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사모대출펀드 ‘엑소더스’…또다른 ‘블랙스완’ 되나

모건스탠리 사모대출 환매 절반 규모만 수용
클리프워터·HPS 등 주요 펀드도 환매 제한
고금리에 소프트웨어 산업 불확실성이 원인
개인투자자 환매 요청 급증에 불안감 가중



중동 사태 이후 세계 경제 및 투자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사모대출 시장을 둘러싼 불안감까지 확산되고 있다. 투자자 환매 요청이 급증하면서 이미 일부 펀드는 환매 제한 및 중단 조치에 돌입했다. 대규모 펀드런으로 이어지면 세계 경제는 물론 국내에까지 여파가 불가피하다.

미국 내 높은 차입 비용으로 기업들의 현금흐름 부담이 커지고 중동 사태 여파,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소프트웨어 산업 불확실성 등이 겹치면서 사모대출 시장 불안감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자칫 또다른 블랙스완(black swan, 금융시장 등에 큰 충격을 줄 예측 못할 사건)으로 비화될 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선 사모대출 시장 우려가 확산하면서 관련 투자회사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모건스탠리는 전장 대비 4.05% 하락했고, 아폴로 글로벌매니지먼트(-5.44%), 블루아울 캐피털(-4.55%), 블랙스톤(-4.78%), 아레스 매니지먼트(-6.73%), KKR(-3.73%) 등 주요 대체투자 운용사도 동반 급락했다.

시장 불안의 직접적인 계기는 사모대출 펀드에서 잇따라 발생한 환매 제한 조치다. 모건스탠리는 자사의 사모대출 펀드인 ‘노스헤이븐 사모 인컴 펀드’의 1분기 환매 한도를 펀드 지분의 5%로 제한해 투자자 환매 요청의 절반만 수용했다. 투자자가 투자금을 돌려달라는 요구 중 절반에는 응하지 않은 것이다.

대체투자 운용사 클리프워터도 330억달러 규모의 기업대출 펀드(CCLFX)에서 환매 요청이 펀드 지분의 14%까지 몰리자 환매 한도를 7%로 제한했다.

다른 운용사들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블랙록 자회사 HPS 인베스트먼트는 260억달러 규모 사모대출 펀드(HLEND)의 분기 환매 한도를 5%로 제한했다. 블루아울은 운용 펀드 중 하나인 ‘블루아울 캐피털코프Ⅱ(OBDCⅡ)’의 환매를 구조 변경한다고 밝혀 시장의 우려를 키웠다. 시장 일각에서는 블루아울이 환매를 사실상 영구 중단했다고 해석했다.

다만, 블랙스톤은 대표 사모대출 펀드 ‘BCRED’에서 전체 지분의 7.9%에 달하는 환매 요청이 들어오자 규제 한도를 넘는 부분까지 임직원 자금을 동원해 모두 수용했다.

사모대출 시장 불안 배경엔 AI 확산으로 인한 소프트웨어 산업 구조 변화가 꼽힌다. 최근 월가 사모펀드들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이유로 소프트웨어 기업 인수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이 과정에서 사모대출 펀드들이 차입매수(LBO) 자금을 대거 공급했다.

그러나 AI 기반 서비스의 급성장으로 기존 소프트웨어 업체 수익모델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파괴적 혁신’이 기존 소프트웨어 산업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공포다.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되면 이들을 대상으로 한 LBO 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도 크다.

그 외에도 복합적 원인이 사모대출 시장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고금리 환경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면서 기업 이자 부담이 크게 늘었다. 대출 금리가 높아진 상황에서 차입 기업의 상환 부담이 커지고, 이는 자연스럽게 기업들의 현금흐름 악화로 이어진다.

실제 최근 일부 사모대출에선 기업들이 현금 대신 채권이나 주식 등으로 이자를 지급하는 ‘PIK(Payment in Kind)’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으로 잠재 부실 신호 중 하나다. 여기에 개인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 증가까지 더해졌다. 최근 사모대출 펀드에 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한 개인 자금이 대거 유입됐는데,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자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늘면서다.

동시에 사모대출 자산의 가치가 과도하게 높게 평가됐을 수 있다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 실적 둔화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기존 투자 가격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형성됐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투자 심리가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에 나서면서 시장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는 최근 소프트웨어 기업에 대출한 사모대출 펀드의 담보 자산 가치를 내부 기준에 따라 하향 조정했다.

사모대출 펀드들이 투자자 자금 외에 은행에서 추가 차입을 통해 대출 규모를 키우는 ‘백 레버리지(back leverage)’ 구조를 활용해 온 만큼, 은행의 담보가치 재평가는 대출 여력을 줄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유동성이 줄면 악순환이 생겨날 수 있다. 기업 대출 부실 우려로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고, 은행은 대출을 줄이면서 펀드 수익률이 낮아지고 다시 투자자 이탈이 가속되는 구조다. 악순환이 한번 시작되면 시장의 충격을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조수희 LS증권 연구원은 “일부 대형은행의 사모대출시장에 대한 레버리지 스탠스가 점차 보수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전에 비해 신용공여(대출) 태도를 보수적으로 전환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신호라면, 추후 시장 유동성 여건의 점진적 타이트닝과 중소기업 자금조달 여건 악화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어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홍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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