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손실 나도 보너스?…“‘영업익 N% 성과급’ 회계상식 위배” [삼성전자 노사 사후조정 결렬]

영업익 기준 성과급…커지는 산업계 갈등
삼성바이오·카카오·LGU+ 등 재계 확산
기존 EVA 대신 영업이익 주장하는 노조
이자비용·법인세 내기전 성과급부터 지급

대규모 투자 가로막는 인센티브 구조
‘선배당’ 성격 요구에 주주 반발 확대
글로벌 빅테크, 이익 정률 보상제 없어


최승호(왼쪽 네 번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원들이 13일 경기 수원시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2차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할 경우 파업의 동력은 크게 약화될 수 있어, 이번 결정이 사태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법원의 판단은 14일 또는 15일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수원=윤창빈 기자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영업이익 기준 성과급 재원 변경 주장을 시작으로 다른 대기업 노조에서도 이 같은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산업계는 그동안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임직원 보상 기준으로 활용해왔는데 계산하기 어려운 EVA 대신 영업이익에서 일정 비율을 떼어달라는 주장이다.

재계는 늘어날 성과급 부담에 우려하는 분위기다. 영업이익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면 이자비용이나 법인세를 내기도 전부터 직원 몫을 만들어 둬야 한다. 영업이익은 흑자지만 만약 예상치 못한 비용으로 순손실이 발생해도 성과급을 줘야한다. 대규모 투자를 고려하는 현행 EVA와 달리 영업이익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회계 전문가들은 영업이익을 기준 삼아 성과급을 지급하기 시작하면 절대 이익 규모를 키우기 위해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는 무관심한 인센티브 구조가 확립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SK하이닉스가 쏘아올린 공…산업계 전반 확산=영업이익 기준 성과급 지급은 2021년 SK하이닉스를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이전까지 SK하이닉스도 EVA를 기준으로 성과급을 산정했으나 저연차 직원이 모든 임직원에 성과급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갈등이 확산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석희 당시 SK하이닉스 대표이사(현 SK온 대표)가 논란을 잠재우려 나섰지만 결국 노사 합의를 거쳐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 노조에서 영업이익을 성과급 재원으로 꺼내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과거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삼성전자와 비교해 성과급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이 같은 주장을 펼쳤는데 상황이 바뀐 셈이다.

이제는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으로 동일한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영업이익 20%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며 이달 초 파업에 돌입했고 최근 카카오 노조도 영업이익의 13~15%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했다. LG유플러스 노조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에서 영업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제시했다.

▶영업이익 기준 변경 시 투자·비용 고려 않는 구조=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 기준을 꺼내든 이유는 간단하다. 올해 영업이익 300조원, 내년 4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수익성 급증 수혜를 온전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주장하는 영업이익 15%를 기준으로 하면 올해 45조원, 내년 60조원을 반도체 직원 중심으로 나눠 가질 수 있다.

손익계산서상 영업이익에는 영업외비용이 반영 돼있지 않다. 이자비용이나 법인세를 내기 전부터 성과급을 만들어 둬야 한다. 증권업계에서는 올해 삼성전자가 300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한다면 2027년 법인세가 80조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 셈이다.

한국감사인연합회는 지난 11일 성명서를 통해 “최종 성과지표로 영업이익보다 순이익이 타당하다”며 “중간단계 이익을 배분기준으로 삼으면 순손실에도 성과 인센티브를 지급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존 EVA 방식으론 그렇지 않다. EVA는 세후 영업이익에 자본비용을 뺀 값이다. 자본비용은 회사가 투하한 자본에 주주나 채권자처럼 회사에 자본을 제공한 주체의 요구수익률을 고려해 계산된다. 회사가 주주·채권자의 돈을 바탕으로 얼마나 투자를 효율적으로 했는지 살피는 지표다.

반도체 산업은 매년 조 단위 설비투자가 이뤄진다. 삼성전자는 평택 생산라인 증설은 물론 용인에 360조원 규모 반도체 팹 6기 투자를 앞두고 있다. 이 같은 특성상 영업이익이 흑자여도 EVA는 마이너스가 발생할 수도 있다. 기존 EVA 체제에선 경영진 재량에 따라 EVA가 적자여도 임직원 독려 차원에서 성과급을 일정 부분 지급한 사례가 있다.

회계 전문가들은 EVA에서 영업이익으로 성과급 재원이 전환되면 회사 전반에 대규모 지출을 꺼리는 인센티브 구조를 정착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로 인해 미래 영업활동에 필수적인 선제 투자를 경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영업이익만 놓고 성과를 평가하게 되면 수익성은 나빠도 이익 규모만 크면 더 많은 보너스를 수령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회사가 단순히 덩치만 키우는데 집중할 유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EVA에서 영업이익으로 성과급 산정 기준이 달라지면 주주와 노조 간 갈등이 커질 가능성도 크다. 주주 배당은 순이익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모든 비용을 제하고 회사가 실제로 남긴 이익을 주주가 나눠 갖는 것이다. 하지만 영업이익을 성과급 기준으로 삼는다면 직원이 주주보다 먼저 성과를 가져간다는 문제가 생긴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의 법적 구조라면 이익이 주주에게 귀속되는 형태였는데 오히려 노조가 일종의 선배당 권리를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주주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美 테크기업은 주식보상·핵심인재 중심=이를 계기로 국내 대기업에 자리를 잡은 정률 보상제도 자체에 대해 전면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처럼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이익의 ‘N%’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분석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은 성과급을 주식으로 보상하는 사례가 많다. 엔비디아는 인재 유출 방지를 위해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을 지급하고 있다. 회사의 성장과 개인 자산 증식을 합치시킨 인센티브 구조다. 엔비디아 외에도 메타와 알파벳(구글), 아마존, 마이크론 등도 RSU를 주된 보상 체계로 활용한다.

현금성 보상을 활용하더라도 제한적이거나 핵심 인재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퀄컴의 경우 실적목표치에 연계해 현금 성과급을 지급하고 인텔 역시 전체 수익성에 개인 성과를 연계해 성과급을 준다. 재계 관계자는 “일률적 보상 시스템 하에선 적자 사업부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직원보다 흑자 사업부에서 미미한 성과를 거둔 직원이 돈을 더 가져갈 수밖에 없다”며 “성과 체계 보완을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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