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정덕현] 어쩌다 역사를 ‘무도’와 ‘암살’로…

올 여름 영화 <암살>의 흥행은 사실 예견하기 어려웠던 일이었다. 물론 <전우치>에 <도둑들> 같은 일련의 히트작을 내놓은 최동훈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 어딘가 한계점이 되지 않을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콘텐츠들은 그 소재가 가진 무거움 때문에 지나치게 진지해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웬걸? <암살>은 이런 예상을 깨고 일제강점기의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지극히 장르적인 재미를 추구함으로서 1천만 관객을 넘어서는 성과를 거두었다.

흥미로운 건 지극히 상업적으로 만들어져 성공한 <암살>로 인해 당대에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들, 특히 여성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 문제가 공론화되었다는 점이다. <암살>은 웬만한 역사 교육이 입시교육의 하나로 치부되면서 점점 잃어가고 있는 역사의식의 한 자락을 잡아내는 힘을 발휘했다. 역사 교육이 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영화 한 편이 해낸 것.

최근 방영된 <무한도전>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무한도전>이 일본 우토로 마을과 하시마 섬을 방문한 것. 강제 징용되어 끌려갔다가 해방되어서도 돌아오지 못하고 우토로 마을에 정착한 우리 동포들은 일본 정부의 재개발로 인해 쫓겨날 위기에까지 몰렸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사실이 알려지고 민간단체들이 나서 도운 결과 겨우 떠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도 조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마을 찾은 유재석과 하하는 거기 1세대로 유일하게 생존해 계신 강경남 할머니 앞에서 “너무 늦게 와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하하가 서경덕 교수와 함께 방문한 하시마 섬에서는 더욱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제징용 사실이 누락된 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시마 섬은 일본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곳으로 관광 상품화되고 있었던 것. 그 아비규환의 지옥도에서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강제노역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도 않는 곳에 비석 하나로 합장되어 있었다.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그분들이 그토록 원했다는 따뜻한 쌀밥과 고깃국을 뒤늦게 ‘배달’한 후 한없이 고개를 떨궜다. 방송이 나간 후 우토로 마을과 하시마 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암살>이나 <무한도전>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가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이처럼 촉발시키는 이면에는 우리네 역사 교육에 대한 실망감이 자리해있다. 역사교육이라는 것이 정답만을 찾으려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왔고, 이를 다양한 역사관과 해석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뒷걸음 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니 어디 역사 교육이 제대로 될 턱이 있을까. 어른들이 이른바 색깔론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을 때, 아이들의 역사 교육은 방치되고 있다. 이념의 잣대에 맞춘 역사의 해석을 강요하기보다,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역사 교육을 할 수는 없는 일일까. 어쩌다 우리네 역사교육은 <암살>이나 <무한도전>보다도 못한 지경에 이르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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