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의 읽는 노래> 18.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 진짜 ‘힐링’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무대 위로 올라가 어른의 평가를 받고/떨리는 가슴 졸이며/노래를 부르고 혹은 울고 웃고/그 어디에 있을까/아이들의 밝은 모습은/신나게 놀기도 전에 진열장 상품이 되어가네 Oh Sad Mistake”

독자 여러분 중에도 걸그룹들의 ‘삼촌팬’이 많으시죠? 어디에서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 예쁜 소녀들을 발굴해 한데 모아놓은 것인지, 수많은 가수들을 접하는 기자 역시 경이롭습니다. 걸그룹들의 무대를 볼 때마다 기자는 절로 환하게 무너지는 표정을 감출 수가 없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걸그룹들이 부르는 알콩달콩한 가사와 멜로디를 가진 노래들을 만드는 이들이 누구인지 떠올리면 조금 소름이 돋습니다. 한번 앨범 속지에 담긴 작사ㆍ작곡ㆍ편곡자 명단을 살펴보세요. 그리고 앨범의 제작을 진두지휘한 프로듀서의 이름을 들여다보세요. 대부분 ‘삼촌팬’들의 또래 혹은 그 이상의 아저씨들일 겁니다.


“우린 시작해야해 아이들은 이제 다시/자유롭게 뛰어 놀며/춤추고 노래하고 웃어야해/가혹한 말들도 두둥실 뜬 칭찬들도/이제 그만 거둬들여 더 이상 슬픈 실수는 No More Sad-Mistake”

아이돌 음악은 기획사와 프로듀서의 음악입니다. 기획사들은 대개 사전에 기획된 콘셉트에 따라 멤버들을 부품처럼 짜 맞춰 아이돌 그룹을 완성합니다. 콘셉트와 부합한다면 누가 멤버로 들어와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매일 땀 흘리며 연습하는 어린 연습생들은 늘 어른들의 가혹한 평가 속에서 기약 없는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야 하죠. 래게 밴드 윈디시티의 리더 김반장이 발표한 싱글 ‘노 모어 새드 미스테이크(No More Sad-Mistake)’는 아이들의 아이들답지 않은 목소리를 듣고 느낀 서글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슬픈 실수는 없었으면 해/실수를 논하기보다 노력하면 되는데/억압된 삶과 한이 있는 민족이/정작 새싹의 문화생활과 예술에/이렇게 무관심 할 수가/난 가리지 않아 방법과 수단/재능 찾아주고 될래 구세주가/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신나게 놀아보자”

학창시절을 반납한 채 연습에 매달려 가요계에 데뷔한 아이돌들 앞에 놓인 길 역시 가시밭길입니다. 여러분은 지난해 데뷔한 걸그룹이 모두 몇 팀인지 아시나요? 마마무, 아일라, 칠학년일반, 립서비스, 모아, 멜로디데이, 원피스, 스칼렛, 윙스, 배드키즈, 빌리언, 베이비, 베리굿, 스마일지, 단발머리, 타픽, 프리츠, 예아, 에이코어 등등 어휴……. 무려 30팀에 가깝습니다. 여러분은 이들 중 몇 팀이나 알고 계신가요? 솔직히 기자도 잘 모르겠습니다.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기도 전에/아이들은 무대로 올라와 화려한 연예인이 되어야 하네/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기도 전에/아이들은 무대로 올라와 화려한 연예인이 되어야 하네”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돌들의 현재사(現在史)는 가십 거리에 불과합니다. 몇몇은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대다수는 이제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알아보기 힘들만큼 잊힌 존재들이 됐죠. 하물며 제대로 조명 받지도 못한 채 가요계에서 사라진 대다수의 아이돌들은 도대체 어디로 흩어진 걸까요? 그리고 아이돌로 데뷔하지도 못한 채 가요계 언저리에서 머물다 사라진 수많은 연습생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문득 기자에게 “연습실과 숙소를 오갈 때 길에서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 소원”이라던 한 아이돌의 한숨 섞인 푸념이 떠오릅니다.

“왜 연예인이 되어야 해 라는 질문에 한 번 더 필터를 걸러 내/너네가 하고 싶은 걸 해/One Way가 아닌 사거리 가운데 중점을 둬/My Man, U Still Got Some Time/괜히 엄한 곳에 화내지마 다 이유가 있어/소신껏 이야기 하는 법부터 또 자신을 소중히 아끼고 춤 춰”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일 여유도 없이 어른들의 사랑 노래를 부르는 아이돌들의 모습이 우리네 삶과 다를 게 있나요? 우리 역시 철저하게 도식화된 성공을 바라보며 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좋은 대학을 졸업해 이름을 알 만한 대기업에 들어가 승진하거나 먹고 살만한 걱정을 덜 해도 되는 전문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을 성공으로 알잖아요? 기획사의 그늘 아래에서 아등바등하는 아이돌들이 자본의 그늘 아래에서 아등바등하는 우리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자기의 이야기가 뭔지도 모른 채 어른들의 사랑 노래를/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진실보다 경쟁을 먼저 배우네/마치 길은 이 길 하나밖에 없는 것 마냥/모두 다 같은 한 방향으로 줄을 세워/옴짝달싹 아이들은 울고 웃네/아이들은 울고 웃네”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뜨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과연 아이돌들뿐인가요? 제 아무리 ‘고학력’에 ‘고스펙’을 갖춰도 괜찮은 일자리 하나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이잖아요. 노력해도 안 되는 현실을 사회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세상이 그렇게 비겁한 변명으로 나온다면 우리는 우리대로 길을 찾아야죠. 이젠 주변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나서는 것이 ‘힐링’인 세상이 온 듯합니다. 현재 자신의 자리에서 가능한 ‘플랜B’를 함께 찾아보시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내 모든 것을 ‘올인’ 하기엔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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