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 후 3년도 못 버텨요” 시들어버린 상권

석유화학 침체에 지역경제 직격탄
7곳중 3곳 폐업 ‘권리금 없음’ 즐비


지난달 27일 찾은 여수 흥국상가 일대의 빈 상점에 임대 안내가 붙어있다. 여수=이영기 기자


여수국가산업단지의 근간을 이루는 석유화학 산업이 장기침체의 늪에 빠지자 여수 상권도 말라가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상인들은 외환위기 당시보다 어렵다고 입을 모아 호소했다. 부동산 거래는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여수에서 돈자랑 하지 말라’던 옛말은 이제 말그대로 옛말이 됐다.

지난달 27일 헤럴드경제가 찾은 전남 여수시의 ‘흥국상가’ 일대는 적막했다. 과거 여수의 패션 중심지, 여수의 백화점 등으로 불렸던 곳이라 믿기 힘들 정도였다.

흥국상가는 여수국가산업단지와 명맥을 함께 하는 상권으로, 확연한 쇠퇴기를 걷고 있었다. 흥국상가는 1991년 여수 산단이 확장하며 새로운 택지 조성과 함께 여수 신기동 일대에 흥국체육관 등 공공시설이 들어서며 만들어진 상권이다.

주로 의류 상점이 포진해 있는 상권의 특성상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자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대로변 안쪽의 골목으로 들어가자 폐업, 임대문의 등이 붙은 빈 상점들이 수두록했다. 가게 앞은 오래 방치된 오토바이의 주차장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가장 목이 좋은 삼거리의 도로에 인접한 상점 7곳 중 3곳이 폐업한 상점이었다. 한 상점에는 임대 문의라는 문구와 함께 ‘권리금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목이 좋은 위치임에도, 권리금도 챙길 수 없는 침체된 상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백현공 흥국상가상인회 사무국장은 “흥국상가 경기가 많이 침체되긴 했다”며 “올해 초에는 빈 점포가 거의 2배는 많았다. 가게들이 너무 빠지니 조금 채워진 게 이 정도”라고 설명했다.이어 백 사무국장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광양 LF스퀘어에 손님을 다 뺏기는 상황”이라며 “상인회 차원에서는 ‘청년마을’이라는 키워드로 청년들의 공방 등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해 문화 공간을 조성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흥국상가 인근에 위치해 여수에서 가장 번화한 상권인 학동 상권도 침체의 여파에 황량한 모습이었다.학동 상권에서 5년째 냉동삼겹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전모 씨는 “5년 전에는 월 순수익이 500만원 정도는 우습게 넘었다”면서 “지금은 월 매출이 500만원이 안 될 때도 있다”고 한숨 쉬었다. 전 씨는 “개업 후 3년을 못 버티는 가게가 대부분”이라며 “5년 버틴 우리는 그나마 오래 버티는 가게”라고 덧붙였다.상권 내 지하경제도 자취를 감췄다. 학동 상권에서 악세사리 상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길바닥에 유흥업소들 명함, 전단지가 빼곡했다”며 “올해 되더니 싹 사라졌다. 먹고 놀 돈이 없으니 그런 가게들부터 사라지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학동 상권 일대의 부동산 시장도 꽁꽁 얼었다. 학동 상권 인근에서 15년 넘게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이하윤 이하윤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예전에 권리금 1억원 하던 목 좋은 가게가 지금은 2000만~3000만원 수준”이라며 “권리금 걸면 거래가 잘 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인근의 아파트 거래 건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한두 달에 1건 나오는 수준”이라며 “정말 이 일대는 IMF 때만큼 어려운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여수=이영기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