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칼럼] ‘회춘의 묘약’


올해 초,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에 다녀왔다. 함께 참관했던 동료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5년 후의 근 미래에 다녀온 느낌”이라는 표현으로 CES 현재 위상을 정의하기도 했다. 이런 특성 덕분에 CES의 핵심 테마는 매년 진화를 거듭한다.

올해 전시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은 분야는 로봇으로 대표되는 피지컬 AI다. 인공지능이 이젠 전기와 같은 기본 인프라로 인식되는 상황이지만, 텍스트(언어)와 영상 중심의 거대언어모델 기반 생성형 인공지능을 넘어, 중력과 마찰력 그리고 관성 같은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를 감지하고 학습하는 피지컬 AI의 부상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기존 모빌리티, 스마트 홈, 스마트 시티 등도 피지컬 AI의 패러다임으로 통합되고 있었다. 이제 로봇은 정해진 좌표를 따라 움직이는 자동화 기계에서 진화하여 인간과 협업해야 하는 비정형 환경에서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는 추상적인 의도를 구체적인 모터 제어 신호로 변환하고 행동을 생성해 내는 단계에 진입했다. 컴퓨터 모니터를 벗어나 물리적 실체와 결합하여 물리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이 된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선보이며 참가자들과 언론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다. 올해 8월부터 미국 현대자동차 공장에 로봇 도입을 시작하여 2028년에는 다른 수요처에 판매도 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아울러 현대자동차 노조를 중심으로 조만간 로봇이 일상에 빠르게 스며들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잠식해 나갈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확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범용 부품 중심으로 돌아가는 로봇 산업은 시장의 기대치와 현실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 현대자동차보다 훨씬 먼저 공장 도입을 선언한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옵티머스조차도 아직 ‘견습생’으로 남아있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첨단 생산 현장에서 로봇은 이미 사전에 정의된 정밀 공정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고 있지만, 가정이나 사람과 함께 작업해야 하는 비정형 환경에서는 아틀라스를 포함해 어떤 로봇도 아직은 사람의 능숙한 동작을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을 뿐이다.

마치 퇴행성 관절염에 시달리는 노인처럼 엉금엉금 움직이며 간단한 작업을 수행하는 휴머노이드를 보고 있으면 얼른 나서서 대신 처리해 주고 싶을 정도다. 시연 영상 등에서 보이는 공중제비처럼 화려한 동작들과 너무 큰 차이가 난다. 이것을 ‘모라벡의 역설’이라고 한다.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로봇에게 쉽고, 인간에게 쉬운 것은 로봇에게 어렵다. 공중제비는 인간에게도 어려운 동작이지만 로봇은 이를 구현해 왔다. 하지만 일반인이 무심코 수행하는 수건 개기와 같은 일상적 작업은 여전히 어렵다. 비정형 환경에서 인간 수준의 능숙함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의미다.

피지컬 AI라는 혁신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새로운 혁신은 아직 오지 않았다. 범용부품 중심의 로봇은 조만간 기술적으로 평준화될 것이다. 로봇이라는 ‘육체’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고도로 발달한 ‘근-신경계’가 필요하다. 새로운 혁신은 전력·제어 기술의 위상이 강화된 핵심 구동계, 고정밀·고속 전기제어 기술 등에서 시작될 것이다. 인간과 함께 작업하는 협동 로봇의 운동 지능은 반사신경에 의해 결정된다. 빠르고 정밀한 하위 제어기를 통해 운동신경을 회복하는 것이 아직은 노인 같은 로봇을 회춘시키기 위한 묘약이 될 것이다.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 연산을 위한 GPU의 미래를 보고 HBM에 ‘올인’해서 큰 성과를 거두었듯이 한국전기연구원은 고속 고정밀 로봇 구동계 기술에 집중할 예정이다. 인간과의 협업이 가능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보편화되는 근 미래의 기술적 길목을 선점하고자 한다. 앞으로 펼쳐질 로봇의 ‘근-신경계’ 구축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성태 한국전기연구원 전기응용연구본부장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