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차이 무력화’ 월드컵 이변 이끈 축구 약소국의 ‘골키퍼 선방쇼’

이번 월드컵서 골키퍼 활약으로 이변 속출
카보베르데 보지냐 스페인전 무실점 활약
우루과이 파상공세 막아내며 2-2 무승부
퀴라소 엘로이 룸, 에콰도르전 15개 세이브
1차전 대패 충격 딛고 완벽한 분위기 반전
이란, 베이란반드의 7차례 선방에 무승부

퀴라소의 골키퍼 엘로이 룸 [AP=연합뉴스]

[헤럴드경제=김명상 기자]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전력상 열세로 분류되던 국가들이 골키퍼 선방을 앞세워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카보베르데, 퀴라소, 이란 등은 세계적인 강호를 상대로 어려운 경기를 펼쳤으나 골키퍼들이 최대 15개에 달하는 선방 기록을 세우며 역습의 발판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번 대회 화제의 중심에는 작은 섬나라들의 수문장들의 활약이 빠지지 않는다. 카보베르데와 퀴라소는 조별리그에서 각각 스페인, 우루과이, 에콰도르를 상대로 승점을 따내는 이변을 연출했다. “패배할 것”이라는 축구 전문가들의 비관적인 전망을 뒤집은 원동력은 경기 내내 이어진 골키퍼들의 집중력과 육탄방어였다.

아프리카의 소국 카보베르데는 지난 16일(한국시간) 치른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카보베르데의 골문을 지킨 40세 노장 골키퍼 보지냐는 스페인 공격진이 시도한 7개의 유효슈팅을 모두 막아내며 무실점을 기록했다.

카보베르데 골키퍼 보지냐가 15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스페인과 경기 중 지시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보지냐는 전반 막판 페란 토레스, 페드리, 에므리크 라포르트 등이 연속으로 시도한 슈팅을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차단해 경기 최우수 선수(MOM)에 선정됐다. 이날 보지냐는 역대 월드컵 데뷔 경기에서 클린시트를 기록한 최고령 골키퍼라는 기록도 세웠다. 경기 이후 기존 5만 명 안팎이던 보지냐의 개인 SNS 팔로워는 경기 직후 최대 1400만 명 이상으로 급증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카보베르데의 돌풍은 멈추지 않았다. 카보베르데는 22일 미국 마이애미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도 2-2로 비기며 2무(승점 2점)로 조 3위를 지켰다. 이로써 카보베르데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전 결과에 따라 32강 진출까지 노릴 수 있게 됐다.

카보베르데의 케빈 피나(6번)가 21일 미국 플로리디아주 마이애미 가든스의 마이애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팀의 첫 골을 터뜨린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AFP]

이날 카보베르데는 우루과이를 상대로 전술적인 준비를 완벽히 마친 모습을 보였다. 카보베르데는 우루과이를 상대로 ‘두줄 수비’와 케빈 피나의 프리킥 선제골을 앞세워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전반 막판 우루과이의 막시 아라우호와 아구스틴 카노비오에게 연속 골을 허용하며 1-2 역전을 당했으나, 후반 교체 투입된 엘리우 바렐라의 동점골과 보지냐 골키퍼의 선방을 앞세우며 우루과이의 총공세를 막아내고 2-2 무승부를 거뒀다.

퀴라소의 엘로이 룸이 20일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E조 에콰도르와의 경기를 마친 뒤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또 다른 축구 변방국인 퀴라소 역시 골키퍼의 활약으로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퀴라소는 지난 21일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E조 2차전에서 피파 랭킹 23위 에콰도르와 0-0으로 비겼다. 인구 약 15만 명으로 역대 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최소 인구 국가인 퀴라소는 1차전에서 독일에 1-7로 대패했으나, 에콰도르전 무승부로 자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 본선 첫 승점을 획득했다.

이날 경기는 에콰도르의 일방적인 공격과 이를 막아내는 퀴라소 골키퍼 엘로이 룸의 대결이었다. 에콰도르는 경기 내내 퀴라소의 세 배에 달하는 28개의 슈팅을 시도했고, 이 중 15개가 골문으로 향하는 유효슈팅이었다. 하지만 룸 골키퍼는 이 15개의 유효슈팅을 모두 막아냈다.

퀴라소의 엘로이 룸이 20일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E조 에콰도르와의 경기를 마친 뒤 티셔츠를 들어 보이며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룸 골키퍼가 기록한 한 경기 15개 세이브는 1966년 월드컵 선방 횟수 공식 집계가 시작된 이후 역대 2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역대 1위 기록은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미국 골키퍼 팀 하워드가 벨기에를 상대로 기록한 16개다. 그러나 하워드가 전·후반 90분 동안 12개를 막은 뒤 연장전에서 4개를 추가한 점을 고려하면, 연장전 없이 정규시간 90분만 따진 기록에서는 룸 골키퍼가 역대 최다 선방 1위에 오른다.

독일전 1-7 대패의 충격을 수습한 퀴라소는 이번 무승부에도 조 4위에 머물렀으나, 오는 26일 코트디부아르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승리할 경우 32강에 진출할 수 있는 희망을 살렸다. 반면 퀴라소를 잡고 조별리그 통과를 확정 지으려던 에콰도르는 최종전에서 강호 독일을 만나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G조 벨기에와 이란의 경기. 이란의 골키퍼 알리레자 베이란반드가 경기 종료 후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신화통신]

개최국인 미국과의 전쟁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란 대표팀 역시 골키퍼의 선방을 바탕으로 유럽의 강호 벨기에와 무승부를 거뒀다. 이란은 22일 미국 LA 스타디움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G조 2차전에서 0-0으로 비겼다. 이날 벨기에는 로멜루 루카쿠와 케빈 더브라위너를 앞세워 이란의 수비를 공략했으나 골키퍼 알리레자 베이란반드의 선방에 막혔다. 베이란반드는 7차례의 선방을 기록하며 ‘통곡의 벽’이 되었다.

이란은 이번 대회에서 중동 전쟁 여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이 일부 스태프와 임원의 비자 발급을 제한함에 따라, 이란 대표팀은 멕시코 티후아나에 캠프를 차리고 경기 당일에 미국을 오가는 이른바 ‘출퇴근’ 일정을 치르고 있다. 악조건 속에서도 이란은 특유의 ‘질식 축구’를 앞세워 조별리그 무패를 이어가면서 32강 토너먼트 통과 가능성을 높였다. 이란은 오는 27일 이집트와 조별리그 3차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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