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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1970년대 현대중공업이 조선소도 없이 초대형 유조선을 수주했을 때 많은 이들은 그 도전을 무모하다고 말했다. 만약 당시 한국이 그런 비웃음을 두려워했다면 지금 세계 조선 시장의 주인공은 한국이 아닐 것이다.
경쟁력은 성공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성공할 때까지 실패를 감수하며 도전한 결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스페이스X 공모주 배정 무산 사태를 바라보며 한 가지 우려가 든다. 이번 사건의 교훈이 ‘다시는 하지 말자’로 정리될까 하는 점이다.
미래에셋증권의 스페이스X 공모주 배정 시도가 무산됐다. 금융당국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과장 광고와 내부통제 문제를 둘러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기대를 심어준 뒤 실제 배정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안을 단순히 ‘실패’로 규정하고 처벌에만 몰두한다면 정작 한국 자본시장이 얻어야 할 중요한 교훈을 놓치게 된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한 증권사의 실수가 아니다. 한국 금융투자업계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에 가깝다.
한국 자본시장은 몸집만 놓고 보면 이미 선진국 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으로 성장했다. 시가총액 규모나 투자자 저변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대됐다. 문제는 몸집이 커지는 속도와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쌓이는 속도는 다르다는 점이다.
사실 국내 증권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은 세계적 투자은행들과 비교하면 아직 변방에 가깝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글로벌 혁신기업의 대형 기업공개(IPO) 물량 확보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곳 자체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미래에셋증권이 이번 스페이스X 딜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최대 수준의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은 해외 현지법인과 사무소를 합쳐 29개 거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국내 증권사 가운데 가장 많은 수준이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글로벌 IPO 시장에서 직접 경쟁을 시도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사실상 많지 않다는 의미기도 하다.
스페이스X 같은 초대형 비상장 기업이 상장에 나설 경우 주관사는 대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다. 이들은 공모주 물량을 배정할 때 단순히 투자 의향 금액만 보지 않는다.
해당 기관이 과거 IPO에 얼마나 꾸준히 참여했는지,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아닌 장기 투자자인지, 상장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주식을 보유할 가능성이 있는지, 글로벌 기관투자자 네트워크를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향후 다른 딜에서도 거래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즉 해외 IPO 물량 확보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수년간의 거래 관계와 신뢰, 현지 네트워크, 운용 역량이 축적돼야 가능한 영역이다.
투자은행 산업의 경쟁력 역시 마찬가지다. 글로벌 IPO 한 건, 해외 딜 한 건, 기관투자자와 거래 한 번 한 번이 쌓여 비로소 신뢰가 된다. 오늘 물량을 받지 못했다고 내일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아예 도전하지 않으면 영원히 물량을 받을 수 없다.
결국 글로벌 투자은행들과 경쟁하려면 해외 IPO 시장과 대형 딜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경험에는 성공뿐 아니라 실패도 포함된다.
만약 이번 사태 이후 국내 증권사들이 ‘괜히 나섰다가 욕만 먹는다’며 해외 공모주 배정 경쟁에 소극적으로 돌아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글로벌 혁신기업들은 앞으로도 계속 상장할 것이다. 스페이스X뿐 아니라 오픈AI, 앤트로픽 등 AI 시대를 이끄는 기업들의 IPO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금융투자업계가 글로벌 IPO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 성장의 과실을 국내 투자자들에게 연결해 줄 통로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해외 IPO 물량 확보는 단순히 증권사 실적만을 위한 사업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상장지수펀드(ETF)와 공모펀드 등을 통해 국내 투자자들이 글로벌 혁신기업 성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ETF는 수만원 수준의 소액 투자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부동산처럼 고액 자산가에게만 자산 소득 기회가 집중되는 구조와는 다르다. 글로벌 혁신기업 투자 기회를 보다 많은 국민에게 제공하는 자본시장 인프라의 역할도 함께 갖고 있다.
이번 논란은 한국과 미국의 IPO 제도 차이가 실제 시장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도 보여줬다.
미국은 주관사가 기관투자가 중심으로 물량을 배정하는 시장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하기 위해 증권신고서 제출과 일정 기간의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한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지만 글로벌 IPO 일정과 충돌할 경우 국내 금융사들만 불리한 조건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약 이러한 제도적 차이가 해외 IPO 참여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장애물이 된다면 향후 스페이스X뿐 아니라 오픈AI, 앤트로픽 등 글로벌 혁신기업 IPO에서도 같은 문제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필요한 것은 위축이 아니라 개선이다. 투자자 보호라는 원칙은 지키되 글로벌 자본시장 환경에 맞는 제도적 유연성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가능한데 국내에서는 불가능한 규제가 무엇인지, 해외 IPO 참여 과정에서 불필요한 제약은 없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 역시 문제는 바로잡되 국내 증권사들의 글로벌 경쟁력 확대 노력을 꺾는 신호를 줘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투자자를 보호하면서도 기회를 열어두는 균형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픈AI도, 앤트로픽도, 그다음 혁신기업도 결국 상장할 것이다. 문제는 그때 한국이 투자 기회를 연결하는 시장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또 한 번 구경꾼에 머물 것인가다.
잘못은 바로잡고, 제도는 보완하되, 도전은 계속 장려해야 한다. 이번 스페이스X 배정 무산 사태의 교훈은 ‘다시는 하지 말자’가 아니라 ‘다음에는 더 잘 준비해서 성공하자’여야 한다. 그래야 한국 증권업계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고, 국내 투자자들 역시 글로벌 혁신기업 성장의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다.
※사진은 미국 텍사스주 스타베이스에 있는 스페이스X 건물과 스타십 로켓 모습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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