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부는 日거장 바람…고레에다 히로카즈 작품 3편 연이어 개봉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청량한 일본영화 세 편이 잇달아 극장 문을 두드린다. ‘아무도 모른다’(2005),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등으로 국내에도 단단한 팬층을 보유한 일본 현대영화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 세 편이다. 그의 장편 데뷔작과 함께 가장 최근 연출한 작품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세계의 ‘시작과 현재’를 볼 수 있는 영화들이다.

7일 개봉한 ‘환상의 빛’(1995)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장편 데뷔작. 국내에서는 감독 특별전 등을 통해 상영된 적은 있지만 극장 개봉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순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쿠오(아사노 타다노부)의 그림자를 지고 살아가는 유미코(에스미 마키코)의 모습을 산수화를 그리듯 아름다운 영상으로 나열했다.

어린 시절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실종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던 유미코는 이쿠오와의 결혼생활을 하며 점차 안정되어 간다. 그러나 어느 날 이쿠오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열차가 들어오는 선로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다. 신생아인 아들과 남겨진 유미코는 남편이 세상을 등진 이유를 몰라 괴로워한다. 유미코는 몇 번의 사계절을 지낸 후 재혼을 하고 시골 마을로 들어가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불현듯 파고드는 이쿠오의 기억을 떨치기가 어렵다. “왜 그랬을까” 한 마디가 그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순간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환상의 빛’은 1995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촬영상(황금셀리오니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가톨릭협회상, 이탈리아 영화산업회상, 벤쿠버 국제영화제 용호상 등을 받았다. 이어 로테르담,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영화제 등에 줄줄이 초청되면서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이라는 호평을 얻었다. 


말보다 영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던 21년 전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8일 개봉하는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의 연출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영상미는 기본에 깔고, 캐릭터의 개성과 대사의 맛깔나는 재미를 높였다. 영화의 톤도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관조적으로 비추는 것에서 희망적인 위로를 건네는 것으로 변화했다. 


15년 전 유명 문학상에 입상해 ‘작가’가 된 료타(아베 히로시)는 그 후로 변변한 작품을 하나 내놓지 못하고 “새 작품을 준비하기 위한 취재차” 흥신소 사설탐정으로 일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내 쿄코(마키 요코)와도 이혼했다. 아내와 사는 초등학생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와 한 달에 한 번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유일한 낙이다. 


료타의 어머니 요시코(키키 키린)는 아직 철들지 않은 아들이 못 미덥지만 “열매는 열리지 않아도 나무에 물을 주는” 정성으로 아들을 대한다. 노인들만 남은 낡은 연립아파트에 살지만 신세 한탄보다는 매주 클래식 모임에도 나가면서 노년의 삶을 즐기는 편이다. 오랜만에 손자와 아들이 집에 찾아오고 며느리까지 방문하자, 예전처럼 가족으로 살 수 없을까 기대하는 마음에 태풍을 핑계로 하룻밤 지내고 가라는 제안을 한다.

‘태풍이 지나가고’를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살기 시작한 어머니를 찾아 뵈었을 때, 언젠가는 이 연립아파트단지의 이야기를 찍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며 이 영화가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출발된 이야기임을 밝혔다. 영화는 지난 5월 진행된 제69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진심이 담긴 올해의 영화”(THE FILM STAGE)라는 호평을 받았다.

오는 8월에는 감독의 ‘중간작’에 해당되는 ‘걸어도 걸어도’(2008)가 재개봉한다. 오래 전 죽은 장남의 장례식에 모인 가족들의 왁자지껄한 하루를 담은 영화. 차남 료타(아베 히로시)가 던진 “이제 형을 그만 놓아줘도 되지 않냐”는 말에 어머니 토시코(키키 키린)은 오래 묵은 진심을 쏟아낸다. 감독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토론토국제영화제, 바르샤바영화제, 신세바스티안영화제 등 전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고 일본 주요 영화제에서 6관왕을 휩쓴 바 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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