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는 경복궁·광화문서 화려한 컴백
국보와 국보가 만나 ‘힙-트레디션’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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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G엔터테인먼트는 블랙핑크의 컴백을 기념해 27일부터 내달 8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중박 X 블랙핑크’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 백자 항아리는 멀리서 보면 거의 완벽한 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미묘한 비대칭이 느껴집니다.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자연스러운 균형을 존중했던 조선 사람들의 인식이 이 조용한 형태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말간 우윳빛의 달항아리 앞에 서자, 블랙핑크 제니의 따뜻한 음성이 들려온다. QR코드를 찍으면 스포티파이를 통해 듣게 되는 ‘최첨단 큐레이션’. 화려함과 완벽주의의 상징인 K-팝 그룹, 세계 무대의 정점에 선 제니는 48초 분량의 해설에서 몇 번의 ‘절묘한’ 휴지를 뒀다. 한 자, 한 자를 꼭꼭 씹어 발음하되, 의미를 강조할 땐 깊은숨을 불어넣어 방금 들은 문장을 곱씹게 만든다.
일명 ‘2B’(방탄소년단, 블랙핑크)로 꼽히는 K-팝 그룹이 K-헤리티지의 앰배서더가 됐다. 대한민국 문화유산의 상징인 국보와 보물의 ‘얼굴’이 돼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을 만들어가고 있다. 과거와 현대가 가장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충돌하며 빚어낸 ‘힙 트레디션(Hip Tradition)’의 열풍이 지금 서울 한복판에도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K-팝과 한국의 전통문화가 함께 도달한 새로운 지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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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핑크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실제로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인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의 길’에선 신묘한 일이 벌어졌다. 이 길 한복판에 우뚝 선 8m의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가 핑크빛으로 물든 것. 지난달 26일, 3년 5개월 만에 발매된 블랙핑크의 완전체 신보를 들을 수 있는 청음회가 열린 이곳은 박물관과 블랙핑크가 만남이 시작되는 거점이다.
원형 공간을 에워싼 벽면의 QR 코드를 찍으면 글로벌 음악 플랫폼 스포티파이로 연결, 누구나 블랙핑크의 음악과 멤버들이 녹음한 유물 8종의 음성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제니와 지수는 한국어로, 로제는 영어로 오디오 도슨트에 참여했다. 이 공간은 관람객과 블링크(블랙핑크의 팬덤)의 특별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이 공간을 지나 지수가 음성 해설을 한 경천사 10층 석탑이 내려다보는 곳은 ‘리스닝 세션’이 마련돼있다. 블랙핑크의 새 음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주말과 삼일절 연휴 내내 박물관의 모든 발길은 이곳으로 이어졌다. 국립중앙박물관과 YG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평일 오후엔 약 10분, 주말이나 연휴 동안엔 30분 이상의 대기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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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중박 X 블랙핑크’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국립중앙박물관 내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역사의 길’에서 만난 유희준(24) 씨는 “리스닝 세션을 체험하고 싶어 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줄을 오래 섰다”며 “블랙핑크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박물관과 이런 협업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국 미학의 정수를 품은 ‘국가대표 박물관’이 블랙핑크를 품은 것은 파격적인 실험이다. 국중박이 공식적으로 대규모 협업을 진행한 K-팝 가수는 블랙핑크가 처음이다. 멤버들은 해외 일정으로 바쁜 와중에도 몇 차례의 녹음을 거쳐 음성 해설을 완성했다. 특히 “목소리의 톤과 딕션, 표현까지 섬세하게 의견을 나누며 적극적으로 음성 도슨트를 준비했다”고 관계자는 귀띔했다. 태국 출신 멤버 리사의 경우 태국어 해설로 4개 유물에 참여한다. 9일 공개 예정이다.
블랙핑크 멤버의 목소리로 듣는 유물 해설은 특별했다. 박물관에선 멤버들이 참여한 유물 앞에 블랙핑크의 상징인 블랙과 핑크로 표지를 세워 눈에 잘 띄도록 배치했다. 여기에 QR코드까지 크게 자리하고 있어 누구라도 다정한 목소리로 전하는 멤버들의 음성 해설을 만날 수 있다. 블랙핑크 멤버들은 국보 급 유물의 깊은 결 속으로 글로벌 팬덤을 안내하며 우리 문화유산의 미학과 경외를 전하는 ‘문화 앰배서더’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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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중박 X 블랙핑크’ 프로젝트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현장에서 만난 인도 블링크 얀지(27) 씨는 “로제가 해준 금동관음보살좌상의 해설을 듣는데 한국의 유물인데 티베트 불교 조각의 감각이 담겨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2019년부터 블랙핑크를 좋아하면서 한국어도 배우고 한국 여행도 몇 번 왔는데 이번엔 한국의 유물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계기가 돼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컴백을 앞둔 방탄소년단(BTS)은 경복궁 앞에서 등장한다. 5일 공개된 컴백 트레일러 영상을 보면, 낮과 밤이 교차하는 경복궁을 배경으로 방탄소년단이 컴백 신호탄을 쏜다.
실제로 방탄소년단의 컴백 무대는 광화문이다. 일곱 멤버는 경복궁 내부에서 출발해 광화문과 월대를 지나 광화문광장 북쪽 시작점에 설치된 무대에서 공연한다. 오는 20일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으로 컴백한 후, 바로 다음 날 이곳에서 복귀 공연을 진행키로 한 것이다. 경찰 추산 26만 명이 모이고,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 덕분에 방탄소년단이 걸어 나오고, 공연하는 일명 ‘왕의 길’은 지구상 최고의 광고 효과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소속사 빅히트뮤직은 “아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는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공간에서 첫 무대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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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 경복궁 촬영 모습 |
블랙핑크와 국립중앙박물관, 방탄소년단과 광화문의 만남은 동시대 가장 트레디한 ‘팝 아이콘’과 K-헤리티지의 협업을 넘어선다. 박물관 곳곳이 분홍빛 조명으로 물들고 블랙핑크의 응원봉인 ‘뿅봉’을 든 팬들이 역사적 유물 앞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박제용 사진을 남기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사실 글로벌 K-팝 팬덤에게 한국 전통문화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은 아니다. 블랙핑크는 앞서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활동 당시 한복을 리폼한 디자인의 의상을 선보였고, 2023년 K-팝 그룹 최초로 미국 코첼라 밸리 뮤직&아트 페스티벌 무대에 섰을 때는 기와지붕 무대 세트를 만들고 부채춤과 조선시대 무관 의복인 ‘철릭’을 활용한 의상을 선보였다. 당시 CNN은 “블랙핑크 멤버들이 한국의 전통 의상인 한복을 입고 12만5000명 이상의 관객 앞에서 한국 유산에 경의를 표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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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오는 3월 3년 9개월 만에 ‘완전체’로 돌아오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컴백을 알리는 홍보물을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 |
방탄소년단도 마찬가지다. 그룹은 2020년 미국 NBC 인기 프로그램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서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를 배경으로 무대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방탄소년단의 노래 ‘아이돌’엔 한국적 추임새인 ‘얼쑤 좋다’, ‘지화자 좋다’는 물론 장단을 말하는 ‘덩기덕 쿵더러러’ 등의 가사가 담기도 했다.
한류의 최정점이자 핵심 동력인 ‘K-팝’과 전통문화의 만남은 이른바 ‘힙 트레디션’(Hip Tradition) 열풍을 가속한다. 가요계 관계자는 “이전엔 방탄소년단, 블랙핑크가 우리 문화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 해외 팬들이 한국 전통문화로 유입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전통문화가 힙한 콘텐츠로 자리한 지금은 두 콘텐츠가 만나 시너지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방탄손년단 RM의 작업실에 놓여 품절 대란을 일으킨 ‘유물 피규어’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굿즈를 비롯한 ‘뮷즈(MU:DS)’의 폭발적 성장이 이를 증명한다. MZ(밀레니얼+Z) 세대는 전통을 낡고 고루한 것이 아닌 새롭고 힙한 트렌드로 여기며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힙한 콘텐츠’로 소비하는 것이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SNS의 활용과 굿즈 소비가 익숙한 팬덤을 거느린 K-팝 그룹과 전통문화의 협업은 지속 가능하면서도 강력한 ‘K-브랜드’를 구축하는 핵심 동력”이라며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놀이 문화가 한국 문화를 세계 시장의 주류로 안착시키는 중”이라고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