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가공업서 고부가가치 투자처로 변신
스마트공장·프리미엄 채널로 밸류업 성공
비건·클린라벨 타고 김 수출 10억불 시대
기후변화·원초가격 변동성은 리스크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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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해역 김 채취 현장 [헤럴드 DB] |
한국인의 식탁에서 조연에 머물렀던 김이 글로벌 자본시장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고 있다. 단순히 밥에 싸 먹는 반찬을 넘어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저칼로리·고단백 ‘블랙 스낵’으로 진화하면서다. 세계 시장 70%를 점유하며 ‘검은 반도체’라는 별명까지 얻은 김 산업은 이제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들마저 탐내는 투자처가 됐다. 영세한 가내수공업 형태를 벗어나 기업형 시스템을 갖춘 고부가가치 수출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는 김 산업 인수·합병(M&A) 현장을 진단해본다.
▶전통식품의 반전, 김 시장을 다시 보다=본래 김 산업은 투자은행(IB) 업계의 시야 밖에 놓여 있었다. 원초를 수확해 가내수공업 형태로 구워 팔던 전통적인 식품 가공업의 특성상 부가가치가 낮고, 대다수 기업이 지역 기반의 가족경영체제에 머물러 자본시장의 논리가 파고들 틈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광천김, 성경식품과 같이 시장을 선도하는 상위권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들이 대규모 생산 설비를 갖추고 해외 시장에서 점차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등 기업가치 재평가를 일으키자, PEF 운용사들의 계산기도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본시장이 주목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운용사들 저마다 이미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 업체들의 브랜드 파워에 PEF의 선진화한 거버넌스와 자본력을 결합시켜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내겠다는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시나리오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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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미김 [성경식품 홈페이지 캡처] |
▶글로벌 플레이어로 변신한 ‘지도표 성경김’=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성경식품 M&A다. 성경식품은 1981년 대전의 한 재래시장에서 출발한 전형적인 가족 중심 회사였다.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전국에 구축한 탄탄한 영업망과 높은 고객 충성도 덕분에 ‘지도표 성경김’이라는 확고한 브랜드 인지도를 쌓아왔으나, 핵심 경영진의 건강 문제로 전환점을 맞았다. 결국 2017년 말 어펄마캐피탈에 약 1500억원의 몸값으로 인수되며 PEF의 관리 체계로 편입됐다.
어펄마캐피탈은 인수 이후 생산 공정의 효율화에 착수했다. 기존 설비에 스마트공장 시스템을 이식해 품질 균일화와 제조 원가 절감을 동시에 달성했다. 업계 관계자는 “김은 한 장, 한 장의 두께와 바삭함이 일정해야 상품성을 인정받기 때문에 생산 라인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수적”이라며 “성경식품은 스마트 설비 도입으로 원료 손실률을 최소화했고, 결과적으로 생산성은 높이면서 원가율은 낮추는 구조적인 체질 개선을 이뤄냈다”고 분석했다.
유통 전략의 다변화도 뒤따랐다. 전국 중소형 마트에 집중됐던 기존의 영업망을 대형마트와 편의점은 물론 이커머스 채널까지 확장하며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혔다. 특히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전략이 주효했다. 북미와 중국 등 현지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전용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고 수출 드라이브를 걸며 해외 매출 비중을 대폭 끌어올렸다. 이는 성경식품이 글로벌 확장성을 갖춘 기업으로 몸집을 키우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성공적인 밸류업은 유의미한 회수 성과로 이어졌다. 어펄마캐피탈은 지난해 에너지 전문 기업 삼천리그룹에 성경식품을 매각하며 약 8년 만에 투자 원금 대비 2배 수준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성과를 기록했다. 삼천리가 지불한 인수 대금 외에도 그간의 배당금과 볼트온(Bolt-on) 전략으로 인수했던 개미식품의 분리 매각 대금 등을 모두 합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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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김’ 만전식품에 글로벌 PEF 꽂혔다=성경식품이 쏘아올린 김 산업 M&A의 열기는 만전식품과 해농 등 매물로 나온 다음 타자들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우선 현재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은 카무르프라이빗에쿼티(PE)가 보유한 만전식품이다. 최근 진행 중인 인수전에 글로벌 PEF들이 잠재적 원매자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매각 흥행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만전식품의 희망 매각가로 2000억원 수준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 2021년 카무르PE가 약 1000억원에 인수한 만전식품은 사모펀드 관리 체제 아래 ‘김의 고급화’와 ‘글로벌 확장’이라는 두가지 전략을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무르PE는 저가 경쟁이 치열한 일반 유통 채널보다 백화점 등 프리미엄 채널에 집중하는 한편, 미국 월마트를 비롯한 글로벌 대형 유통 체인에 만전김 공급 계약을 성사시키며 해외 판로를 구축했다.
이런 전략적 행보는 실적 수치로도 증명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카무르PE 인수 이후 만전식품의 매출은 2022년 약 618억원에서 2025년 약 891억원으로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렸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 역시 약 59억원에서 약 149억원으로 4년동안 2.5배가량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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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농이 보여줄 ‘B2B 밸류업’ 시나리오=UCK파트너스가 투자한 해농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UCK파트너스는 2월 그래비티프라이빗에쿼티(PE)와 오티엄캐피탈이 보유한 해농 지분 49.9%를 인수하기로 결정하며 2대 주주에 올랐다. 앞서 그래비티PE-오티엄캐피탈으로부터 대규모 설비 투자를 유치하며 생산 역량을 갖춰온 해농은 이번에 UCK파트너스와 손잡고 다시 한번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해농은 김 산업 내에서 기업간 거래(B2B) 시장의 강자로 통한다. 기업·소비자간 거래(B2C) 브랜드보다 국내 주요 외식 프랜차이즈와 대형 식자재 유통망을 장악하며 내실을 다져왔다.
시장은 해농이 써 내려갈 다음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공차 등 F&B 기업을 인수해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냈던 UCK파트너스의 밸류업 역량이 해농의 공급망과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지가 관건”이라며 “해농이 B2B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글로벌 식자재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느냐가 향후 (해농의) 기업가치를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라고 짚었다.
▶“이젠 웰빙스낵”…김 수출 ‘10억 달러’ 시대=이처럼 최근 들어 PEF가 앞다퉈 김 산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김이라는 원재료 자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갖는 자산가치가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은 더이상 일반 식재료가 아닌 ‘글로벌 건강 스낵’ 섹터의 유망 자산으로 재정의됐다. 과거 밥 반찬으로만 여겨졌던 김은 지금 서구권 등에서 ‘저칼로리·글루텐 프리(Gluten-free) 스낵’으로 분류되며 위상이 격상됐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첨가물을 최소화하고 원재료의 영양을 극대화한 식품을 선호하는 ‘클린 라벨(Clean Label)’ 열풍이 있다. 김은 식물성 단백질과 미네랄이 풍부하면서도 칼로리는 낮은 슈퍼푸드로 각인되며 글로벌 소비 트렌드를 관통했다.
특히 육류 단백질을 대체하려는 해외 비건(Vegan) 인구에게 김이 최적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매출과 수출 지표는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김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수출액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돌파하며 ‘K-푸드’ 수출의 일등 공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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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OTT 타고 세계로…식지 않는 김 열풍=김 산업의 가치를 높인 요인으로는 팬데믹도 꼽힌다. 코로나19 이후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가정 내 식사(In-home dining) 비중이 급증하고 밀키트 수요가 늘어나면서, 아마존을 필두로 한 글로벌 이커머스 채널이 김 유통의 새로운 격전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과거 대형마트 매대 점유율에 의존했던 김 수출 구조는 온라인 주문 가구의 증가와 함께 유통 경로가 다양해졌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미국 온라인 시장 내 우리나라 김제품 진출 확대 방안(2022)’ 보고서를 통해 “(아마존에서 김을 소비하는 이들의 반응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19로 가공품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조미김 수요가 증가한 추세, 가정 내 식사가 증가함에 따라 마른김 수요가 증가한 추세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K-컬처의 확산은 강력한 마케팅 촉매제가 됐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콘텐츠를 통해 노출된 출연자의 김 먹는 모습은 별도의 대규모 광고비를 투입하지 않고도 자연스러운 ‘문화적 PPL(제품 간접광고)’ 효과를 냈다. 자본시장은 이 지점에서 낮은 고객 획득 비용(CAC, Customer Acquisition Cost) 대비 높은 브랜드 확장성을 포착하며 김 산업의 투자 매력도를 다시 산정하기 시작했다.
▶韓 세계 점유율 70%…경기변동 비켜가는 ‘검은 자산’=IB 업계가 김 산업을 매력적으로 보는 또다른 요인은 공급망의 희소성이다. 김 원초는 전 세계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극히 일부 해역에서만 양식 가능하다. 특히 한국은 세계 김 시장 점유율 약 70%를 차지하는 압도적 공급원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전 세계적인 양식 가능 구역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원초 수급망과 가공 인프라를 선점한 한국 김 기업의 희소가치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 김의 차별화된 상품성 역시 강력한 비교우위 요소다. 내수 소비 위주인 일본산은 식감이 질기고 가격이 높으며, 중국산은 가공 기술의 한계로 품질 편차가 큰 편이다. 반면 한국산은 식감이 부드럽고 향이 뛰어나 글로벌 시장에서 스낵으로 가공하기에 최적의 요건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이런 독점적 공급 지위와 품질 경쟁력은 한국 김 기업들에 강력한 가격 주도권을 부여하고 있다. 글로벌 수요는 급증하지만 공급처는 한정된 ‘공급자 우위 시장’이 고착화되면서 경기 변동에 구애받지 않는 안정적인 현금창출 능력이 입증된 셈이다.
다만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최근 기후변화와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인해 원초 가격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가공업체들의 원가 부담이 늘어난 점은 리스크 요인이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한 기업이라 할지라도 원가 변동성을 제어해 수익성을 방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며 “사모펀드들이 마른김 공장 등 직접적인 생산 설비를 확충하거나 스마트 양식, 원초 수급의 수직 계열화 등 공급망 상류 단계까지 관심을 넓히는 이유도 원가 관리를 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안효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