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9일 탄소중립법 제8조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청구인과 대리인단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주소현 기자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1년 6개월 뒤로 입법 시한을 정하면서 개선입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헌재 결정 취지에 어긋난다는 당부도 더했다.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법 개정 미비로 공백이 생길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9일 헌재는 헌법재판관 9인 전원일치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고, 2026년 2월 28일까지 보완 입법을 권고했다. 해당 조항은 2026년 3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헌법불합치는 법에 위헌 소지가 있지만 곧바로 법 효력이 사라질 경우 발생할 혼란을 고려해 당분간 효력을 유지시키는 것을 말한다.
헌재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2031년부터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정하지 않은 것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탄소중립기본법과 시행령은 2030년 40% 감축을 중간 목표로, 2050년 탄소중립을 최종 목표로 설정했다. 제8조 제1항은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NDC)을 2018년 대비 35% 이상 범위에서 감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헌재는 탄소중립기본법이 중간목표 시점(2030년)과 최종목표 시점(2050년) 사이인 2031~2049년 감축목표를 정하지 않아 기본권인 환경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입법 시한을 정하면서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미 설정된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까지 효력을 상실시키는 것은 중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정량적 수준을 계획하고 이행을 관리해야 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해 둔다”고 강조했다.
헌재가 결정문을 통해 입법 공백이 헌재 결정 취지와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입법 시한을 정하며 ‘조속한 시일 내 입법’, ‘합리적·체계적 정비’ 등 원론적인 수준에서 보완 입법을 당부하는 수준에 그친다. 이영주 변호사(법무법인 원)는 “통상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 구체적인 헌재 결정 취지를 언급했다. 보완 입법 필요성을 강조하며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과 한제아 양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
헌재가 이처럼 입법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고도 개정 없이 방치된 법이 많기 때문이다. 법제처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고도 개정이 되지 않은 법은 총 43건에 달한다. 위헌 23건, 헌법불합치 20건이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정해둔 입법 시한을 넘긴 법안도 8개에 달한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특히 ‘감축 목표치’ 조항을 대상으로 한 만큼 입법 공백 발생 시 우려가 더 크다. 2030년을 기점으로 한 중간 목표가 사라지는 역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우려해 헌재는 “감축목표 설정 체계는 입법 형성의 영역”이라면서도 “단년도 목표를 여러 시점으로 설정하는 방식, 다년도 목표로 일정 구간별로 전체 또는 평균적인 감축 비율을 정하는 방식으로 누적 배출량을 통제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고 선택지를 제시하기도 했다.
정부 기후 정책을 둘러싸고 수차례 진통을 겪은 유럽 국가들은 사법부 권고대로 법을 고치는 것은 물론, 지속적으로 후속 대책을 내놓고 있다. 네덜란드가 대표적이다. 네덜란드의 환경단체 우르헨다가 2013년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대표적이다. 우르헨다는 네덜란드 정부가 2020년 말까지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30% 감축에서 20% 감축(2019년 대비)으로 완화한 것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지방법원은 2015년 우르헨다의 손을 들어줬고, 2019년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네덜란드 정부는 우르헨다와 2심, 3심 대결을 펼치면서도 1심 취지에 맞게 법을 바꿨다. 2018년 6월 ‘국가기후변화법’을 통과시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9% 감축(2019년 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4월에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 55~60% 감축을 추가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