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평등 가치 실종…자기 몫 불리기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 생각해야” 노동계 원로들도 합의 촉구 [삼성전자 노사 마지막 사후조정]

이병훈 중앙대 교수 “노조, 불황시 적자 메울 것인가”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 “3~5년간 노조 최대 목표 성과급 투쟁 될 것”
최영기 전 노동연구원장 “노조의 힘의 논리, 전례 없어”
‘N% 영업익 성과급’ 논쟁, 산업계 전반 확대 가능성
노동시장 이중구조 추가 악화 관측도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 “합의든 결렬이든 최선 다할 것”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와 함께 영업이익의 15%를 관련 재원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결의대회 이후에도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노조는 오는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평택=윤창빈 기자


[헤럴드경제=박지영·박혜원·이정완·한영대 기자] “삼성전자 노조는 정규직 이기주의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삼성전자 노사가 정부의 중재 하에 성과급 갈등을 둘러싼 마지막 협상에 나섰다. 전날 12시간에 가까운 장시간 논의를 거친 만큼 총파업 직전 극적 타결이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 노사는 12일 오전 10시부터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서 2차 사후조정 회의를 개최했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이하 초기업노조) 최승호 위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사 사후조정 회의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조합원들이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내기 위해, 그것만 바라보고 활동 중”이라며 “합의든 결렬이든 최선을 다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초기업 노조는 영업이익 15%의 성과급 지급 및 성과급 상한 폐지, 제도화를 주장하고 있다.

사측 대표 교섭위원인 김형로 부사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회의장에 입장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초유의 성과급 논쟁에 노동계 원로들은 “노동운동의 근본적 가치인 연대와 평등의 가치가 사라졌다”며 “삼성전자 노조가 쏘아올린 성과급 논쟁은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더욱 격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삼성전자 노조가 자기 몫 불리기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할 필요도 있다는 쓴소리가 이어졌다.

노사관계학자로 30여년간 노동조합의 역할을 연구해 온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성과급 상한제를 폐지해달라는 노조의 요구가 ‘지나친 욕심’이라며 “한해 장사하듯 자기 몫 불리기에만 집중하는 건 근시안적인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호황에 많이 받았다면 불황에 노조가 적자를 메울 것인가”라며 “노조는 삼성전자의 파트너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 수준이 향후 삼성전자의 경쟁력에 부담이 갈 정도로 과도한 요구는 아니다”라면서도 “사이클 산업인 반도체 사업은 기술혁신, 설비투자 등 선도 투자할 부분이 많은데 성과급을 제도화하자는 건 타당하지 않아보인다. 대화로 풀어가야 할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정규직’만의 성과냐도 따져 봐야 할 문제”라며 “분배 정의 차원에서 정규직만 독점하는 식으로 제도화한다면, 중장기적으로 노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N% 영업이익 성과급’ 논쟁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약 38년간 노동 현장을 지켜온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은 “만약 삼성전자가 성과급 상한을 폐지한다면 다른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공공부문까지 도미노처럼 성과급 상한 경쟁이 이어질 것”이라며 “최소 3~5년간 노동조합의 최대 목표가 성과급 투쟁이 될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 산업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사무총장은 또 “이번 성과급 논쟁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며 “지금도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기본임금에서 2배 차이가 나는데, 몇억 단위 성과급을 받아가는 건 노동계급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미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노동의 가치 대신 ‘일확천금’을 노리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손해”라고 쓴소리를 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거친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지금까지 성과급은 임금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교섭 테이블에서 주된 쟁점이 아니었다”라면서 “노사 관계가 성과급 투쟁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갔고, 더구나 이를 노조가 힘의 논리로 해결하겠다고 나선 건 과거에 전례도 없으며 외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좋지 않은 신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도한 성과급 배분은 노동시장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것이고, 노사관계나 노동시장의 균형발전, 공정에서 적절하지 않다”며 “정부나 사회에서 ‘성과급 투쟁’이라는 새로운 경향에 판단과 견제를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노동운동의 근본 가치였던 사회적 연대의식 실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 사무총장은 “삼성전자 초기업노조의 경우 같은 정규직 안에서도 부문별, 사업부별로 성과급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노동운동의 전제인 평등과 연대가 사라진 이익집단의 모습을 띄며 극단적인 집단 이기주의로 흐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기업별 개별 단위 협상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조율을 위해 경제단체가 나설 필요도 있다고 짚었다. 그는 “성과급 논의가 산업계로 확대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한국 경영계가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산업 단위에서 임금과 성과급 문제를 논의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이병훈 교수는 “노조에 내부자 권익 개선이라는 역할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기능도 부여된다”며 “사회적 연대 없이 그들만의 ‘돈잔치’로 끝나면 가뜩이나 임금, 복지 등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데 성과배분이 또 다른 격차를 벌릴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 교수는 사후조정 과정에서 노사가 합의해 성과배분의 공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특히 삼성전자 정규직만의 성과가 아닌 만큼, 성과배분 공식에는 초과이익 일부를 사회와 공유하는 방안도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성과 배분을 하는, 경영 독단이 사태를 키운 점도 있다”며 “노사가 합의하는 성과배분 공식을 찾아야 하며, 이 공식에는 협력사, 하청업체 등 약자들을 위한 의미있는 합의가 포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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