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불문” 정유사, 원유 조달 다변화 안간힘 [에너지·공급망 쇼크]

‘70% 의존’ 중동서 미국·아프리카 등 눈돌려
WTI 가격 요동 속 수송기간·운임 등은 부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향후 2~3주간 이란에 대한 군사 작전을 지속하겠다고 밝히며 종전 기대가 약화되자, 원유 수급 부담을 안고 있는 국내 정유업계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국제 유가 급등에 해상 운임 부담 등까지 가중되고 있지만, 업계는 특정 지역을 가리지 않고 물량 확보 경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3일 대한석유협회의 ‘2026년 1월 지역별 원유 도입’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도입된 원유 약 9374만 배럴 중 중동산 비중은 70.7%를 기록했다. 이어 북미산(23.1%), 아시아산(4.5%), 아프리카산(1.8%) 순이었다. 이런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해협 통행 안전 책임과 미국산 원유 구매를 요구함에 따라 지역별 도입 비중이 빠르게 조정될 전망이다.

▶중동 의존도 70%…도입선 다양화 급물살 전망=국내 정유 4사는 한 달가량 이어진 해협 봉쇄 사태에 대응해 공급선을 전 세계로 넓히려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특정 지역 원유를 가릴 처지가 아니라 중동 외 미국, 호주, 아프리카 등 전 지역의 원유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우선은 중동산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미국산 원유의 도입 확대가 예상된다. 사우디 아람코가 대주주인 에쓰오일은 여전히 중동산 의존도가 높지만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 SK에너지 등은 미국산 원유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산 원유는 중동산과 달리 장기 계약 비중이 낮고 현물 거래가 활발해 물량 확보가 상대적으로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정유 설비가 중동산 중질유 처리에 최적화돼 있으나, 정유사들이 미국산 처리 경험도 보유하고 있어 공정 투입 측면에서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가격 측면에서도 중동산 기준 유가인 두바이유(현물)가 지난달 배럴당 160달러를 웃돌며 급등한 반면,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90달러 안팎에 머물며 가격 역전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통상 WTI는 황 함량이 낮은 경질유로 두바이유보다 높은 가격을 형성하지만, 최근 중동 지역 공급 불안이 현물 가격을 자극하며 구조가 뒤집힌 것이다.

▶전쟁 프리미엄에 WTI 가격도 요동…정부, 비축유 스와프 등 총력=다만 미국산 원유가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더군다나 WTI는 선물 시장 기반 가격으로 변동성이 크고, 실제 거래 시 프리미엄이 더해져 단순 지표가만으로 경제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 최근에는 전쟁 프리미엄이 더해지며 지난달 30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WTI 5월 인도분 선물 가격이 배럴당 102.88달러로 마감하며 한 달 새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중동 대비 두 배 긴 수송 기간과 그에 따른 운임비 부담도 고려 대상이다. 미국산 원유는 계약 후 도착까지 약 50일이 소요된다.

정부에 따르면 현재 4월 대체 원유는 약 5000만배럴을 확보했으며, 5월 물량도 상당 수준 확보될 전망이다. 평시 산업 활동 유지를 위해서는 월 8000만배럴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수요 관리 정책과 가동률 조정이 시행 중이다. 부족분은 비축유 스와프를 통해 보완하며, 지난달 말 200만배럴 규모의 첫 계약이 성사됐다. 정유사들은 일일 대여료 부담을 고려해 실제 도입 시점에 맞춰 스와프 물량을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달 여건 더 악화될 듯…에너지 각자도생 국면=한편 전 세계적으로 주요 에너지 생산국이 자국 우선 정책을 강화하며 조달 여건은 더 악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호주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통제를 검토하고, 중국·카자흐스탄도 연료 수출금지에 나서면서 에너지 각자도생 국면이 가속되고 있어서다. 정부는 수급에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도입 비용과 운임의 동반 상승에 따른 원가 압박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전쟁이 확전하는 최악의 시나리오 땐 내년 4분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174달러로 오를 것으로 봤다.

향후 이란이 추진 중인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 문제도 변수다. 이란이 배럴당 약 1달러의 통행료를 징수할 경우 원유 도입 비용이 상승하며, 이는 정유사와 소비자 간의 분담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란이 미국과 무관한 선박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협상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유사들은 원유 확보와 더불어 향후 유가 하락 시 발생할 재고평가손실 등 실적 변동성 관리에도 부심하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현재는 기름 한 방울과 돈 한 푼이 모두 아쉬운 비상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은결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