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호르무즈가 묻는 안보와 에너지원 수소의 역할


지도에서 호르무즈 해협은 좁아 보이지만,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이 바다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2024년 기준 호르무즈를 통과한 석유는 하루 평균 2000만 배럴로 세계 소비량의 약 20%에 달했고, 이곳을 지난 원유와 천연가스(LNG) 대부분은 아시아로 향했다. 대외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을 남의 일처럼 볼 수 없는 이유다.

중동발 위기 때마다 우리는 비축유 방출, 도입선 다변화, 우회 수송로 확보를 꺼내 든다. 당장의 물량 확보와 가격 충격 최소화는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하지만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똑같은 불안을 겪어야 한다면 이제는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특정 화석연료와 항로에 대한 구조적 의존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이 답을 찾는 과정에서 수소가 등장한다. 물론 수소가 당장의 위기를 해결할 만능열쇠는 아니다. 현재 전 세계 청정수소 생산 비중은 1% 미만이다. 지금 당장 호르무즈를 대신할 우회 항로가 아니라, 다음 위기 때 우리 경제가 흔들릴 진폭을 줄여줄 새로운 에너지 선택지이자 체질 개선제로 접근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의 개념도 원유·가스 확보를 넘어 전력망, 청정 공급망, 핵심 광물, 인프라 회복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넓어진 틀 안에서 수소의 전략적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산업 현장의 구조적 대체재다. 석유와 가스는 정유, 석화, 철강 등 주력 산업 전반의 혈관이다. 따라서 수소의 안보 효과는 수소차 보급을 넘어 대량 소비 산업 현장의 화석연료를 수소로 전환할 때 발휘된다. 수소는 단순한 보급 목표가 아니라 확실한 대규모 소비처와 결합해야 강력한 안보 자산이 된다.

둘째, 재생에너지 과잉 전력을 흡수하는 완충 통로다. 태양광과 풍력은 에너지 자립을 높이지만,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로 생기는 잉여 전력은 전력망에 위협이 된다. 남는 전기로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발전소·산단·항만 등 확정된 수요처에서 직접 소비하는 유기적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해외 수입 수소는 국내 생산을 보완하는 유연한 포트폴리오여야 한다. 수소 100% 자급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내 생산과 해외 도입의 상호 보완적인 포트폴리오로 국내 재생에너지 생산이 풍부한 시기에는 자급 비중을 높이고, 부족한 시기에는 수입 수소나 암모니아로 공백을 메우는 전략이 필요하다. 핵심은 이분법적 선택이 아니라 국내 생산과 해외 도입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국내 전력 계통과 산업 수요에 맞춰 조절하는 유연성이다.

따라서 수소 정책은 단순한 물량 공급 목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디서 생산해 어디에 쓰고, 위기 시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밸류체인 관점의 정교한 설계가 필수적이다. 국내 생산 수소는 핵심 소비처와 지리적으로 인접해야 하며, 수입 수소는 조절 가능한 전략 자원으로 기능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파도가 던지는 통찰은 가볍지 않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비축과 다변화라는 기본기는 유지하되 거기서 멈출 수는 없다. 수소는 전력망과 산업, 국내 자립과 해외 협력을 연결해 에너지 안보의 외연을 넓힐 핵심 수단이다. 파도가 칠 때마다 과거와 똑같은 불안에 떨 것인가, 아니면 지금부터 우리 에너지 시스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갈 것인가. 수소의 진짜 가치와 역할은 후자를 향한 실천에 있다.

이태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안보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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