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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옥희(본명 김광숙)의 빈소가 마련된 21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사진공동취재단/연합] |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고(故) 옥희의 영결식이 24일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졌다.
남편이자 전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 홍수환은 이날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옥희(본명 김광숙)의 영결식에서 고별사를 낭독하며 “저는 (옥희가)천국에 갔다고 믿는다. 이렇게 많이 모여 주셔서 같이 살던 사람으로서 너무 감사드린다”며 “내가 이렇게 훌륭한 가수랑 살았나 싶다. 30년을 같이 살아도 더 멋진 모습을 보게 된다”고 했다.
이날 자리에는 대한가수협회장 박상철을 비롯해 가수 유현상, 강진, 임희숙, 장미화, 강혜연 등 고인과 가까웠던 이들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홍수환은 “눈물도 많이 나왔지만, 아내가 하나님 앞으로 가 ‘히트곡이 무엇이었느냐’라고 물으면 ‘이웃사촌입니다’라고 답할 것”이라며 “그러면 ‘얘 특실로 모셔라’라고 할 것 같다. (아내가)천국에 갔다고 믿는다”고 했다.
홍수환은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 굉장히 재미있는 옥희이지 않았나”라며 “그런데 나에게는 말이 참 없는 여자였다”고 했다. 이어 “남의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식구들에게는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없을 때가 많았다”며 “같이 살아봐야 안다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옥희를 배웅하기 위해 모인 이들에게는 “끝까지 건강하길 바란다”며 “작은 일이라도 서로 이웃에게 전해서 건강 악화로 죽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희숙은 추도사에서 “아프실 때 아프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옥희 가수님을 이제 보내드려야 된다”며 “믿어지지 않는다. 진짜 옥희가 하늘나라에 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장미화는 “옥희야. 너를 이렇게 차가운 영정사진으로 맞이해야 한다니, 얼마나 아팠니”라며 “우리가 서로 무대에 서서 노래를 시작했던 그 시절이 참 뜨겁고 치열하다. 너는 독보적인 허스키 보이스와 당당한 몸짓으로 무대를 휘어잡던 그 누구보다 멋지던 디바였다”고 했다.
히트곡 ‘이웃사촌’과 ‘나는 몰라요’ 등으로 1970년대 인기를 누린 가수 옥희는 지난 20일 오후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73세.
옥희는 5인조 걸그룹 서울시스터즈의 리더로 데뷔해 해외 활동을 했다. 귀국 후에는 솔로로 전향해 큰 사랑을 받았다.
고인은 한국전쟁 도중인 1953년 피란지 부산에서 악극단 활동을 하던 부모 사이에서 출생했다. 휴전 후 상경한 옥희는 배화여중 3학년생 때 명동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던 고모의 소개로 가수 현미를 만났다. 이를 계기로 미8군쇼 공급 업체에서 오디션을 보고 연예계에 발을 디뎠다.
1968년 5인조 서울시스터즈의 리더로 데뷔한 뒤 홍콩, 중동,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각지에서 공연을 했다.
옥희는 귀국 후 1974년 ‘나는 몰라요’로 솔로로 데뷔, 국내 활동에 나섰다. 옥희는 ‘눈으로만 말해요’, ‘어디에 있을 것 같아’, ‘아 그날이’, ‘이웃사촌’, ‘두 손을 잡아요’ 등으로 인기를 이어갔다.
옥희는 지난해 신장암을 진단받고 투병 생활을 했다. 이보다 1년 전인 2024년 발표한 ‘고마운 사랑’과 음악 동인 예우회의 ‘전설을 노래하다’ 음반에 실린 ‘인생 열차’가 고인이 남긴 마지막 노래가 됐다.
옥희는 투병 중이던 올해 3월에도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 ‘정열의 꽃’을 열창하는 등 음악의 열정을 이어갔다.
고인은 홍수환과의 사이에 아들 1명과 딸 1명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