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스’, ‘좀비’, ‘나의 가족에게’ 등 연이은 히트로 대중과 평단 모두에 인정받아
몽환적 목소리로 사랑받던 보컬, 돌로레스 오리어던 2018년 사망으로 활동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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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Owned by VCG] |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2018년 1월 15일, 어느 아일랜드 여인이 영국 런던에 소재한 호텔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 발생한 익사. 뮤지션이었던 그녀는 음반 녹음 작업을 위해 런던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의 삶에는 오래된 상처가 마음 이곳저곳에 새겨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년 시절 겪은 성적 학대, 불안과 상실, 스타덤이 가져온 고립 속에서 흔들렸고, 한 시대의 청춘이 기억하는 그녀의 노래에서 이 고통들은 몽롱하고 처연한 잔향으로 남았다.
맑고 아름다웠지만 어딘가 그늘졌던 목소리,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의 보컬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의 삶은 그렇게 끝났다.
It wasn’t my design
And people everywhere think
Something better than I am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이해해줘
내 뜻대로 된 건 아니야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를
나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 크랜베리스, ‘나의 가족에게’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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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Photo by Tim Roney] |
상실 하나, 추억…‘나의 가족에게’(Ode to My Family)
1994년 발표된 크랜베리스의 대표곡 중 하나인 ‘나의 가족에게’(Ode to My Family)는 가족을 향한 애수 섞인 따뜻한 노래로 들리지만 곡 안에는 보다 복합적인 정서가 담겨 있다. 아일랜드 리머릭의 작은 공동체, 어린 시절의 집, 가족과 함께 있던 사랑스러운 시간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밴드의 보컬이 된 이후 먼 곳에 놓인 기억이 됐다. 그렇기에 곡의 ‘전면’에 있는 정서는 그리움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유년에는 쉽게 복원할 수 없는 상처도 함께 섞여 있다. 오리어던은 어린 시절, 구체적으로는 8세에서 12세의 기간동안 ‘가족의 친구’로부터 지속적인 성적 학대를 겪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유년은 그녀에게 따뜻한 추억인 동시에 자신이 훼손된 시간이었다.
이 양가성은 ‘나의 가족에게’ 정서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된다. 추억은 대개 아름다운 것으로 기억되지만 여기에 성적 학대라는 상처가 겹치면서, 가족과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자신이 보호받지 못했던 시간이라는 기억과 함께 남아 있다. 그렇기에 오리어던이 가족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단순한 향수만이 아닌, 안전했어야 할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감각, 그럼에도 그 시절을 완전히 미워할 수도 온전히 사랑할 수도 없다는 감각이 함께 흐른다.
곡이 과하게 비극적으로도, 사랑스럽게도 들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리듬은 격정적이지 않고, 목소리는 높이 치솟지 않는다. 대신 오리어던은 낮고 맑은 음색으로 지나간 시간을 멀리서 바라보듯 노래한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고, 사랑하지만 자신이 찢겨졌던 유년을 향한 목소리다.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립고, 훼손됐기에 아프며,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잃어버린 시절. ‘나의 가족에게’는 가족을 향한 노래인 동시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유년의 노래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아련하게 남는다.
And I‘m in so deep
You know I’m such a fool for you
You got me wrapped around your finger
(난 그저 너와 함께 있고 있을 뿐이야
이미 너에게 너무 빠져버렸어
알잖아, 너를 너무 좋아한다는 걸
난 이미 네 손 안에 들어가버렸다는 걸)
- 크랜베리스, ‘링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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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Photo by Bob Berg] |
상실 둘, 사랑…‘링거’(Linger)
크랜베리스의 ‘링거’(Linger)는 이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초기 대표곡으로, 오리어던은 이 곡을 자신의 첫 키스와 이별 뒤 찾아온 실망의 감각에서 출발한 노래로 설명한 바 있다.
사랑의 시작은 존재하고 그 시작이 존재했기에 종말과 상실이 찾아온다. 하지만 ‘링거’는 상실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에 관한 노래로, 사랑이 끝나고 어긋났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감각을 다룬다. 마음은 상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고, 기억은 짧은 순간을 실제보다 오랫동안 지속시킨다.
실제 사랑이 그러하듯, 실연에서 비롯된 상실감은 격렬함보다 좀 더 미묘한 형태로 나타난다. 누군가를 완전히 잃어버린 사건이라기보다, 자신이 믿었던 감정의 방향이 이어지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 오리어던은 그 불균형을 노래한다. 사랑은 끝났는데,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은 끝나지 않는 상태다.
곡의 아름다움도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어둡게 가라앉은 상실이 아닌, 기타와 현악은 부드럽게 흐르고, 멜로디는 투명하게 이어지며, 오리어던의 목소리는 상처를 감싸듯 맴돈다. 오리어던에게 사랑의 상실은 한순간에 끊어지는 것이 아닌, 끝난 뒤에도 마음 한 구석에서 계속 울려퍼지는 감각이었다. 사라졌지만 흔적은 남고, 그 흔적은 다시 목소리가 된다. 사랑이 사라진 뒤에도 사랑의 감각이 그녀 안에 어떻게 머무는지를 들려주는 곡, ‘링거’가 명곡으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다.
Oh, my life is changing everyday
’Cause you‘re a dream to me
Dream to me
(내 마음은 네 거야, 그러니 날 아프게 하지 말아줘
내 삶은 계속 변하고 있어
왜냐면 넌 내게 꿈이니까
너는 내게 꿈이야)
- 크랜베리스 ’드림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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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AFP] |
상실 셋, 꿈…‘드림스’(Dreams) 그러나, 잃었음에도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보이는 삶에도, 꿈꾸던 시간은 있다. 상처와 불안, 고향과 사랑의 상실이 오리어던의 생애 곳곳에 놓여 있었다 해도, 그녀의 목소리가 언제나 잃어버린 것들만을 향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 ‘중경삼림’ OST에 리메이크돼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림스’(Dreams)는 상실의 반대편, 사랑과 희망이 막 시작되고 세계가 이전과는 다른 빛으로 열리는 순간을 다룬 곡으로, 이 곡에는 상실보다 더욱 강하게, 설렘과 환희가 있다.
오리어던은 ‘드림스’를 아일랜드에 살던 시절 첫사랑을 떠올리며 쓴 곡으로 설명한다. 그녀의 말대로 곡은 사랑이 시작될 때의 들뜬 감각을 품고 있다. 기타는 밝게 출렁이고, 멜로디는 전진하듯 나아가며, 목소리는 현실보다 조금 높은 곳에 떠 있는 듯 몽환적이다. ‘나의 가족에게’가 이미 멀어진 시간을 바라보는 노래이고, ‘링거’가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감각을 붙들고 있는 노래라면, ‘드림스’는 다치기 전의 마음, 혹은 다칠 것을 알지 못하기에 더 아름다운 마음에 가깝다.
그러나 ‘드림스’에는 크랜베리스의 곡과 오리어던 목소리 특유의 옅은 아련함이 배어 있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을 노래하지만 기쁨을 요란하게 표현하지 않고, 막 피어난 감정을 조심스럽게 허공에 띄워놓는다. 그래서 곡의 몽롱함은 단순한 행복감이 아닌, 언젠가 잃게 될지도 모르는 아름다움을 처음 마주한 사람의 떨림처럼 남는다.
‘드림스’는 오리어던의 노래 세계를 비극으로만 닫지 않게 만든다. 그녀는 상실만을 노래한 사람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것들을 오래 바라본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사랑했고, 설렜고, 꿈꿨다. 중요한 점은 그 꿈이 상실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리어던의 목소리 안에서, 꿈은 상실을 모르는 순진한 낙관이 아니라, 상실을 예감하기에 더 투명하게 빛나는 감각이다.
오리어던의 삶에는 분명 비극이 있었고, 그녀의 노래에는 잃어버린 것들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그림자만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설명할 수 없다. 그 안에는 아직 무언가를 믿고 싶어 하는 마음, 사랑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 그리고 잃었음에도 다시 꿈꾸려는 인간의 감각이 함께 있었다. 상실이 그녀의 목소리에 깊이를 만들었다면, ‘드림스’는 그 깊이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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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Photo by Patrick Ford/Redferns] |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노래에는 늘 사라진 것들의 그림자가 있었다. 가족과 유년, 사랑과 평안, 그리고 끝내 자기 자신마저 붙잡지 못했던 삶의 불안. 그러나 그 그림자는 그의 음악을 어둡게만 만들지 않았다. 그 상실은 목소리 안에서 맑고 아련한 아름다움을 남겼다.
‘나의 가족에게’에서 추억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남았고, ‘링거’에서 사랑은 끝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감각으로 머물렀다. ‘드림스’에서는 아직 잃어버리기 전의 설렘마저, 언젠가 사라질 것을 예감한 듯한 몽롱한 빛으로 울렸다. 오리어던의 목소리는 상실을 이기지 못했지만, 상실 이후에도 어떤 아름다움은 남을 수 있음을 들려줬다.
상실은 삶을 훼손하지만, 그 훼손된 자리에 깊이를 남긴다.
오리어던의 목소리도 그러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