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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리 엡스타인(오른쪽)이 다큐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에서 한 여성과 테이블에 앉아 대화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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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엡스타인 이슈’가 잠깐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지난 4월 9일(현지시간) 멜라니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인이 남편 트럼프 모르게 기습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은 엡스타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발표해 앱스타인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있다.
멜라니아 트럼프는 이날 “추잡한 제프리 엡스타인과 저를 연관 지으려는 거짓말들은 오늘로 끝내야 한다. 내 자신을 엡스타인과 연결짓는 모든 의혹들은 가짜일 뿐이다”고 강조했다. 멜라니아는 엡스타인을 같은 사교모임에서 만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dward Epstein, 1953~2019)의 인맥은 놀라울 정도다. 트럼프 미 대통령, 앤드루 전 영국왕자, 노암 촘스키 박사,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케빈 스페이시, 빌 게이츠,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였던 스티븐 코슬린 박사 등등. 억만갑부 성범죄자 엡스타인은 죽은 지가 7년이 다돼가고 있고 ‘엡스타인 파일’이 공개된 지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셀럽들의 공범설과 연루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2020년 5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4부작 다큐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도 요즘 역주행하고 있다. 엡스타인과 오랜 동업자이자 연인 관계를 유지하며 어린 여자 유인책을 도맡아 성매매 공모죄로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길레인 맥스웰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 ‘길레인 맥스웰 : 괴물이 된 사교계 명사’도 덩달아 인기를 얻고 있다.
▶엡스타인의 다단계식 성착취 방식=‘더러운 부자’(Filthy Rich)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엡스타인 다큐에서는 부와 권력으로 수많은 여성을 나락에 떨어트린 괴물인 제프리 엡스타인의 민낯이 밝혀진다. 생존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 덕분에 제작될 수 있었던 다큐 시리즈물이다. 엡스타인 다큐는 권력과 부의 남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엡스타인과 맥스웰 다큐를 보면, 사회의 사법제도가 얼마나 늦게 움직이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놔도 정의 구현, 공정 사회는 요원해진다.
엡스타인은 미국 내에서도 뉴멕시코주 조로 목장, 오하이오주, 플로리다주 팜비치 등지의 저택에서 소녀를 성추행하는 등 더러운 행위를 해왔다. 엡스타인의 성착취는 단순한 다단계 방식이다. 미성년 여자 아이에게 마사지를 해주면 200달러를 준다고 알바비를 벌어가라고 해놓고, 그 여자 아이에게 다른 여자 아이를 데려오라는 식이다.
“마사지 책을 읽는 저를 맥스웰이 그 쪽으로 데려갔다. 나는 마사지 치료사가 되길 희망했다. 그걸 이용해, 그(엡스타인)는 나에게 성적 학대를 가했다”(여성 피해자)
특히 플로리다의 팜비치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빈부가 극명하게 갈려 엡스타인이 그루밍 성폭력을 펼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다.
엡스타인이 사는 이스트 팜비치는 요트를 가진 리조트형 저택들이 나온다. 하지만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웨스트 팜비치에는 빈곤층이 거주한다. 이곳 아이들은 가난하고 부모가 일하러 나가야 하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대를 받거나, 자존감이 낮은 결손가정 아이들도 많다.
엡스타인과 길레인은 어린 아이들이지만 돈이 필요한 절박한 사정을 절묘하게 이용해, 그들을 꼬시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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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리지널 4부작 다큐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
▶젊을 때부터 이력서에 학력위조하며 달턴스쿨 교사로 근무=엡스타인은 쿠퍼 유니언과 뉴욕대 쿠란트 수학연구소에 다녔지만 학위는 못받았다. 그런데도 뉴욕 한복판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 부근에 있는 명문사립학교인 달턴스쿨의 수학, 물리교사로 학생을 가르쳤다. 학력을 위조했기 때문이다. 한때 잘나가던 미국 투자은행 베어 스턴스(Bear Stearns)에서 금융인으로 경험을 쌓았고, 이후 10억 달러 이상의 고객 자산을 가진 VVIP만을 관리하는 자산 투자사를 운용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월가에서 주목받을만 했다.
베어 스턴스의 임원을 역임했던 마이클 테넌바움은 “내가 엡스타인 면접을 보고 합격시킨 걸 후회한다. 그는 이력서에 학력을 위조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엡스타인은 사업을 하면서도 돈 있는 사람들의 심리조종에 능했다. 미국의 조만(兆萬)장자였던 레스 웩스너가 첫 희생자였다. 웩스너는 재정과 자문을 엡스타인에게 다 맡겼다. 엡스타인은 사람의 약점을 잡아 그들을 조종하는 것, 그 방법이 반복됐다. 레스 웩스너는 최근 AP통신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사기꾼(엡스타인)에게 속았다”고 밝힌 바 있다.
▶두번의 복역 과정에서 보여준 문제점=엡스타인은 어린 여성 피해자들이 속속 나왔지만 불과 18개월형을 선고받고 플로리다의 한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됐다. 하지만 노동을 하겠다는 신청을 하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교도소 밖으로 나가는 것도 허락받기 쉬웠다. 교도소는 잠을 자는 공간이었다. 안좋은 호텔에서 지내는 것과 유사했다. 그나마 형기도 완전히 채우지 않고 출소했다.
이즈음 엡스타인은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의 외딴섬인 리틀 세인트 제임스 섬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등 거물급 유명인들과 어울렸다. 출소 후에는 기부 활동과 과학자 지원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학회 세미나와 의료컨벤션 행사에도 자주 나타나 기부와 토론을 하고갔다. 많은 피해자가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도 제프리는 완전히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그가 중죄를 저지르고도 쉽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사법거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이 사건을 맡은 연방검사 알렉산더 아코스타가 제프리에게 유리하도록 사법거래를 한 것이다. 돈과 권력으로 사법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아코스타는 1차 트럼프 내각에서 노동부 장관에 임명됐다.
하지만 이후로도 엡스타인 피해자들의 “미투!” 선언이 있었다. 아코스타의 배경을 조사하면서 엡스타인의 많은 정보를 얻어냈다.
2019년 7월 제프리 엡스타인은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오다 공항에서 두 번째로 체포됐다. 검찰은 45년형까지 구형할 수 있었다. 사실상 종신형이다. 버먼 판사는 제프리의 보석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엡스타인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도소 독방에서 목을 매는 자살로 사망했다. 자살이 아니라는 음모론도 나왔다.
법원은 엡스타인 사건 피해자 150명에게 엡스타인의 유산 중 총 1억250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명령했지만, 이의 실행마저도 쉽지 않은 상태다. 엡스타인은 죽기 이틀 전인 2019년 8월 8일, 자신의 전재산을 버진제도의 신탁에 넣는 데 서명했다. 피해자가 보상받기 어렵게 만들어놓은 것. 이것만으로도 엡스타인은 반성의 기미가 조금도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엡스타인은 혼자 일을 하지 않았어요. 괴물들은 아직 밖에 있어요. 체포되지 않고 있어요.”(피해생존자들)
엡스타인 다큐는 이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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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리 엡스타인의 동업 파트너이자 연인인 길레인 맥스웰이 영국미디어 재벌인 자신의 아버지 사진을 안고 있는 모습. |
▶길레인 맥스웰이 살아있다는 사실, “연루된 자들은 잠 못자”=2022년 11월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 ‘길레인 맥스웰 : 괴물이 된 사교계 명사’는 길레인 맥스웰(Ghislaine Maxwell 1961~ )의 도움 없이는 엡스타인의 다단계 성착취가 불가능하다는 걸 잘 보여준다. 생존자들은 “길레인이 제프리보다 더 나쁜 인간인 것 같았다”면서 “이 모든 걸 감독하고 이끈 게 길레인”이라고 증언했다. 길레인은 기본적으로 마담 역할이지만 혼합된 일을 했다. 사교적인 문제의 해결자이자, 사교 외적인 일의 비서였다.
길레인은 제프리 엡스타인의 동업 파트너이자 연인이었다. 뉴욕 사교계의 주축으로 파티의 여왕이기도 했다. 제프리와는 왜 이런 기이한 관계가 형성됐을까. 이를 알려면 길레인의 가족과 환경을 볼 필요가 있다. 길레인의 아버지는 악명 높은 영국미디어 재벌이었다. 부친은 당시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를 비롯해 영국 왕실과도 친했다. 딸은 아버지 아래서 화려한 상류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길레인 부친이 직원들의 연금을 횡령했다는 소식과 함께 갑자기 요트에서 실종돼 사망한다.
길레인의 상실감이 컸다. 돈에 쪼들리게 됐다. 아버지의 대체재가 필요했다. 아버지와 엡스타인은 유사했다. 길레인은 런던에서 뉴욕으로 왔다.
길레인은 엡스타인과 다른 남성들을 위한 성노예로 미성년 여자를 모집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길레인은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살아났고, 증상이 재발현될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와 성적 학대는 절대 잊을 수 없다는 점 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길레인도 2021~2022년 재판을 받아 20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길레인은 사이코패스와 조종, 기만 성향을 보이며 나르시시스트형으로 볼 수 있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해양, 지구, 인류 보존을 위한 자선사업에도 관심을 보인다. 이런 점에서 길레인과 엡스타인은 매우 닮은 꼴이라 할 수 있겠다.
엡스타인은 교도소에 구금됐으나 판결도 받기 전에 사망해버렸다. ‘엡스타인 문서’가 일반인에게도 일부 공개돼 엡스타인 성매매 연루자들의 혐의도 드러났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여전히 혐의를 부인중이다.
엡스타인이 죄를 고백하고 공개적으로 뉘우치는 모습을 볼 기회는 영영 사라졌다. 공범자, 연루자들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그나마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길레인이라도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길레인이 성매매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라, 여기 연루된 자들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은 어떻게 돈과 권력이 정의를 묵살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 사람들에게 반면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