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은 딱 60일만 ‘무료 개방’
‘유료 전환’ 시사한 가운데 민감한 핵 합의 죄다 미뤄놔
석유수출·동결 자산 해제 등 이란 숙원 모두 해소
3000억달러 재건비용도 약속…핵 물질 처리도 이란 뜻대로
![]()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종전 양해각서(MOU) 실물 문서에 각각 서명하면서, 종전안이 사실상 발효됐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 전문이 17일(현지시간) 공개되면서, 이란의 ‘판정승’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이란은 본협상이 진행되는 60일 동안 호르무즈 해협을 무료로 개방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양보 없이 기존 숙원 사업을 모두 성취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이란에 3000억달러(약 457조원) 규모의 재건기금 조성을 약속했고, 석유·원유 판매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 해외에 동결된 자산도 풀어주기로 했다. 반면 핵 합의는 대부분 후속 합의로 미뤄놨고, 이란이 포기하기로 한 고농축 우라늄(HEU)도 처리 방식을 이란 내부에서 희석시키는 것으로 했다. 모두가 이란이 바랐던 요구를 미국이 들어준 형태다.
MOU 4조, 5조, 10조, 11조는 미국이 이란에 ‘선결제’ 형태로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내용이 담겼다. 합의문 4조, 5조에서는 합의문에 서명하는 즉시 미국이 대(對)이란 해상봉쇄를 풀고, 이란은 30일 안에 호르무즈 통항을 전쟁 전 수준으로 복원한다고 적시했다.
10조에서는 미국이 MOU 서명 직후 이란산 원유, 석유, 파생상품의 수출과 은행거래, 보험, 운송 등 서비스에 제재를 유예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11조에서는 MOU가 이행되는 시점에 이란이 동결자산을 완전히 사용할 수 있도록 약속했다. 이 조항에는 이란 중앙은행이 해제되는 동결자산의 최종 수혜자를 지정하도록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를 종합하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는 대가로 즉시 에너지 수출을 할 수 있고, 그 대가도 직접 수령할 수 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묶인 자산도 가져갈 수 있게 된다.
합의문 13조는 미국과 이란이 MOU에 서명한 뒤 4, 5, 10, 11조의 이행을 시작하고, 이를 조건으로 나머지 조항(핵 협상 등)들에 대한 최종 협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만 열면 미국이 해상봉쇄를 해제하고, 이란은 석유와 원유 등을 수출할 수 있고, 동결자산 일부 해제도 양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MOU에서는 그나마 이란이 해협을 무료로 여는 기간도 딱 60일로 정해놨다. 이란 협상단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이날 이란 국영TV와의 인터뷰에서 60일 이후에는 해협 통과 비용을 받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란이 해협을 연 이후에 개시하기로 한 이란의 에너지 수출 허가와 동결 자산 해제가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체결한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보다 더 ‘후하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란의 에너지 수출에 거의 무제한적 자유를 보장하고 동결자산 일부를 해제한다는 것은 이번 MOU가 JCPOA와 비슷하지만, 동결자산의 최종 수혜자를 이란 중앙은행이 지정하도록 한다는 점은 이번 MOU가 더 이란에 유리한 조건으로 꼽힌다. 2015년 JCPOA는 동결자산의 수혜처를 인도주의 사업 등 비제재 대상으로만 한정했다.
이란이 그동안 미국에 요구했던 전쟁 배상금도 명목을 조금 바꿨을 뿐, 실질적으로는 수용했다는 평이 나온다. 합의문 6조는 미국이 이란의 재건 및 경제 발전을 위한 최소 3000억달러 규모의 확정적이고 상호 합의된 계획을 세울 것을 역내 파트너들과 약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기업 중심의 민간 투자 펀드를 통해 이란 재건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한다고 전해졌다. 정부가 나서지 않고, 민간 사업자를 내세운다는 점만 달라졌을 뿐, 이란에 재건비용으로 3000억달러를 쥐어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99%의 확률로 이란이 핵무기를 가질 수 없게 하는 것”이라 강조했던 비핵화 관련한 조항에서도 미국이 초기의 ‘고집’을 꺾고, 이란 측 요구를 수용한 대목이 보인다.
합의문 8조는 “이란은 핵무기를 획득하거나 개발하지 않기로 재확인한다”고 하면서 농축 물질 비축분의 처리를 “최소한 IAEA 감독 아래 현장에서 희석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규정했다. 이전까지 미국은 HEU를 해외로 반출해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란은 자국 내에서 희석하겠다고 제안했다. IAEA의 감독이란 조건이 붙긴 했지만, 결국 이란의 요구를 들어준 셈이다.
과거 JCPOA는 “이란은 어떤 환경에서도 핵무기를 추진하거나 개발하거나 획득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적시했다. 이번 합의가 과거 합의보다 더 간략해진 데다,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자 핵무기 개발을 금지하는 종교적 가르침(파트와)을 유지하고 있어 비핵화 선언을 괄목할만한 변화라 볼 수도 없다.
대이란제재 해제를 두고도 미국이 너무 많이 ‘퍼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의문 7조에서는 최종 합의의 일부로 합의된 일정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의 결의, 미국의 1·2차 독자 제재를 포함한 이란에 대한 모든 종류의 제재를 종료하기로 약속했다. 이란과의 비핵화 합의를 하면 미사일 개발, 테러, 인권침해, 대량살상무기 등 모든 대이란제재를 없애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미국 CNN 방송은 이번 14개 조항 합의문에 대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에 발포하지 않는 대가로 당장 많은 것을 얻어간다”고 분석했다. 합의문이 공개되자 전쟁 당사국이었던 이스라엘은 미국이 형제를 배신했다는 규탄이 나오고, 미국 공화당 진영에서도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