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 급썰물…비중 최대 1% 줄어
환율 상승에 ‘건전성’ 위기…실적 하락 우려도
밸류업 정책의 수혜업종으로 주목받았던 금융지주사가 탄핵정국의 불확실성에 빠지면서 일제히 비상대응체제에 돌입했다. [헤럴드DB] |
[헤럴드경제=김광우·강승연 기자] 정부 밸류업 정책의 수혜 업종으로 주목받았던 금융주가 계엄령 선포 사태로 인해 성장동력을 잃었다. 외국인 투자자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주요 금융지주의 주가는 일제히 하락세를 기록했다. 심지어 계엄 후폭풍으로 인한 탄핵정국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올해 기업가치 제고를 1순위 과제로 추진했던 주요 금융사들은 일제히 비상대응체제에 돌입했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직후인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4대 금융지주(KB금융·신한·하나·우리)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지난 3일 종가 기준 10만1200원이었던 KB금융 주가는 6일 8만5300원으로 1만5900원(15.7%) 감소하며,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지주도 같은 기간 주가가 5만6400원에서 5만1300원으로 5100원(9.0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하나금융지주가 6만6000원에서 6만800원으로 5200원(7.87%), 우리금융지주가 1만7200원에서 1만6190원으로 1010원(5.87%) 주가 하락세를 기록했다.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고객이 업무를 기다리고 있다.[연합] |
특히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도세가 지속되며 주가 하락세를 이끌었다. 금융주의 경우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아 외국인 자금 이탈이 주가에 큰 영향을 준다.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코스피에서 외국인의 순매도액이 가장 큰 종목은 KB금융(3329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신한지주 1014억원 ▷하나금융 322억원 ▷우리금융 144억원 등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국인 지분율 감소도 눈에 띄게 나타났다. 외국인 투자자의 금융업종 지분율은 3일 37.19%에서 6일 36.12%로 1%포인트(p) 넘게 줄었다. KB금융은 같은 기간 78.14%에서 77.19%로 가장 큰 폭(0.95%p) 감소했다. 신한금융은 61.09%에서 60.62%로, 하나금융은 68.29%에서 68.14%로, 우리금융은 46.11%에서 45.84%로 줄었다.
올해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자 연초부터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한 바 있다. 특히 4대 금융을 포함한 금융주들은 수혜 기대감을 타고 높은 상승률을 기록해 왔다. 주주환원 강화가 밸류업 정책의 핵심으로 꼽히며, 고배당 대표 업종으로 여겨진 영향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투자자 이탈이 지속되자, 금융주는 되레 올해 쌓아온 상승분을 가장 빠르게 반납하고 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이날 거래를 시작한 코스피,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 |
여기에는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인한 주주환원 여력 악화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은 비상계엄 직후 달러당 1440원대까지 상승한 직후 다소 안정됐지만, 여전히 1420원대를 상회하고 있다. 환율이 상승할 경우 기업들이 외화예금을 인출하고, 외화대출의 평가액이 오르면서 은행의 부담은 커진다.
특히 주요 금융지주들은 현재 보통주자본비율(CET1) 등 자본적정성 비율을 주주환원의 조건으로 내건 상황이다. 하지만 통상 원/달러 환율이 10원 증가할 경우 보통주자본비율은 2~3bp(1bp=0.01%)가량 하락한다. 자본적정성 비율이 하락한다는 것은 은행의 자기자본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진다는 얘기로, 은행의 기업가치 평가와 직결된다. 주주환원 기대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심지어 은행 등 금융업종의 실적 기대감도 줄어들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나타나며 수익성 하락이 예상되는 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 우려 여파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나이스신용평가는 내년 금융전망에 대해 증권과 캐피탈, 부동산신탁, 저축은행 등 업종에 대해 전망을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부동산 PF 부실 정리가 진행되며, 실적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연합] |
아울러 주말 사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부결되면서, 정치적 불안정성이 장기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의 증시 이탈 및 환율 급등 현상 또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연구원은 “탄핵 등 상황이 정리되지 않고 불확실성이 유지될 경우 원/달러 환율 상단을 1450원대까지 열어두고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요 금융지주들도 비상대응체계에 돌입하고, 대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외화 유동성 등 금융시장 모니터링을 지속 점검하며, 혹시 모를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실제 KB금융은 지난 7일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지주 주요 임원이 출근해 비상근무를 하도록 했다. 신한금융도 같은 날 지주사와 그룹사별 위기관리위원회를 개최하고,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나섰다.
밸류업 정책을 주도한 금융당국 또한 금융권과 논의를 통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전 5대 금융지주 회장 등과 만나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밸류업, 유동성 등 현안에 대한 논의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금융정책 현안도 당초 일정과 계획에 따라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며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한 조치 등 기 발표한 정책을 차질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