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푸틴의 발레리나’로 불리는 러시아의 스타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내한 공연이 취소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주최 측은 안전을 고려한 조치로 정치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러시아 측은 정치를 거론하면서 반발하고 있다.
16일 공연계에 따르면 공연기획사 인아츠프로덕션은 다음 달 17일과 19∼2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자하로바와 볼쇼이 발레단 주역 무용수들의 공연 ‘모댄스’를 취소했다.
인아츠프로덕션은 공지를 통해 “최근 아티스트와 관객의 안전에 대한 우려 및 예술의전당의 요청으로 합의해 취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예술의전당 측도 “공공 공연장에 많은 수의 관객이 모이는 만큼 혹시 모를 안전 문제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기획사와 합의해 취소를 결정했다”고 했다.
그러나 주한러시아대사관은 “문화예술 분야의 협력이 정치적 게임의 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평을 냈다.
대사관은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겨냥해 “대한민국에 주재하고 있는 여러 제3국 외교대표들이 러시아와의 문화교류를 중단하라는 부적절한 요구와 함께 예정된 러시아 발레단의 공연을 폄하하기 위해 펼치는 비열한 캠페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불행하게도 많은 서방 국가에 만연해 있는 그러한 정치화된 반계몽주의가 현대 세계에서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확신한다”고 비판했다.
자하로바도 전날 현지 매체인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주최자, 티켓을 구매한 관객, 우리에게도 모든 게 무산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투어가 주최 측이 아닌 정부 차원, 즉 문화부 차원에서 취소된 것이라고 확인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자하로바는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여겨지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두 차례 수상한 세계 정상급 무용수지만, 동시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문화계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자하로바가 내한 공연을 갖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은 지난 4일 “자하로바의 공연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정당화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을 경시하는 것과 같다”는 성명을 냈다.
공연계에서도 친푸틴 인사인 자하로바의 내한 공연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주장과 자칫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반면, 예술과 정치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모댄스’의 내한 공연 취소 이후에도 올해 상반기 러시아 발레단 소속 무용수들의 내한 공연이 예정돼 있어 파장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음 달에는 ‘볼쇼이 발레단 갈라 콘서트 2024(볼쇼이 갈라)’, 5월에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을 필두로 볼쇼이 발레단 등 6개 발레단 무용수들의 내한 공연이 예정돼 있다.
세종문화회관은 다음 달 16∼18일 예정된 대관 공연 볼쇼이 갈라의 진행 여부를 놓고 여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 해당 공연은 자세한 출연진과 티켓 판매 일정을 공개하지는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