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1500원 터치…원/달러 환율 ‘지옥문’ 여나

야간 장중 고점 1506.50원 터치
한은 총재 출장 미루고 긴급 회의
강력 대외변수에 당국개입 효력 의문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에서 한 직원이 달러를 살펴보고 있다. [헤럴드DB]


[헤럴드경제=정호원·김벼리 기자]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 중 한때 1500원 선을 넘어서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극대화된 가운데,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에너지 수급 차질 우려가 ‘슈퍼 달러’ 현상을 부추긴 것으로 분석된다.

▶ 긴급 회의 돌입한 한은 =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전날 종가(1466.1원) 대비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이는 지난 1월 21일(1480.4원) 이후 약 한 달 반 만에 가장 높은 개장가다. 앞서 이날 새벽 2시경 서울 외환시장 야간 거래에서 환율은 한때 1506.50원까지 치솟았다. 장중 1500원을 넘어선 것은 2009년 3월 이후 약 17년 만이다. 안전자산 쏠림 현상에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도 장중 99.685까지 올랐다.

환율이 심리적 방어선인 1500원을 돌파하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예정됐던 해외 출장을 미루고 긴급 대응에 나섰다. 이 총재는 당초 이날 국제결제은행(BIS) 총재 회의 참석차 스위스 바젤로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상황의 엄중함을 고려해 이를 연기하고 국내에서 ‘중동상황 점검 TF 회의’를 주재했다.

한은은 “원/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1500원을 상회했으나, 과거와 달리 달러 유동성이 풍부하고 대외차입 가산금리와 CDS 프리미엄도 안정적인 수준”이라며 시장을 안심시켰다. 다만 “중동 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지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환율이 국내 펀더멘탈과 괴리되어 과도하게 움직이는지 면밀히 살피고 필요시 정부와 협조해 적기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환율 조정을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도 감지된다. 국민연금은 환율이 고점이라는 판단하에 수시로 환헤지(위험 분산)를 단행하며 속도 조절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국은행도 환율 쏠림 현상이 과도하다고 판단될 경우 시장 개입에 나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외 변수에 의한 강달러 우려 = 달러인덱스가 99선까지 치솟은 원인이 중동 리스크라는 대외 변수에 있는 만큼, 외환 당국 개입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순한 수급 쏠림이 아닌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에 의한 ‘강달러’ 현상이기 때문이다.

최진호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2월은 달러 지수가 약한 상태에서 원/달러 환율만 높았기에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달러인덱스 자체가 급등한 상황”이라며 “대외 요인에 의한 상승이라 당국이 개입할 명분이 부족하고 효과도 미미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유가 민감도 OECD 최고 수준이 원화 약세 부채질 = 문제는 대외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원화의 약세 폭이 주요 통화 대비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3일 대체거래소(넥스트레이드) 애프터마켓에서도 주식 매도가 확대된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의 유가 민감도가 높다는 점도 원화 취약성을 키우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3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24년 기준 경제 규모 대비 원유 소비량인 ‘경제적 원유 의존도’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이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경제성장률 하락, 물가 상승, 경상수지 악화 등 복합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사태의 핵심은 에너지 공급망 붕괴 우려에 있다”며 “한국은 에너지 집약도와 무역 의존도가 높아 원화가 특히 취약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휘발유 가격 등 국내 정치를 고려해 호르무즈 해협의 항해 보장 의사를 밝히며 시장을 달랜 것이 야간 장중 환율 후퇴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면서도 “이란의 대응에 따라 공급망 우려는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으며 환율 상방은 중동 사태의 악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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