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 중 1명이 ‘집행유예’ 받는 마약 투약…‘물처벌’ 받는 이유는 [취재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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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 대학생인 A씨는 케타민·엑스터시·합성대마 등을 5회 투약, 2회 매수했다. 하지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처분을 받았다. 단 40시간의 약물치료강의 수강 및 보호관찰 기간 동안 약물 중독에 대한 치료를 받도록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취급한 마약류의 종류와 양이 적지 않으며, 이 사건 범행 횟수만 해도 7회에 이른다”면서도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재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 단약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점, 가족들도 피고인에 대한 강한 지지를 보이며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학생으로 수용시설 내 생활을 통한 교화보다는 가족의 지지를 받으며 마약 중독에 대한 치료를 전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양형요소를 참작했다”고 적시했다.

#2. 학생인 B씨는 필로폰을 6차례 투약하고, 1회 필로펀을 건네받았다. 앞서 마약 투약 등으로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도 있었다. B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10만원 추징, 40시간의 약물중독 치료강의 수강, 보호관찰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횟수가 적지 않을 뿐 아니라 피고인이 자수를 하고 경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투약과 자수를 반복하는 등 중독성이 심한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이 동종 범죄로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적이 있는 점 등은 불리한 정상”이라면서도 “자백하면서 반성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일부 범행을 자수했고 필로폰을 끊기 위해 약물치료, 심리치료 등을 받으면서 재범 방지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점, 초범이고 학생인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했다.

지난해 마약사범은 2만명을 넘겨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5명 중 1명 꼴로 집행유예 처분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을 단순 투약하거나 소지한 사범은 2명 중 1명이 집행유예 처분을 받는다. 마약이 일상 곳곳에 스며들며 윤석열 대통령까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최근 마약 판매를 할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하도록 양형기준을 상향한 바 있다. 하지만 마약 사범, 특히 투약의 경우 재범율이 높은 데 비해 양형 기준이 낮다는 비판은 꾸준하다.

마약 사범 절반이 ‘투약’ 사범이지만 2명 중 1명은 ‘집행유예’
마약 투약 [대검찰청 '2023년 마약류 범죄백서]

대검찰청이 올해 6월 발간한 ‘2023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사범은 2만7611명으로 최초 2만명을 넘겨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도(1만8395명) 대비 50.1% 증가한 수치다. 특히 지난해 투약·단순 소지 사범은 1만2758명으로 전체 마약사범의 46.2%를 차지한다.

마약사범은 재범률도 높다. 최근 5년간 10명 중 3명이 꾸준히 재범을 저질렀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22년 전체 범죄자 중 ‘동종범죄’를 저지른 재범자는 10명 중 3명(29.7%)인데 반해 마약범죄 재범자는 5명 중 1명(40%)으로 나타났다. 1년 이내 동종범죄 재범자는 전체 범죄 재범자(40.2%)에 비해 마약범죄 재범자(44.4%)가 높았다.

연도별 마약류 사범 1심 선고 현황. 마약 사범 5명 중 1명은 집행유예를 선고 받는다. [대검찰청 '2023년 마약류 범죄백서]

하지만 전체 마약 사범 5명 중 1명은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마약류 사범은 2446명으로, 40.6%에 달했다. 벌금형 또한 175명으로, 2.9%를 차지했다. 투약의 경우 특히 집행유예 선고율이 더 높다. 대검찰청이 2020~2022년 판결이 확정된 투약·단순소지 사범 146명의 선고형량을 분석한 결과, 투약사범의 경우 2명 중 1명 꼴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10명 중 9명은 징역 2년 미만을 선고 받는다. 마약 매매나 수출입·제조에 비해 처분이 약한 것이 현실이다.

다른 마약 범죄에 비해 투약의 경우 형량이 낮다는 점도 문제다. 투약·단순 소지의 경우 기본 형량은 징역 6개월~4년으로 일반 매매·알선은 10개월~12년, 미성년자에 대한 매매·수수는 10개월~13년, 수출입·제조는 1년~12년, 대량범은 3년~15년에 비해 형량이 크게 낮다.

감경요소도 다양하다. 미필적 고의로 범행을 저질렀거나 자수, 자발적·적극적 치료의사, 형사처벌 전력이 없을 경우 감경요소로 작용한다. 검찰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검찰청 마약과장을 역임한 천기홍 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초범 투약 사범은 재범 방지를 위해 상담,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를 한다”고 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1월 대마·향정·마약에 대해서도 형량 범위를 수정해야 한다고 했지만, 대한변호사협회 등의 반대에 부딪혔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마약범죄 양형기준 수정안 설명자료’]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올해 3월 미성년자에게 마약류를 판매·제공하거나 대량범에 대한 마약 범죄 수정 양형기준을 의결했지만, 투약범에 대해서는 대마를 제외하고 양형 기준을 상향하지 않았다. 올해 1월 마약범죄 양형기준 수정안만 해도 향정 투약·단순소지의 형량을 최소 징역 10개월~ 최대 3년에서 최소 1년~최대 5년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마약 투약·단순소지의 경우 최소 1년~최대 4년에서 최소 1년~최대 6년으로 상향하기로 했지만, 대한변호사협회 등의 반대에 부딪혔다. 마약 투약에 대한 대응은 치료와 관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약 투약 ‘물처벌’ 배경엔 마약=질병이라는 인식 깔려 있어

법조계의 대다수는 투약 사범에 대해선 엄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에 공감한다. 공급사범 엄벌·투약사범 치료,재활을 우선으로 두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이다. 마약을 질병으로 보는 관점에서 비롯됐다. 마약 전문 박진실 변호사는 “WHO, UN 마약위원회에서도 단순 투약자의 경우 초범이고, 재범의 우려가 없다면 실형을 선고해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보다 제대로 치료, 재활을 해서 사회에서 건강한 구성원으로 살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투약 사범에 대한 기본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마약 검사 출신인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김희준 대표변호사 또한 “검사 시절엔 범죄의 관점에서만 봤지만, 이렇게만 바라보면 절대 해결할 수 없고 범죄에 질병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며 “치료가 우선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 수감을 시킨다고 해도 출소를 하면 또 재범을 저지른다”고 지적했다.

다만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전 전주지방검찰청 정읍지청장 출신인 김우석 법무법인 명진 대표변호사는 “양형의 기본은 국민적 합의에 있다. 최근 음주운전 사건의 경우 일전에 3진 아웃이었다면 최근엔 2진 아웃, 예전에 벌금형이 선고됐다면 지금은 실형이 나오는 등 형량이 세졌다”며 “마약에 대해서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의견이 거세진다면 기본 양형이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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