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도 외양간 안 고치는’ 한국 골프..경기위원 전임제 도입 시급하다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멀리건 사태’의 피해자가 된 허인회. [사진=대회 조직위]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강래 기자] 지난 3일 끝난 제45회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발생한 ‘허인회 사태’는 한국 골프의 씁쓸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끄럽지만 한국에서 선수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오심은 특정 대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대한골프협회(KGA) 뿐만 아니라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등 골프계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구조적 문제의 결과물이다.

허인회에 대한 ‘멀리건’ 판정은 KGA 경기위원회의 미숙한 운영이 낳은 참사다. 티샷이 페어웨이를 벗어난 상황에서 경기진행요원(포어캐디)이 OB 여부가 확정되기도 전에 임의로 원구를 집어 들었다. 이는 경기 중인 공을 임의로 건드릴 수 없다는 골프의 기본 규정이 현장에서부터 무너진 것이다. 경기진행요원에 대한 사전 교육이 전혀 없었다는 방증이다.

더 큰 문제는 현장 경기위원들의 대처였다. 명확한 규정 적용이나 투볼 플레이 지시 등의 적법한 절차 없이 임의로 원구의 스트로크 자체를 취소하고 잠정구로 플레이를 이어가게 하는 이른바 ‘멀리건’을 부여했다. 이는 프로 대회에서 있을 수 없는 판정이다.

촌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4라운드가 종료되고 허인회가 연장전에 나갈 자격이 되자 경기위원회는 뒤늦게 ‘새로운 증언’을 이유로 판정을 번복해 2벌타를 부과했다. 놀라운 것은 7번 홀에서 근무한 경기위원은 20년차 경력자였으며 치프 레프리 역시 70대 고령의 베테랑 경기위원이었다. 주말 골퍼도 알 수 있는 손쉬운 골프 규칙을 놓고 베테랑 경기위원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러한 치명적인 오심은 대한골프협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KPGA 투어와 KLPGA 투어에서도 권위를 실추시키는 굵직한 판정 논란이 반복되어 왔다.

지난 2021년 KPGA 코리안투어 개막전에서는 특정 선수의 공이 나무 그루터기 옆에 떨어졌음에도 경기위원이 이를 무벌타로 구제해 주는 명백한 오심이 발생했다. 골프 규칙상 그루터기는 자연물로 분류되어 무벌타 구제를 받을 수 없음에도 규정을 오적용했다.

지난 2017년 K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는 프린지와 그린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해 발생한 참사가 있었다. 최혜진 등 여러 선수가 프린지를 그린으로 오인해 공을 집어 들었다가 무더기로 벌타를 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경기위원회가 오락가락하는 판정을 내리자 선수들이 집단으로 반발해 대회 출전을 거부했다. 결국 사상 초유의 1라운드 전면 취소 조치가 내려졌다.

결정적인 오심 사태가 터질 때마다 각 협회는 경기 위원장의 사퇴나 사과문 발표 등 당장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땜질식 처방’으로 위기를 넘겨왔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나 계획이 없기에 한국 골프에선 주기적으로 부끄러운 오심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위원 수당제 운영에 있다. 현재 대다수의 경기위원은 협회 소속의 정규직이 아니라 대회가 열릴 때마다 파견되어 일당(수당)을 받는 형태로 운영된다. 직업적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경기위원들이 방대하고 복잡하며 매년 미세하게 개정되는 골프 규칙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공부할 동력이 떨어진다.

선발 과정 역시 엄격한 실력 위주의 검증보다는 인맥과 친분 등 ‘동종교배’ 식으로 이루어진다. 남녀 프로골프협회의 경우 경기위원 직은 ‘프로들의 밥그릇’이란 그릇된 인식들이 있다. 전문성이 떨어져 권위가 없는 경기위원들이 필드 위에서 엇갈리는 주장과 직면했을 때 냉철하고 객관적인 판정을 내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심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선수의 생계와 커리어를 위협하고 나아가 투어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치명적인 문제다. 모든 스포츠의 흥망은 심판의 공정성에 달려 있다. 이는 전 세계의 모든 스포츠 종목이 유구한 역사 속에서 증명하고 있다.

KGA 등 한국의 골프 단체들은 경기위원 전임제를 도입해야 한다. 예산에 대한 부담으로 미룰 일이 아니다. 전문성을 갖춘 경기위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해 직업적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이를 통해 규칙 연구와 대회 운영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필수적으로 조성해야 오심을 막을 수 있다.

경기 위원에 대한 엄격한 선발과 정기적인 재교육 역시 필수적이다. 친소 관계를 배제하고 투명하고 객관적인 규칙 시험을 통해 경기위원을 선발해야 한다. 또한 실제 판정 사례 분석, 글로벌 규정 업데이트 등을 포함한 강도 높은 재교육 시스템을 의무화해야 한다.

투명한 사후 평가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재계약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 시즌이 끝난 후 경기위원들의 판정에 대해 엄격하게 복기하고 명백한 오심을 낸 경기위원에 대해서는 자격 정지 등 확실한 페널티를 부여하는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규칙 적용은 프로 스포츠가 성립하기 위한 기본 전제다. 당장의 비용 절감을 이유로 수당제에 의존하는 낡은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허인회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불법과 반칙이 난무하는 세상과 달리 스포츠라는 영역은 오심의 청정구역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그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 뼈를 깎는 반성을 통해 선진화된 경기위원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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