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레바논 ‘78년 증오의 뿌리’…이들은 왜 앙숙이 됐나 [디브리핑]

이스라엘-레바논 ‘열흘 휴전’…이스라엘 건국부터 적대관계
레바논 내전때 이스라엘 공습…헤즈볼라 탄생 결정적 불씨
레바논 정부도 헤즈볼라 통제불가…군사·정치 영향력 압도적
열흘휴전에도 평화협정까진 ‘험로’…네타냐후 “이스라엘 지상군 레바논 남부 배치 유지”
헤즈볼라 “이스라엘군 잔류시 저항권 행사” 강대강 대치

지난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 포병 부대가 레바논을 향해 포격을 가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16일(현지시간) 평화 협정을 위한 10일간의 휴전에 돌입했다. 지난 1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34년 만에 열린 고위급 협상에서 양국의 입장차가 드러났지만, 이후 미국의 중재로 휴전 합의를 이뤄낸 것이다. 이번 휴전으로 미국과 이란간 종전협상의 걸림돌이 하나 해결되면서 합의에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졌다.

[연합]


하지만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향후 협상에서 평화협정이 도출되기까진 적잖은 험로가 예상된다. 협상주체가 이번 충돌의 근원인 친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아닌 레바논 정부인데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 점령 의사를 거듭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공습 때문에 휴전을 앞두고 레바논 측의 거부로 양국 정상간 접촉도 무산됐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뿌리 깊은 갈등에 대한 관심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78년간 적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반세기가 넘는 앙숙인 탓에 양국의 해묵은 갈등이 이번 기회에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1976년 3월 레바논 내전 당시 수도 베이루트 대통령궁에서 민병대가 총격전을 벌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80년 가까이 이어진 적대관계…헤즈볼라 탄생엔 이스라엘 공습이 결정적=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갈등은 헤즈볼라의 등장 이전부터 시작됐다. 두 국가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전쟁 이후 공식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못한 채 사실상 적대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에선 군사적 충돌이 빈번히 일어났다. 외교 관계 역시 단절돼 상호 방문도 금지됐다.

양국의 오랜기간 긴장 관계를 이어가던 중 이후 레바논 내전(1975~1990년)이 발발하면서 더욱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헤즈볼라의 탄생 배경에는 이스라엘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레바논 내전이 한참이던 1982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계기로 헤즈볼라가 조직됐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점령 당시 1만7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피해는 참혹한 수준이었다.

헤즈볼라의 주축인 사아파 무슬림들은 사실 조직이 형성되기 전까지만 해도 레바논에서 약한 종교 집단에 속했다. 하지만 레바논 내전으로 이스라엘의 공습이 빗발치자 시아파 성직자들은 이스라엘을 몰아내고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한다는 일념으로 헤즈볼라를 결성했다.

헤즈볼라는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에 대한 크고 작은 공습을 지속하고 있다. 2006년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를 재침공했을 당시 헤즈볼라가 방어에 성공하면서 군사적 위상을 입증했다. 지난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자 가장 먼저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도 헤즈볼라였다.

지난 2024년 6월 레바논 아이타 알샤압의 헤즈볼라 전투 대원들의 모습. [게티이미지]


▶레바논보다 강한 헤즈볼라…정치까지 깊숙히 침투=문제는 헤즈볼라가 레바논 정부의 영향력을 한참 뛰어넘었다는 점이다. 헤즈볼라는 지난 수년간 이란으로부터 재정과 군사 지원을 받고 있다. 그 결과 헤즈볼라가 비(非)국가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에서 레바논 정규군을 압도하고 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로켓포와 미사일 약 12만~20만개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레바논 정치에서도 헤즈볼라의 입지는 견고하다. 영국 BBC 방송은 헤즈볼라가 1992년부터 레바논의 총선에 참여해 주요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BBC는 “헤즈볼라가 2022년 선거에선 레바논 의회 과반 확보에 실패했으나, 여전히 임시 정부의 장관직은 이들 측 인사가 장악하고 있다”며 “이들은 레바논 전역에서 학교, 병원, 문화 기관, 자선 단체 등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레바논 정부가 자체적으로 헤즈볼라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섬멸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 군사 작전을 수차례 시도하고 있다.

지난 1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열린 레바논·이스라엘 회담에 앞서 마이크 니덤 미 국무부 고문(왼쪽부터), 마이크 왈츠 주유엔 미국대사,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미셸 이사 레바논 주재 미국대사, 나다 하마데 모아와드 주미 레바논 대사, 예키엘 라이터 주미 이스라엘 대사가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AFP]


▶1993년 이후 첫 대면협상에도…“변화 가져올 가능성 낮아”=이스라엘과 레바논이 열흘간 휴전에 돌입하지만, 향후 협상이 타결되기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휴전 기간에도 이스라엘의 안보 원칙은 양보할 수 없다면서 헤즈볼라가 요구한 이스라엘군의 국경 밖 전면 철수를 거부했다. 헤즈볼라 무장 해제와 힘을 통한 지속 가능한 평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16일 안보 관계 장관 회의 직후 공개한 영상 메시지에서 “레바논 남부 10km 폭의 확장된 안보 구역에 계속 주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이스라엘을 위협해온 헤즈볼라의 로켓 전력을 언급하며 “향후 안보 합의와 영구 평화 협정 과정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헤즈볼라 역시 휴전 발표 직후 첫 공식 논평을 통해 “레바논 영토에 이스라엘군이 존재하는 것은 레바논과 그 국민에게 저항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어떤 형태의 휴전 합의로도 이스라엘이 레바논 내부에서 행동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는 헤즈볼라가 유발하는 안보 위협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 남부에서 지상전을 진행해온 이스라엘군의 철군을 압박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앞서 워싱턴DC에서 이뤄진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고위급 협상 역시 1993년 이후 워싱턴DC에서 양국이 처음으로 대면한 자리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지만, 실질적인 합의를 이루기까지는 추가 접촉이 더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측의 입장차는 첫 협상 자리에서 이미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무장 해제와 양국 관계 정상화를 요구하는 반면, 레바논은 조건 없는 휴전을 주장하고 있다. 정작 군사적 충돌의 중심에 있는 헤즈볼라 측 인사는 이번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라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회담이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낮다”며 “레바논 정부와 군은 헤즈볼라를 무장 해제하거나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및 드론 공격을 막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다. 헤즈볼라 무기 체계를 해체하고 군사 조직 해산을 강제하려면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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