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AI시대의 역설…가장 인간다워야 살아남는다


숲속에 들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반야. 늘 예술 세계를 동경하지만 차마 뛰어들지 못하고, 대신 예술 대학의 교수로 있는 매형을 열심히 일해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그가 언젠간 위대한 작품을 만들 것으로 생각해서다. 하지만 그가 돈과 여자만 밝히는 속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엉엉 운다.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올 상반기 연극계의 핫 이슈는 단연 ‘반야 아저씨’다.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가 쓴 이 작품이 ‘반야 삼촌’, ‘반야 아재’ 등으로 변주되며 관객들을 찾았다. 130여 년 전 작품이 시공간을 넘어 지금 한국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 건 노동의 가치가 몰락하는 작금의 현실과 묘하게 겹쳐서 일테다.

반야 아저씨가 평생 바친 ‘노동’의 결과가 인류사에 길이 남을 예술 작품이 아니라 속물에 불과한 누군가의 난봉질로 귀결된 것처럼 우리의 노동도 어느 때보다 대접받지 못하고 있음을 느낀다. 더디게 오르는 월급 명세서를 보며 한숨이 나오는 것은 특정 직업군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예전처럼 자기 계발로 몸값을 올려 이직한다고 한들 요즘 주식이나 집값 상승률만큼 연봉이 오르진 않는다. 이처럼 열심히 일을 해도 집 한 채 사기 어렵다 보니 너도나도 주식, 코인 투자에 뛰어든다.

노동 가치의 하락은 단순히 여기서만 끝나진 않는다. 인간의 가치까지 폄하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현대 철학자들은 ‘노동’이 단순히 생계를 위한 필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본질적인 활동’이라고 설파했기 때문이리라.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인간이 노동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며 자유를 드러나는 활동이라 말했고, 마르크스 역시 노동을 ‘인간의 자기실현’이라고 정의했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묻는 것도 노동이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핵심 요소 중 하나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특히나 AI의 등장은 인간의 노동을 다방면에서 대신할 수 있게 되며 노동의 기회는 더욱 줄어들고, 인간성의 하락은 더욱 심화하는 양상이다. 실제로 AI로 인해 통·번역이나 고객 상담 등의 기능적 직무뿐 아니라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 직군에서도 일자리 감소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지난달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임금근로자 중 상용근로자가 감소했다. 특히 2030세대에서 전문·과학·기술 서비스 부문의 감소 폭이 컸다.

이처럼 노동이 인정받지 못하고 그에 따라 인간성 역시 그 가치를 의심받는 지금, 그 해법은 지금보다 더 인간다워지는 것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 등으로 구분하며, 인간의 가치를 노동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행위’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행위’는 정치적·사회적 맥락에서 타인과 소통하며 의미를 찾는, AI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적인 일, 효율과 상관없이 지켜내야 할 가치를 판단하는 윤리적인 일 등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철이 없지만 감정에 솔직한, 즉 가장 인간적인 ‘황동만’도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간다움으로 이겨내며 인생 최고 목표인 데뷔도 하고, 신인 감독상도 받지 않았는가.

신소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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