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이 죽었냐?” 삶 짓밟힌 고문 피해자, 사과 없는 죽음에 ‘허탈’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맡아 ‘고문 기술자’로 널리 알려진 이근안 전 경감이 25일 숨졌다. 향년 88세. [연합]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고문 기술자’ 이근안(88) 전 경감의 사망 소식이 26일 전해진 가운데 대표적인 피해자로 알려진 김성학(76)씨가 “허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성학씨는 이미 지난 일이지만 사과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허탈하다”며 “이제는 지난 일이지만 내 삶에 큰 상처를 남긴 사람이고 인생에 오점을 남긴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이날 전했다.

1971년 어로작업 중 납북됐던 김 씨는 1985년 12월 이씨에게 전기고문을 당한 뒤 척추 디스크가 녹아내려 장애인이 됐다.

김씨는 이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잠시 말을 멈추고 “이근안이가 사망했냐?”고 되물으며 “젊었을 때 정말 분노가 컸고 삶에 큰 피해를 보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조금이라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피해자들에게 사과라도 했으면 인간적으로 평가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모습은 전혀 없었다”며 “7년간 복역한 뒤 목사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목회자의 길을 갔다면 피해자들을 먼저 찾아와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받던 시기를 떠올린 그는 “솔직히 말해 살아서 나가면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당시 분노와 고통이 컸다”며 이씨로부터 사과를 받은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과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 그는 “지금으로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며 허탈해했다.

이근안 전 경감은 최근 건강이 악화해 전날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 수사관으로 근무하며 각종 공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문 등을 주도했으며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강압적 수사를 벌이며 ‘고문 기술자’로 널리 알려졌다.

이후 납북어부 김성학 씨 등을 불법 감금·고문한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7년의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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