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뒤편 날것의 세계로…이서진·차인표·최수종 무대로 가는 이유

국민 드라마 주역, 잇따른 연극작품 출연
‘가난한 예술’ 연극도 흥행…인식 대전환
출연료 보장에 스타 캐스팅도 가능해져이서진 데뷔 첫 연극 ‘바냐 삼촌’ 주역맡아

차인표도 ‘죽은 시인의 사회’ 첫 연극도전

최수종은 ‘오이디푸스’로 “연기인생 집약”

‘사극의 왕’이었고, ‘국민 드라마의 주역’이었다. ‘청춘스타’에서 ‘예능 스타’로 외연을 확장했던 중장년의 배우들이 무대로 향하고 있다. 배우 이서진이 데뷔 이래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도전했고, 최수종과 차인표가 연이어 무대에 선다.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배우들의 ‘무대행’이다.

29일 공연계에 따르면 드라마와 영화, 예능을 통해 사랑받은 스타 배우들이 무대에 서며 연극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연극은 작고 가난한 예술이라는 인식이 컸는데 몇 해 전부터 스타 배우들이 무대로 서고, 대극장 작품들이 등장하며 연극도 뮤지컬처럼 흥행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마련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극 ‘바냐 삼촌’의 이서진 [LG아트센터 제공]

이서진 ‘바냐 삼촌’부터 최수종·차인표까지

요즘 연극계 ‘화제의 중심’은 이서진의 ‘바냐 삼촌’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던 ‘이서진 본캐’가 체호프를 집어삼킨 연극이다. LG아트센터가 해마다 5월 올리는 ‘대작 연극’을 통해 화려한 ‘스타 캐스팅’의 선봉에 서고 있다.

이서진은 1999년 데뷔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섰다. LG아트센터가 제작한 ‘바냐 삼촌’을 통해서다.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4대 장막극 중 하나인 이 작품에서 그는 교수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지만 자기 삶이 무의미하다는 허탈감에 빠지는 중년의 바냐 역을 맡았다.

이서진이 ‘흔쾌히’ 무대에 선 것은 아니다. 처음엔 안 하겠다고 거절했지만, 마음을 바꾼 건 손상규 연출가의 집요한 설득 때문이었다. 개막 전부터 “이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너무 힘들어 후회하고 있다”고 엄살을 부렸으나, 막이 오르자 관객 반응이 뜨겁다.

이서진의 ‘본캐’를 보는 듯한 생생한 자연스러움 덕에 첫 무대의 어색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말투, 제스처, 표정까지 ‘극사실주의’로 살려낸 이서진의 바냐에 객석에선 희극적 페이소스를 유발한다. 고아성과 함께한 마지막 장면, 소냐의 위로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대목 역시 화제가 되고 있다.

연극 ‘오이디푸스’로 9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최수종 [연합]

최수종은 오는 7월 개막하는 연극 ‘오이디푸스’(7월 4일, 세종문화회관)를 통해 30여 년 만에 본격적인 연극 무대에 선다. 그는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에서 운명과 진실 사이에서 무너지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를 맡았다. 최수종이 연극에 도전하는 것은 2017년 ‘하늘로 가지 못한 선녀씨 이야기’ 이후 10여년 만이다.

최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최수종은 “처음 연습 후 일주일 동안은 위약금을 물고서라도 그만두고 싶었다”며 “거대한 운명에 맞선 감정선을 표현하는 과정이 정말 복잡하고 힘들어서 ‘징그럽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오랫동안 대하사극을 통해 태조 왕건, 대조영 등 역사적 영웅들을 연기하며 ‘왕 전문 배우’로 불렸다. 하지만 그가 맡은 오이디푸스는 승리하는 영웅이 아니라 몰락하는 인간이다 보니 영광이 아닌 붕괴의 서사를 그려야 한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최수종의 연기 인생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 될 것”이라며 기대했다.

작가 겸 배우 차인표가 한국 초연작인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도전한다. [연합]

배우 차인표는 올해 한국 초연되는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의 주인공 존 키팅 역을 맡아 무대에 도전한다. 1993년 데뷔한 후 33년 만에 처음으로 출연하는 연극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작품에서 고(故)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바로 그 역할을 맡았다.

키팅은 명문 기숙학교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라’고 가르치는 교사다. 성적과 규율, 입시 경쟁 속에 갇힌 학생들에게 자유와 상상력, 삶의 의미를 일깨운다.

차인표는 “배우로 그렇게 오랜 세월 살면서 연극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이 작품을 하기 위해 기다린 것 같다”며 “오랜 세월 삶을 살다 대사를 봤더니 ‘그 말이 맞았구나’ 생각했다. 내가 알게 된 의미들을 젊은 관객에게 전달해 주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제 대표작이 ‘사랑을 그대 품 안에’였는데, ‘죽은 시인의 사회’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기 갈증·날것의 매력…그들이 무대로 나온 이유

저마다의 커리어를 쌓아온 배우들이 무대로 돌아오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24년 배우 전도연(‘벚꽃동산’), 조승우(‘햄릿’), 2025년 이영애(‘헤다 가블러’) 등 해마다 굵직한 배우들이 무대에 섰다.

공연계 관계자는 “매체 위주로 활동하던 스타 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LG아트센터, 예술의전당 등에서 탄탄한 제작 지원을 받은 중·대극장 작품들이 나오면서다”라고 했다.

공연계의 한 관계자는 “10여년 전만 해도 배우들이 연극을 하겠다고 하면 소속사에서 돈이 안 되니 말리곤 했다”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대극장 연극이 한두 편씩 나오고 스타 캐스팅이 들어가며 소속사에서 만족할 만한 출연료를 주기에 배우들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과거 연극 무대는 돈은 안 되지만, 탄탄한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컸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투자 규모가 커졌고, 그만큼 보상도 돌아온다. 스타 배우들이 출연한 연극은 해마다 그해 최고의 티켓 판매량을 기록한다.

“여기에 배우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연기 갈증과 도전 욕구도 한몫한다”고 이 관계자는 강조한다. 실제로 무대로 돌아오거나 도전하는 배우들은 저마다 ‘연기 갈증’을 이야기한다. 최수종은 “이순재, 박근형, 신구, 박정자 선생님들이 연극 무대에서 보여주시는 또렷한 발성, 관객들과의 호흡, 전달력, 무대에서의 움직임 등을 보며 참 많이 반성하면서도 또 다른 꿈을 키웠다”며 연극에 대한 오랜 동경에 대해 말했다.

고승희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