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7년 전세로 구한 신혼집 주인은 박했다. 낡은 아파트는 방충망이 뜯기고 거실 조명이 떨어져 있었다. 집주인은 “새로 사서 달고, 이사 가면 떼어가라”고 했다. 이듬해 가을, 첫 아이가 태어났는데 외풍이 너무 심했다. 창호를 교체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창호는 떼어갈 수 없으니까. 그때 처음 ‘내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때는 2008년. 당시 서울 아파트 평균값은 5억2530만원(KB부동산, 12월 말 기준) 이었다.
서울 아파트 평균값은 한 달 전 처음으로 15억원을 넘겼다. 집값이 3배 가까이 뛰는 동안, 불행히도 월급은 3배는커녕 2배도 오르지 않았다. ‘서울 자가 김부장’이라면 집값이라도 올랐지만, 아니라면 ‘아무것도 오른 게 없는’ 낙오자가 된 세상이다.
정부는 ‘집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삼지 말고 주식에 투자해 기업을 키우자’고 말한다. 하지만 주식도 부동산처럼 한정된 자원이다. 집값도, 주가도, 금값도, 하물며 딸기값도 오른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에서 평범한 이들의 노동력만 상승세가 더디다. 월급쟁이에겐 주식투자로 부자가 되겠다는 꿈마저 어렵단 얘기다.
실제 취재 결과, 이재명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낮춘 첫 대책(6·27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은 후 주식을 팔아 서울 주택 시장으로 유입된 자금이 2조원에 육박했다(본지 지난해 12월 23일 보도). 특히 강남구에서 자금조달계획서를 낸 주택 거래 당 주식·채권 매각액은 평균 약 2억원으로 25개 자치구 중 가장 컸다. ‘현금부자→주식부자→부동산부자’로 이어지는 현실을 입증한 셈이다.
이 가운데 ‘월세에서 전세, 전세에서 매매’로 이어지는 주거 사다리는 끊겼다.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에서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 실거주를 의무화하자, 전세 매물은 빠르게 사라졌다. 월급에서 월세를 내면 ‘종잣돈을 모으고(전세)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매매)’ 꿈도 이루기 어렵다.
이재명 정부가 ‘기획예산처’의 장관으로 지명한 이혜훈 후보자의 재산이 연일 화제다. 후보자의 세 아들은 2016년 만 25세, 23세, 19세로 학생 신분일 때 각각 10억3000만원씩 주식을 증여받았다. 이들의 총자산은 현재 47억원에 달한다. 정부의 대출 규제에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규모다.
‘부의 대물림’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는 ‘중장기 국가전략’과 ‘정책기획’에 무게를 두고 기획예산처를 신설했다. 정책엔 국민과의 공감이 필요한데, 아무리 주택 정책 주무 부처가 아니더라도 그가 ‘월급생활자의 내 집마련 꿈’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지난해 앨리스 래스먼이라는 경제 평론가가 영국 가디언지에 쓴 칼럼이 화제가 됐다. 그는 “청년 세대는 더 이상 안락한 집과 가족, 편안한 노후를 누릴 수 없다”면서 현 경제시스템이 청년층에겐 ‘환멸의 경제학(Disillusionomics)’이 됐다고 주장했다.
주거 안정은 삶의 질과 직결된다. ‘내집마련=자산증식’이란 부자의 관점으로 정책에 접근하면, 국민은 ‘기대가 깨어져 괴롭고 속절없는 마음(환멸)’이 든다.
성연진 건설부동산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