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만으론 생존 불가”…노래는 왜 소설이 됐고, 영화가 됐나

노래를 듣는 행위에서 경험으로 확장
음반·도서·전시·영화 등 융복합 대세
스트리밍 ‘0.2원의 덫’이 만든 생존법

 

‘Z세대의 록스타’로 불리는 싱어송라이터 한로로 [어센틱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차갑던 햇살, 위태로운 눈물을 닦아주네. 원래 이랬던가? 하루만 미뤄 내보는 다이빙, 다친 맘을 고쳐낼 거야” (한로로 ‘자몽살구클럽’ 중)

‘Z세대의 록스타’로 불리며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을 점령한 2000년생 싱어송라이터 한로로. 그의 음악은 소설 같고, 소설은 음악 같다. 노랫말엔 불안한 청춘과 목적지에 닿지 못한 사랑을 새겨넣고, 다짐 같기도 바람 같기도 한 주문을 채운다. 그는 지난해 7월 소설 ‘자몽살구클럽’과 함께 음반을 냈고, 둘은 시너지를 발휘했다. 출간 12개월이 지났지만, 이 책은 베스트셀러(교보문고 기준) 3위를 유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음악을 귀로만 듣던 시대는 지났다. 어떤 앨범은 소설이 되고, 또 다른 앨범은 전시가 되며, 어떤 음악은 영화관 스크린에서 먼저 관객을 만난다.

1일 가요계에 따르면, 많은 가수가 단일 매체로만 음악을 들려주던 때를 벗어나 일종의 ‘다매체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밴드 넬은 정규 10집과 함께 에세이를 냈고, 한로로는 소설과 EP(미니 앨범)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었다. 소설 속 첫 장면은 동명의 앨범 첫 트랙 ‘내일에서 온 티켓’의 노랫말이다. 이찬혁과 아이유는 음악을 공간으로 확장했고, 쏜애플은 새 앨범을 영화로 만들어 극장에서 먼저 공개했다.

넬 [보헤미안 스페이스 제공]

이런 시도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다수의 밴드가 소속된 중소기획사 관계자는 “지금은 단순히 음원을 공개하는 것을 넘어 발매 자체를 하나의 이벤트이자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다”며 “화제성보다도 작품을 보다 깊게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 결과”라고 말했다.

‘음악 경험’이 새로운 화두…스트리밍의 그늘

음악도 ‘경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스트리밍은 음악을 쉽게 만날 수 있게 했으나 향유 기간은 극도로 짧게 축소시켰다. 이에 음원, 음반만으로는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하기가 어렵게 돼 창작자들 사이에선 음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가 새로운 화두가 됐다.

특히 음악과 책, 음악과 영화, 음악과 전시 등이 ‘동시다발적’ 다매체 발매 전략은 중소기획사나 싱어송라이터에게 자주 보이는 현상이다. 그 기저엔 한국 대중음악 산업이 직면한 기형적인 수익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스트리밍 시대의 그늘인 셈이다.

한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플레이리스트와 숏폼 플랫폼 덕에 한 곡이 많은 사람에게 노출할 수 있게 됐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의 앨범을 듣는 경험에선 점점 멀어지게 했다”며 “음원 한 번 재생으로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0.2~0.5원에 불과해 음원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쏜애플 [MPMG뮤직 제공]

음원 시대에 음원 수익이 미미할 정도니, 실물 음반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이제 CD는 음악을 듣기 위한 매체가 아닌 포토카드와 팬사인회 응모권을 얻기 위한 ‘굿즈’가 되고 있다. 음악을 담던 매체가 음악과 멀어지는 ‘역설’이 벌어진 것이다.

최근 정규 10집 ‘X’를 발표한 밴드 넬의 김종완이 CD 발매를 중단하고 USB 음반을 선택한 것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이다. 그는 “음악을 듣기 위한 용도가 아닌데도 CD를 구매하는 구조가 창작자로서 부끄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에 ‘음악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앨범 판매’를 넘어 ‘음악 경험’을 다시 하도록 만드는 것이 됐다. 음악을 담는 ‘전통적인 그릇’이 신뢰를 잃으면서,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철학을 훼손하지 않고 팬들에게 가치 있는 물성을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매체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책이 된 음악, 영화가 된 앨범

음악을 오래 경험하게 하는 매체로서 부상하고 있는 수단은 책과 영화, 전시 등이다.

한국의 모던록을 상징하는 밴드 넬은 정규 10집 발매와 동시에 4년여에 걸친 제작 과정과 철학적 고민을 담은 에세이북 ‘다이어리 오브 엑스(Diary of X)’를 출간하고 동명의 전시도 열었다. 타이틀곡 ‘스위트 딜루전(Sweet Delusion)’ 등 수록곡들이 탄생하기까지의 궤적을 텍스트와 공간으로 박제해 창작자의 시간을 팬들이 직접 읽고 걸으며 체화하게 했다.

악뮤 [악뮤 인스타그램]

싱어송라이터 한로로는 3번째 EP 앨범 ‘자몽살구클럽’ 발매 전 동명의 단편 소설을 먼저 출간하며 세계관의 뼈대를 구축했다. 가정폭력과 억압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절망과 연대를 다룬 활자의 서사적 결핍은 곧바로 음악(‘도망’, ‘용의자’ 등)의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 사운드를 통해 완성되며 팬덤의 감정적 몰입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팝업스토어를 넘어 새로운 공간을 통해 음악적 세계관을 넓히는 사례도 있다. 악뮤(AKMU)의 이찬혁은 자기 육체와 정신을 짜내 ‘영감의 즙’을 생산한다는 콘셉트의 팝업 전시 ‘이찬혁 영감의 샘터’를 통해 신곡의 메시지를 몰입형 체험으로 구현했다. 이 전시는 시리즈처럼 부제를 달며 이어지고 있다. 아이유 역시 데뷔 15주년 미디어아트 전시 ‘순간,’을 통해 미공개 사진, 영상, 미발매 가이드 보컬 등 독점 콘텐츠를 오프라인 공간에 풀어냈다.

이는 대중성과 상업성, 예술성을 두루 갖춘 K-팝 스타들이 기존 아이돌 그룹의 마케팅 문법을 살짝 비튼 것으로 평가된다. 한 대형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상업적 느낌을 주지 않고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강조하는 공간 비즈니스는 오프라인 콘서트를 보완하는 강력한 수익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밴드 쏜애플(THORNAPPLE)의 행보는 더 과감하다. 이들은 최근 새 앨범을 영화관에서 먼저 공개했다. 쏜애플의 실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EP ‘동물’ 발매 당시 정식 공개에 앞서 파주의 복합문화공간에서 음감회를 열었고, 브랜드 콘서트 ‘불구경’은 라이브 콘서트 필름 상영과 10주년 팝업스토어로 이어졌다. 앨범을 낼 때마다 음원을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팬들이 앨범을 만나는 방식을 함께 설계해 온 셈이다.

쏜애플 ‘나의 세기 익스텐디드 플레이 필름’ [MPMG뮤직 제공]

이번에 공개한 ‘나의 세기 익스텐디드 플레이 필름’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쏜애플의 소속사 MPMG 서현규 이사는 “음악은 결국 듣는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예술이다. 하나의 해석을 제시하기보다 더 다양한 감정과 분위기를 경험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었다”며 “그 안에서 듣는 사람들이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는 음악의 ‘해설서’가 아니었다. 서 이사는 “영상은 음악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분위기와 감정을 보다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매체”라며 이색 실험의 배경을 설명했다.

창작자들의 ‘새로운 해법’, 과연 성공할까?

음반과 책, 전시와 영화를 결합하는 시도는 단순한 앨범 홍보 전략이 아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이나 대형 기획사 주도의 독점된 수익 구조, 모든 정책과 흥행이 K-팝 중심으로 쏠린 기형적 생태계에서 나온 자구책이다. 창작자들이 음악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에 내놓은 새로운 해법인 셈이다.

인디 뮤지션이 다수 소속된 기획사의 관계자는 “음원에만 의존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티켓과 출판, 공간 경험을 결합하면 창작자는 보다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며 “게다가 K-팝 그룹과 같은 거대한 팬덤이 아니더라도 앨범의 생명력을 길게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다. 소수의 코어 팬덤만으로도 앨범 제작비를 회수하고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지난해 7월 한로로는 EP ‘자몽살구클럽’ 발매에 앞서 동명의 소설을 먼저 공개하며 음반과 책이 상호작용하며 화제가 됐다. [어센틱 제공]

무엇보다 스트리밍 시대 뮤지션들에게 가장 큰 위협인, 음악 경험 시간의 단축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줄 수 있다. 스트리밍으로만 소비되면 3분 내외에 불과할 음악적 경험이 책을 읽고, 전시를 살피고, 영화를 보면 더 긴 시간동안 음원은 물론, 창작자의 음악 세계까지 천천히 마주할 수 있다. 이는 음악이 ‘재생 버튼’과 스킵(SKIP, 건너뛰기)으로 끝나는 인스턴트적인 경험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 중소 기획사 관계자는 “숏폼 플랫폼이나 바이럴 알고리즘을 통해 1~2주 만에 차트에서 휘발되는 초단기 소비 사이클과 달리, 도서를 읽고 전시장을 찾으며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긴 호흡을 요구한다”며 “몰입의 시간을 늘려 콘텐츠의 수명을 수개월 단위로 연장해 음악팬들을 가수와 앨범에 오래 머물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여기에 대중가수를 단순히 ‘가수’가 아니라 문학, 미술, 영화 등의 영역을 넘나드는 ‘작가’이자 ‘독창적인 예술가’로 지위를 격상시키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이 관계자는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인 동시에, 스트리밍 시대에도 ‘앨범’이라는 형식을 끝까지 살아남게 하려는 창작자들의 치열한 생존 방식”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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