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 행정통합, 슬로건인가 청사진인가

데스크 시각 – 정형기 부산본부장


정형기 부산본부장


부산·경남 행정통합 구상은 ‘지방분권형 대통합’과 ‘선거용 정치 이벤트’라는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진다. 행정통합 자체보다, 이 판을 누가 어떤 철학으로 절차를 끌고 나갈 것인가가 쟁점이다. 이번 지방선거 민심이 중요해진 이유다.

부산시와 경남도는 지난 28일 올해 주민투표를 거쳐 내년에 특별법을 제정하고, 2028년 총선에서 통합 단체장을 선출하겠다는 로드맵을 내놨다. 이재명 정부가 2030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속도전’을 주문하던 것과 비교하면, 박형준 부산시장과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통합 시점을 2년 앞당기되 지방선거 아닌 총선과 연동하는 길을 택했다.

표면적인 설명은 ‘절차적 정당성 확보’다. 그러나 총선 구도 한복판에 통합단체장 선거를 집어넣는 순간, 행정통합은 정당 공천이라는 중앙 정치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방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통합이 정치 진영의 동원 전략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부산·경남 통합 메시지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4년간 최대 20조’ 정부 안에 대한 정면 비판이다. “떡을 나눠주듯 한시적 인센티브”라는 표현까지 쓰며 확실한 재정 분권, 정책결정권 없는 통합은 수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통합의 조건을 ‘완전한 지방분권’으로 못 박고,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특별법 협상 구도를 선제적으로 짠 셈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 ‘강경한 분권론’이야말로 행정 통합이 진정한 지방 자기결정의 계기가 될지, 중앙정부와 또 다른 거래의 출발점이 될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된다는 점이다.

울산의 합류도 통합의 명분과 갈등을 동시에 확대시킨다. ‘해오름 동맹’에 기울던 울산이 들어오는 순간, 통합 논의는 행정 효율을 넘어 ‘산업벨트 재편’이라는 첨예한 의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주민투표를 세 지역 모두에서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각 지역 찬반이 엇갈릴 경우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도 숙제다.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충청권 통합 논의도 정치적 반발과 이해관계 충돌 속에 좌초되거나 표류해 왔다. 공통 장면은 세 가지다. 첫째, 선거를 앞두고 ‘메가시티’ 구상이 부상했다가 정권이나 단체장 교체와 함께 흐지부지되는 용두사미 패턴. 둘째, 인사와 재정, 청사 위치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과 감정의 골. 셋째, 주민 의사를 묻는 공론화 과정 미흡이다.

부산·경남 통합 로드맵은 이 세 가지 함정을 의식한 듯, 연내 주민투표와 특별법을 통한 제도적 보장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확인해야 한다. 통합 로드맵은 ‘데이터와 논리에 기반한 설득 과정’이 될 것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선거 캠페인’일 뿐인지. 부산시민과 경남도민이 통합의 내용과 리스크를 충분히 이해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담보할 수 있는지.

부산·경남 행정통합은 이번 지방선거 최대 쟁점이자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유권자들의 질문은 분명하다.

통합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중앙정부가 제시한 4년간 20조 인센티브’와 ‘법률이 보장하는 재정 분권과 매년 7조7000억 확보’ 사이에서 어떤 협상 전략을 갖고 있는가. 부산·경남 행정통합 찬성 여론이 53.6%에 불과한데 주민투표 부결, 특별법 좌초, 지역간 찬반 불일치 등 리스크가 현실이 됐을 때 대책은 있는가. 통합이 실패할 경우 플랜 B는 무엇인가.

행정통합은 선거용 ‘슬로건’이 아닌 인구 770만 부·울·경의 미래를 보여줄 ‘청사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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