갈린 인연의 공감대를 자아내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떠한 역사 이야기보다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로 다뤄지기에 충분하다.
영조는 기행을 일삼는 둘째 아들 이선을 뒤주에 가둬 8일 만에 굶어 죽게 만든 아버지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부자사이이면서도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의 주인공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를 통해 관객들에게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슬픈 가족사를 그만의 색깔로 보여준다.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사도세자의 심경을 가장 잘 드러낸 한 마디다. 사도세자는 어떤 순간에도 왕의 후계자로서 품위를 유지해야만 했다. 이는 학문과 예법을 중시하는 영조가 원하는 아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성격인 세자가 영조에게는 그저 탕아로만 비춰졌고, 이에 영조는 사도를 매정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다른 수 많은 ‘사도세자’ 이야기와 다른 점은 ‘사도’가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심리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춰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점이다. 영조는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자신처럼 아들 역시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길 희망했다. 아버지로서 아들이 자신을 닮길 바라는 건 일종의 본능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유롭고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세자는 완벽주의에 엄격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이는 영조와 세자가 갈등관계로 얽히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사도’는 ‘왜’ 비극이 시작됐는지를 중시하기 보단 ‘어떻게’ 비극이 펼쳐졌는지에 대해 더욱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회학의 기본 정신이 ‘왜?’에 있다면, 인문학의 기본 정신은 ‘어떻게?’에 있다.
‘사도’의 메시지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와도 일맥상통하다. 서로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록 어긋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여느 부모와 자식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사도’가 폭넓은 관객층에게 관심을 받는 영화의 요인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는 어머니와 친한 자식보다 아버지와 친한 자식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사도’는 역사적 사실만을 재현하지 않고 오늘날 우리들 가족사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사도’는 사람 사이의 관계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아인과 송강호의 삐걱대는 관계의 열연으로 이 메시지는 더욱 몰입도 있게 전달된다. 뒤주에 갇혀 날이 갈수록 피폐해가는 세자의 심리를 애달프게 연기한 유아인에게 찬사가 아깝지 않은 이유는 그의 광기어린 연기가 관객들을 스크린 속으로 끌어당기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뒤주에서 숨을 거둔 세자를 바라보며 독백을 하는 영조의 심정은 스크린 관객들에게 ‘체감’으로 다가온다.
‘사도’는 배우들의 심도 있는 연기와 이준익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어우러져 관객들을 스크린 너머의 당시로 초대한다. 이 영화는 인물들의 관계를 치밀하게 다뤄 슬프면서도 공감 가는 이야기를 전한다. 3D 영화가 성행하는 요즘, ‘사도’는 특별한 기술 없이도 인물들 내면의 통찰로 적어도 125분간은 관객 모두를 영조이자 사도로 만든다.
한선희 이슈팀기자 /churabb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