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참패·당 분열·차관 항의 사임·재정불안 확산…스타머 英 총리 ‘사면초가’

중간선거 참패 후 퇴진 압박 거세져
차관들 연달아 항의성 사임…장관들 퇴진 설득
노동당도 사임 vs 지지로 분열
장기국채 금리 1998년 이후 최고, 리더십 리스크에 재정 불안 확산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1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 테크니컬 칼리지를 방문, 건설 분야 견습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스타머 총리는 선거 참패 이후 고조되는 사임 압박에도 꿋꿋하게 직을 지키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지방 선거 참패와 이로 인한 노동당 분열, 퇴진을 요구하는 차관들의 항의성 사임, 국가 재정 불안 확산 등의 ‘사면초가’에 처했다. 스타머 총리는 12일(현지시간) 자진 사퇴는 안 하겠다고 선언했으나 퇴진 압박은 더 거세지고, 이미 내각에서는 차기 총리 레이스에 뛰어든 각료까지 나왔다.

스타머 총리는 이날 각료회의에서 “노동당에는 대표에 도전하는 절차가 있고, 이는 아직 발동되지 않았다”며 “이 나라는 우리의 국정 운영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그게 우리가 내각으로서 할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지난 48시간은 정부의 불안정이었다. 그건 우리나라와 국민에게 실질적인 경제 손실”이라고 말했다.

노동당 절차에 따르면 하원의원 20% 이상의 지지를 확보한 현직 하원의원이 대표직에 도전하면 경선을 치를 수 있다. 대표를 바꾸려면 이 같은 절차를 거치라는 뜻이다. 집권 노동당은 하원 650석 중 403석을 차지하는 여당이어서, 당 대표를 교체하면 총리도 자동으로 바뀐다. 총리가 직접 조기 총선을 하겠다고 공표하지 않는 이상 차기 총선은 3년 후다. 스타머 총리의 이날 발언은 외부의 퇴진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그때까지 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 7일 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스타머 총리가 직을 유지하겠다고 고집하면서 노동당은 갈라졌다. 이날 오후 기준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 103명은 스타머 총리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스타머 지지를 선언한 의원들은 “우리는 참담한 선거 결과를 받았고 유권자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어려운 일을 오늘 당장 시작해야 한다”며 “우리는 여기에 집중해야 하며 대표 경선을 할 시간은 없다”고 밝혔다.

반면 90여명의 노동당 하원의원은 스타머 총리가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스타머 총리의 고집은 내각도 분열시켰다. 차관 4명은 스타머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항의성 사표를 던졌다. 미아타 판불레 주택지역사회부 지방분권 담당 정무차관은 “대중은 총리가 이 나라를 변화시킬 거라 믿지 않고 나도 안 믿는다”며 사직하겠다 밝혔다. 이어 앨릭스 데이비스 존스 내무부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담당 정무차관, 제스 필립스 내무부 여성폭력 보호조치 담당 정무차관, 주비르 아메드 보건복지부 보건혁신 담당 정무차관이 연달아 항의성 사임에 동참했다.

이미 내각에서는 차기 총리직에 도전하겠다는 출사표까지 나왔다. 영국 매체 더타임스에 따르면 에드 밀리밴드 에너지 장관은 전날 “웨스 스트리팅 보건부 장관이 조기 경선을 촉발시킬 경우, 자신도 노동당 대표 경선에 나갈 준비가 됐다”고 내각 인사들에게 말했다. 스트리팅 보건부 장관은 경선 출마에 대해 부인하며 스타머 총리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고 있지만, 스타머 총리의 최대 경쟁자로 꼽혀온 만큼 조기 경선이 치러지면 출마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앞서 영국 일간 가디언은 샤바나 마무드 내무장관과 이베트 쿠퍼 외무장관이 스타머 총리에게 ‘질서 있는 권력 이양’을 위해 사임 일정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영국의 리더십 리스크가 커지면서 재정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스타머 총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날 장중 영국 국채 20년물 금리는 5.12%, 30년물 금리는 5.81%까지 올라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재정 리스크에 대한 불안이 더 커졌다는게 시장의 분석이다.

영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5.11%로 전장보다 0.11%포인트 올랐다. 10년물 금리는 이란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 3월 인플레이션 우려로 인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까지 올랐다. 리더십 리스크가 확산되면서 여기에 거의 근접한 수준까지 상승한 것이다.

캐슬린 브룩스 XTB 리서치팀장은 로이터 통신에 “채권 시장이 스타머의 사임 가능성뿐 아니라, 차기 총리를 둘러싼 경쟁이 영국이 감당할 수 없는 재정적 약속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파운드화도 1.3151달러로, 전장보다 0.7%나 떨어졌다.

스타머 총리는 지난 2024년 7월 총선에서 노동당의 압승을 이끌면서 취임했지만 경제 부진과 복지, 이민 정책 등 국정 운영 성과가 부진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피터 맨덜슨 주미 대사 인사 논란이 거세지면서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맨덜슨 대사는 억만장자 성범죄자인 고(故) 제프리 엡스타인과 친밀하게 지내며 성범죄를 알면서도 이를 지지했고, 기밀 유출과 금품수수 혐의까지 더해져 결국 경질됐다. 스타머 총리는 맨덜슨을 대사로 임명할 당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지했음에도 그의 임명을 강행했던 사실이 알려져 사임 위기에 몰렸다. 지난 7일 노동당의 지방선거 참패는 그의 퇴진을 한층 더 압박하고 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