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찍힐라”…소송 없이 ‘조용히’ 환급 신청한 기업 2만6천곳 넘어

‘소송의 나라’ 미국서 관세소송 나선 기업 1500곳
사이트서 환급신청한 기업은 2만6000곳 넘어
환급신청 기업 ‘블랙리스트’ 소문에 ‘찍힐까’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는 지난 2월 미국 대법원에서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고, 이후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은 기존에 낸 관세 환급 신청을 받는 포털사이트를 개설했다.[AP]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이 구축한 관세 환급 포털사이트에 환급 신청을 한 기업들이 2만6000곳을 넘어섰다. 미국 국제무역법원에 소송을 낸 기업들이 1500개 이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7배 넘는 기업들이 환급 신청을 한 것이다. ‘소송의 나라’ 미국에서 관세 환급을 바란 기업들이 굳이 소송에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트럼프 행정부에 ‘밉보일까봐’, 관세 이슈로 인한 주목을 피하려 했던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CBP가 구축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관세 환급을 신청한 기업들은 2만6000곳이 넘었다. 이 중에는 애플이나 마텔 등 관세 환급 소송을 하지 않았던 기업들도 포함됐다.

미국에서 기업이나 개인의 법적 권리를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송이다. CBP도 환급 신청 포털사이트를 개설하면서 실제 환급은 언제 완료될 지 장담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신청 기업이 실제로 관세를 환급받을 때까지 수개월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봤다.

그럼에도 관세 환급을 바라는 기업들이 지난해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조용히 환급 신청만 한 것은 행정부 차원의 보복성 조치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대법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부여한 상호관세가 무효라고 판결한 이후, K스트리트(로비 단체와 로펌이 많은 워싱턴DC의 거리)에는 행정부가 관세 무효 소송을 낸 기업들을 ‘블랙리스트’로 지정해 보관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CNBC와의 인터뷰에서 “(관세 환급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나를 매우 잘 아는 것”이라며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라 말했다. 관세 환급을 주장한 기업들에 불이익을 시사한 대목이다.

행정부의 ‘뒤끝’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애플은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관세 환급 신청에 대해 설명하면서 “돌려받는 모든 금액을 미국 내 혁신 및 첨단 제조에 재투자할 계획”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소송을 피한 ‘조용한’ 환급 신청은 소비자들로부터의 재소송을 피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관세 환급 소송에 앞장섰던 코스트코의 경우, 지난 3월 소비자들로부터 관세 부담을 이유로 상품 판매 가격을 올려 본 이득을 반환하라는 집단 소송을 당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서 근무했던, 베이커 맥켄지 국제무역부문 파트너인 냇 할보슨은 “대다수 기업들이 정당한 (관세) 환급을 요구하기로 결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기업들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며 “헤아릴 수 없는 위험이 따르는데, 그 돈을 쫓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할보슨은 이어 “관세 환급을 받아낸 기업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대부분의 CEO들에게 악몽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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