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인 지정제도 논란 속…공정위, 미뤄둔 쿠팡사건 처리 속도

공정위, 물류·배송에 친족 관여확인 ‘근거’
해외계열사 현황 공시, 사익편취 규제 적용
동일인 자료 ‘허위여부’ 검증, 추가 제재 가능
쿠팡이츠 최혜대우, PB 직매입 압박조사 주목
동일인 지정제 논쟁가열…“운영방식 고민해야”


쿠팡Inc가 2021년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을 당시 김범석 의장의 모습. [쿠팡 제공]



공정거래위원회가 김범석 쿠팡 의장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면서 수년간 동일인 지정을 둘러싼 ‘쿠팡 봐주기’ 논란이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미국과의 통상 갈등 가능성 등 대외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도 공정위가 기존 결정을 뒤집고 자연인인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는 점에서 쿠팡 관련 각종 사건 처리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30일 공정위에 따르면 총수 일가의 실질적 경영 관여가 확인된 점이 이번 결정의 핵심 근거다. 공정위는 김 의장의 동생 김유석 씨가 물류·배송 정책 회의를 주재하고 계열사 경영진을 점검하는 등 경영에 참여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당일배송 주문 마감 시간을 오후 2시로 늦추는 등 주요 의사결정에 관여한 정황도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친족의 국내 경영 미참여’라는 기존 예외 요건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쿠팡 동일인 논란은 2021년 공정위가 쿠팡을 처음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공정위는 김 의장이 쿠팡을 사실상 지배한다고 보면서도 외국 국적자에 대한 규제 실효성 등을 이유로 법인인 쿠팡Inc를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이후 2024년에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법인을 동일인으로 둘 수 있는 예외 규정까지 마련되면서 쿠팡에만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형평성 논란이 이어졌다.

이번 동일인 변경은 단순한 명칭 수정이 아니라 규제 체계 전반의 변화로 이어진다. 쿠팡은 동일인과 친족이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한 해외 계열사 현황을 공시해야 하고, 사익편취 규제도 적용받게 된다. 친족과의 내부거래 전반이 감독 대상에 포함되면서 지배구조 투명성 요구가 한층 강화되는 셈이다.

공정위가 과거 판단의 근거까지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공정위는 지난해 동일인을 법인으로 유지하면서 김 의장 측으로부터 “친족이 국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확인서를 제출받았는데, 현재 이 자료의 허위 여부를 검토 중이다. 허위로 판단되면 공시자료 허위 제출에 따른 검찰 고발 등 추가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 결정은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커진 책임론과 쿠팡만 예외적 지위를 누려왔다는 비판을 일정 부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대기업집단 규제를 국내 다른 기업집단과 같은 기준으로 적용함으로써 형평성 논란을 줄였다는 의미다.

다만, 미국과의 관계 측면에서는 적지 않은 파장을 낳을 수 있다. 미국 측은 그간 쿠팡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사와 제재 움직임을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 소지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쿠팡 역시 미국 상장사이자 외국계 기업이라는 점을 내세워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대응해 왔다.

최장관 공정위 기업집단감시국장은 “시행령상 요건과 동일인 판단 지침에 따라 지정한 부분인 만큼 정당한 법 집행에 대해 미국에서 문제 삼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일인 지정 문제가 정리되면서 조사· 심의 중인 사건 처리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와우멤버십에 쿠팡이츠와 쿠팡플레이를 묶어 판매한 ‘끼워팔기’ 의혹, 입점업체에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을 요구했다는 쿠팡이츠 최혜대우 강요 논란, 입점업체 인기상품을 자체브랜드(PB)나 직매입으로 전환하도록 압박했다는 이른바 ‘가로채기’ 의혹 등이 꼽힌다.

하도급법 위반 의혹은 동의의결 절차가 진행 중이다. 쿠팡과 CPLB가 공급단가 인하 등 ‘갑질’ 혐의와 관련해 30억원 규모 상생안을 제시하면서 지난해 관련 절차가 개시됐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동일인 지정과 위법행위 사건은 별개의 사안”이라면서도 “공정위가 쿠팡의 주장과는 달리 친족의 경영 참여 사실을 조사로 확인한 만큼 개별 사건에 대해서도 보다 엄격하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고 진단했다.

한편 이번 결정을 계기로 동일인 지정제도 자체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1986년 도입된 동일인 지정제는 정부 지원 속에 성장한 소수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한국형 규제 장치다.

그러나 이후 4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기업 지배구조가 크게 바뀌었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산되고 친족 중심 경영이 약화된 상황에서 이 제도가 당초 취지인 경제력 집중과 사익편취를 막기보다는 기업인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전통적 재벌과 지배 방식이 다른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까지 동일한 틀로 규율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이정희 교수는 “일부에서는 기업을 옥죄는 규제라는 비판도 있지만, 대기업집단 상당수가 이미 오랜 기간 제도에 적응해 온 상황”이라며 “쿠팡이라는 단일 사건을 이유로 제도를 바꾸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지배구조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제도 운영 방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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