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사우스웨일즈 주립 미술관에서 만난 쿡선장과 K-작가[함영훈의 멋·맛·쉼]

강한 포용력 호주, 한중일과 아시아 아트 리더로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주립미술관 나알라누라-나알라바누 사이에 설치된 한국작가 이우판의 렐라툼


‘아트 갤러리 오브 뉴사우스웨일즈’ 인근에 있는 하이드파크의 아치볼드분수


NSW주립미술관 인근 하이드파크에서 본 호주최초성당 세인트메리 대성당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시드니 로얄 보타닉 가든에서 하이드파크, 세인트메리성당을 지나면 식물원 남쪽 끝자락 외진 곳에 한국인 예술가의 돌 거울 작품이 나알라누라-나알라바두 두 건물 한복판 공터에 서 있는 뉴사우스웨일스 주 미술관(art gallery of nsw)이 시드니 항구를 내려다 본다.

인물화, 풍경화, 현대회화 분야에서 호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의 ‘국전’같은 어워드인 아치볼드, 윈, 슐만 상 수상작들과 마네, 고흐 등 유럽 명작들, 원주민의 풍속이 그대로 남아있는 민속예술,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의식있는 예술작품, 군사시설을 아이들 놀이터 형식의 미술관으로 바꾼 탱크아트시설 등이 모여 있는 곳이다.

‘아치볼드상’의 수상작 선정기준에는 다른 나라에서 볼수 없는 ‘국가 기여’라는 항목이 있다. 예술이 예술가 멋대로 작품을 빚어내기 보다는 작품을 통해 인류와 지구, 호주와 지역공동체를 위해 어떤 순기능을 할 것이냐라는 목적의식이 들어있어야만, 사람의 정서를 이끄는 아트리더의 자격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2026년 호주의 국전격인 아치볼드상 대상 수상작은 원주민 할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에게 돌아갔다.


흐린날 미술관 외관. 궂은날 여행지로는 미술관이 최고다.


미술관 내부


‘윈상’은 풍경화 중심의 어워드이고, ‘슐만상’은 서브젝트를 가진 테마아트, 새로운 장르가 개척됐다는 인상이 들는 고도의 창의성을 평가하는 시상이다.

특히 슐만상은 시상의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덕망있는 심사위원 1명만을 정해 그가 수상작 선정의 전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실내와 자연이 일체가 된 듯한 그림


우리가 ‘임시 방편으로 비슷하게 꾸미다’라는 뜻으로 원어와는 다르게 발음하는 캄푸라치, 즉 ‘카모프라이즈’라는 작품은 거실에 자연을 가져온 듯한, 즉 자연과 생활공간의 일체화를 표현했다. 소파다리를 보고서야 실내라는 것을 확인한다. 소파의 무늬와 풍경화 속 자연의 색감이 혼동되게 표현했다. 한마디로 호주의 청정자연과 함께 하며, 자연속에 스며드는 삶, 우리말로 신토불이에 가깝겠다.

환경보존이 가장 큰 지향점이자 테마인 호주에서 자연은 매우 중요한 예술소재이다. 초상화로 당선된 우수작가 작품은 대부분 환경운동자, 헤리티지보존운동가등의 얼굴이다.

원주민 리더의 근엄한 모습 ‘찐쭈르 찐쭈르’


찐쭈르라는 원주민 에보리진 부족의 족장 얼굴을 밀도있게 그린 작품도 우수작에 꼽혔고, ‘호주의 배꼽’이라 불리는 사막지대 일루완티의 고단한 삶을 억척스럽게 살아오다가 나이들어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서 관절이 좋지 않은 어느 원주민 할머니의 구부정한 자세를 그린 작품(리처드 레워 작)은 2026년 최고상을 받았다.

작가는 “할머니가 친절하면서도 강인했다”고 전했다. 일루완티 할머니 작품은 여백이 많은데, 방문객들에게 ‘그 여백에 할머니 삶의 배경을 그려주세요’라는 흥미로운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원주민 음악가가 바닷속에서 키보드 음악에 맞춰 고래와 춤추는 모습 또한 우수작에 뽑혔다. 미술관측은 “그림을 귀로 들어보세요. 어떤 소리예요?”라고 묻는 카피로 관심을 유도한다.

미술관 입구는 고대 성지 처럼 꾸며놓았다.


호주가 아시아의 일원이 되면서, 문화다양성, 특히 230개 호주내 부족의 역사를 일일이 보듬으려는 자세는 뒤늦었지만, 참으로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호주의 포용력이다.

이리바나 갤러리는 원주민 미술 전문관이다. 이리바나는 원주민 중 어느 부족어로 “이리와바라”는 뜻이라는 설명에 한국인 관광객들은 놀란다. “혹시 고대 한국인도 이곳에?” 하는 착각을 일으킬만한 단어였다.

“삶의 모습이 모두 예술”이라는 슬로건이 설명문에 들어있는 가족놀이터예술관 ‘더 키스(Key’s) 언더 더 매트’는 과거 군사용 유류저장 탱크였다. 군사적 목적의 벙커임을 알려주는 기둥은 그대로 보존했고, 예술가들의 창의성이 바닥 장식 예술로 표현돼 있으며, 곳곳에 예술가의 영감이 밴 미끄럼들 같은 놀이기구가 있다.

일종의 정크리사이클링 라이프스타일 예술인, 테마파크식 물폭탄 놀이기구


워터파크의 물폭탄 바가지도 만들어두었는데, 버리기 아까운 물건들을 리사이클링해 만들었다. 옷이 다 젖어도 아이들이 대형 두레박을 쏟기 위해 줄을 당기는 이 작품이 아이를 포함하는 가족단위 여행객과 성인 친구들 방문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

커피를 우리고 남은 슬러지로 그린 그림, 다른 지역 예술가의 마티에르(질감) 기법과는 달리 칫솔로 문질러 보다 섬세하게 표현한 호주형 마티에르의 창의성도 눈의 띈다.

지어진 지 150년이나 됐으니, 호주의 도시형성 무렵부터 이 미술관이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는 이호임씨를 비롯해 한국인 도슨트가 7명이나 된다. 호주가 컬쳐와 아트에서 한국을 중시한다는 점을 엿보는 대목이다. 호주인들의 K-컬쳐 성지순례는 매년 급증하는 추세이다.

보타닉 가든과 하이드파크 도메인 공원의 높은 숲에 가려 잘 안보이는 미술관이다. 애초부터 자연을 방해하지 않게 짓자고 민관의 총의가 모아져, 낮은 자세로 녹지의 끄트머리에 앉았다.

새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시드니 로얄보타닉-도메인공원 끝자락에서 숲에 가려진 주립미술관이 겨우 보인다.


한국인 이우판의 작품 ‘렐라툼 Relatum-대화 2025’은 미술관의 두 건물 사이 미니숲 공터에 전시된 야외작품이다. 철판 거울 앞 뒤로 돌이 있는 모습이다. 돌이 외출을 하려는지 거울을 계속 본다. 둘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돌)과 산업(철판거울)을 화해시키고 연결하는 의미를 담았다. 돌은 마침내 거울속으로 들어가고, 철판밖 자기 모습을 다시 본다.

이우판은 국내와 해외에서 미술공부를 마친 뒤 1960년대 천연 재료와 산업 재료의 관계, 사물과 관객의 상호작용을 강조한 영향력 있는 모노하(사물학파) 미술 운동을 공동 창립했다. ‘공허함이란 조화와 긴장을 동시에 일으키는 힘’이라는 지론에서다.

1972년부터 작가가 자신의 모든 조각 작품에 붙인 제목인 렐라툼은 사물과 사람 사이의 연결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보여준다. 그는 “렐라툼 대화에서 거울로 닦은 강철은 주변 땅, 나무, 하늘을 반사하며 화강암 바위와 대화를 나눈다”고 소개했다.

“쿡 엉클, 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별관 지상층 입구에 있는 쿡 선장 조각상


별관에서 지하 전시장을 내려다는 곳에 앉아있는 쿡 선장의 모습은 왠지 외로워 보인다. 그는 호주를 유럽에 처음으로 알린 탐험가이다. 호주가 선주민에 대한 미안함 표현과 차별없는 다문화 지향성이 더해질수록, 당시 선주민에겐 불청객이었고 선주민을 자기땅에서 유배당하게 했던 유럽발 이주민의 조상, 쿡선장의 입지가 그렇게 당당할 수 만은 없겠다 싶다. 미술관을 내려다보는 쿡 동상의 모습에서, 개척의 보람과 선주민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하고 있다고 감정이입을 해본다.

버려진 철판으로 만든 정크예술 ‘나르봉(원주민의 망태 가방)’ 작품 역시 원주민(또는 선주민)에 대한 잃어버린 기억들을 되찾아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뉴사우스웨일즈 주 미술관을 필두로, 요즘 많은 호주 뮤지엄에서 아시아 예술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한국인 작품 외에 중국 전통예술, 호주북부 뉴기니아 남부 섬들의 문화, 일본 쿠사마야요이 작품 전시 등 일련의 행보는 호주가 우리 아시아의 당당한 문화 리더가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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