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원자재·해상운임 등 상승 압박
영업이익률 저조한 중기에 더 치명적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격화됐다. 국제 유가는 하루 만에 6% 넘게 급등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호르무즈 해협이 전면 봉쇄될 경우 국제 유가는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국제유가가 폭등하면 국내 중소기업들의 원가 구조가 흔들린다. 더 큰 문제는 기간이다. 사태가 장기화 되면 수출 기업은 물론이고 수출을 하지 않는 기업들까지 여파가 미친다. 연료비, 전력비, 운송비, 원자재 가격 상승이 중기를 직격한다. 중기 다수는 영업이익률이 한자리수다. 원가가 상승하면 ‘팔수록 손해’인 적자 구간에 진입하는 기업들 수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4일 중소벤처기업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의 중동 권역 수출액은 9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1% 증가했다. 전체 중소기업 수출의 5.4%에 해당하는 수치다. 중동 수출 중소기업 수 역시 1만3956곳에 달해 전체의 14.2%에 이른다. 품목별로 보면 K-뷰티 화장품의 경우 중동 지역 수출이 전년 대비 54.6% 급증한 약 6600억원을 기록했다. 자동차 품목도 한국산 중고차 품질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전년보다 58.6% 성장했다. 특히 UAE 지역으로의 한국 중고차 수출은 91.2% 급증했다.
국내 중소기업의 중동지역 수출 거점은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두곳이다. 중기부에 따르면 지난해 양국에 대한 중소기업 수출액은 전체 중동 중소기업 수출의 53.5%를 차지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에 대한 중소기업 수출액은 중동 수출의 8.1% 수준이다. 중견기업 역시 중동은 핵심 수출시장이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견기업 중동 수출액은 약 5조5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9.6% 늘며 주요 지역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국내 중소기업 대부분이 ‘미국 이란 전쟁’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결국 유가 때문이다. 최근 서부텍사스유(WTI)와 브렌트유는 전 거래일 대비 6% 안팎 상승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 봉쇄될 경우 국제 유가가 120~130달러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차질 가능성도 변수다. 중동산 LNG는 국내 발전과 산업용 연료의 핵심 축이다. LNG 생산이나 선적이 지연될 경우 전력 도매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제조업 전반의 전력비 부담을 키운다. 전력 사용 비중이 높은 업종일수록 타격이 크다.
해상 운임 상승도 복병이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가 제한될 경우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하는 항로가 검토되는데, 이 경우 운송 기간이 최소 보름 이상 늘어난다. 운임과 보험료가 동반 상승하면서 중소기업의 물류비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농기계 수출 회사 관계자는 “완제품 형태로 수출이 이뤄지는데 전쟁위험 할증료가 붙으면 운염이 단기간에 수십퍼센트 오를 수도 있다. 대기업은 선복을 미리 확보하지만 중소기업은 남는 공간을 쓰는 구조라 협상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원가 압박은 결국 마진을 잠식한다. 국내 중소 제조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3% 수준에 머무는 곳이 적지 않다. 유가가 10% 상승해 연료비와 운송비, 원재료비가 연쇄적으로 오르면 이익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구조다. 예컨대 매출 100억원, 영업이익 3억원(이익률 3%)인 중소기업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원가가 3%만 상승해도 이익은 사실상 제로에 수렴한다. 여기에 운임과 보험료 인상, 전력비 상승까지 겹치면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기업과의 격차도 뚜렷하다. 대기업은 원유 선물 계약이나 장기 구매 계약을 통해 가격 변동을 일부 헤지할 수 있다. 자체 물류망과 대규모 계약을 통해 운임 인상 충격도 분산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현물 가격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변동성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또 대기업은 일시적 비용 증가를 내부 유보금으로 흡수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운전자금 대출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 유가 급등이 장기화될 경우 현금흐름 악화와 금융비용 증가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국내 중기들의 기초 체력 역시 이번 ‘중동 사태’와는 별개로 약해진 상태다. 기술보증기금이 올해 1월 중소기업 대신 갚아 준 빚이 13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1월 기준 최대 규모다. 대위변제금은 기보가 보증을 선 중소기업이 부도·폐업 등으로 금융기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대신 갚아주는 금액을 의미한다. 대위변제금은 2022년 6678억,에서 2023년 1조1058억 원으로 급증했고, 2024년 1조3248억 원, 2025년 1조5677억 원으로 꾸준히 확대됐다. 홍석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