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건으로 최대 6번 이상 재판받을 수도
헌재 “연간 최대 1.5만 건 사건 늘어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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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헌법재판소법에 따른 재판소원 제도가 12일 공포와 동시에 시행됐다. 헌재와 법원 모두 처음 마주하게 될 재판소원제 시행을 두고 내부 실무 논의로 분주한 상황이다. 특히 향후 실제 취소된 사건의 재판을 다시 심리해야 하는 판사들은 더욱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법원 내부에선 재판소원 도입에 따른 후속 대책이 명확하게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헌재에 의해 취소된 재판이 법률심과 사실심을 오가는 ‘재판 뺑뺑이’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이날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전례 없던 재판을 하게 된 일선 판사들은 재판소원과 관련해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시행 이후 상황에 대한 (후속) 제도 설계가 돼 있어야 실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상할 수 있는데, 여건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재가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면 대법원은 구체적인 주문을 내리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심으로 돌려보내게 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국민은 (하나의 사건으로) 법원의 1·2·3심과 헌재, 다시 대법원과 2심을 거치면서 6군데 이상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재판을 취소할 뿐 그 이후는 법원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라며 “50년간 이뤄졌던 재판 제도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재판 뺑뺑이’에 대한 법조계의 우려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재판소원 입법이 추진되는 과정에서부터 거듭 제기됐던 문제다. 대법원은 헌재가 대법원 판결의 당부를 판단해 ‘판결을 취소한다’는 점에서 재판의 단계가 하나 더 추가된 것으로 본다. 헌재의 취소 결정이 대법원 판결 위에 있는 ‘초상고심’으로 자리잡게 됐다는 것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18일 배포한 10쪽 분량의 ‘재판소원에 관한 Q&A 참고자료’에서 “국민은 4심제의 희망고문과 소송지옥에 빠지게 된다”며 “심급(3심제→4심제)의 추가로 인한 법적 불안정이 지속된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는 “심급이 하나 늘어나면 재판 횟수가 단지 한 번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취소 재판과 그에 따른 후속 판결, 이에 대한 새로운 재판소원을 거듭하면서 재판 횟수는 그보다 훨씬 많이 늘어날 수 있다”며 “무한의 소송루프”라고 강조했다.
반면 헌재는 재판소원으로 ‘4심제’가 도입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손인혁 헌재 사무처장은 10일 서울 종로구 헌재 별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재판소원은 ‘제4심’이 아니라 새로운 헌법심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4심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고 있다”며 “법원과 헌재의 효율적인 사법기능 배분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4심제 논란과 관련해 “외국 판례와 실무 경험을 검토하고 있다”며 “여러 전문가와 재판부·연구부 간 대화와 소통 기회를 마련해 충실히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본격적으로 재판소원을 심사하게 된 헌재는 재판과 관련된 내부 규정을 만들어 적용했다. 재판소원이 헌법소원의 한 종류인 만큼 사건번호로 ‘헌마’ 기호를 부여하고, 접수 사건의 사건명은 ‘재판취소’로 정했다. 아울러 재판소원에는 기존 헌법소원과 다른 별개의 배당 체계를 적용한다.
경력 15년차 이상의 헌법연구관 8명이 참여하는 전담 사전심사부 구성도 완료됐다. 아울러 지성수 헌재 사무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10여명 규모의 행정준비단을 발족해 재판소원 제도 운용에 대비한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헌재는 재판소원 도입에 따라 다뤄야 할 사건이 폭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산 당국과 인력 증원 및 예산 확대를 협의 중이라고도 밝혔다.
헌재에선 재판소원 도입 후 연간 1만~1만5000건의 사건이 새로 들어올 수 있다고 예상한다. 헌재의 연도별 접수현황 통계를 살펴보면, 코로나19 유행 확산으로 각종 방역정책이 시행됐던 2020년 3241건(이중 공권력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한 기본권 침해 여부를 다투는 헌법소원은 2472건)을 접수해 가장 많았는데 이보다도 최소 3배 이상 사건이 몰릴 것이라 예상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헌재 내부에서도 사건 폭증으로 인한 과부하와 다른 사건 심리 지연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헌법소원은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만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충성 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법조계에선 헌재가 ‘대법원 확정 판결’을 중심으로 심사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다른 구제 절차를 거치는 것이 당사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거나 무의미한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각 사건마다 개별적인 판단을 통해 ‘하급심 확정 판결’도 심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손 처장은 “원칙적으로 모든 확정 판결이 대상”이라고 밝혔다. 다만 재판소원 청구를 위해 일부러 항소나 상고를 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선 “심급제도를 통해 권리 구제가 가능하다면 각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도 후속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각 실·국에서는 재판소원 도입에 따라 예상되는 문제점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2~13일 두 차례 열리는 법원장회의에서 이를 논의한 이후 입법안과 법원 자체 내규 정비 등 대응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현직 판사는 “법원과 헌재 간에 재판 관련 자료를 어떻게 주고받을 것인지, 취소된 재판을 다시 다루는 합의부나 단독은 어떻게 정할 것인지 등 실무 과정에서 정해야 할 수많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양근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