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은 손 내밀었고, 트럼프는 압박했다”…미국 대통령 53년 방중 변천사[디브리핑]

1972년 닉슨 방중으로 양국 화해 물꼬…소련 견제 전략 맞물려
WTO·세계화 거치며 밀착했지만 2008년 이후 中 G2 자신감 ↑
오바마 시절 갈등 본격화…트럼프는 관세·반도체 전쟁 전환
NYT “이번 방중은 협력보다 경쟁 관리·패권 재조정 성격”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3~15일 베이징 방문은 단순한 정상회담이 아니라 50여년간 이어진 미중 관계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역사적 방중으로 시작된 미중 화해는 세계화와 자유무역 확대를 거쳐 전략 경쟁과 기술 패권 충돌 단계로 이동했고, 이번 정상회담은 그 변화가 극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라는 분석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중은 중국과의 관계가 한층 악화된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며 “미국 대통령들의 중국 방문 역사는 미중 관계의 흥망 자체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1972년 닉슨 “위대한 민족”…냉전 뒤흔든 역사적 방중

1972년 연회에서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와 건배하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AP]

미중 관계 전환의 출발점은 1972년 닉슨 전 대통령의 방중이었다. 당시 미국은 냉전 속에서 중국과 소련의 분열을 활용하기 위해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섰다. 헨리 키신저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의 비밀 방중 이후 성사된 닉슨 방중은 냉전 질서를 뒤흔든 외교 이벤트로 평가받는다.

당시 미국은 대만의 국민당 정부를 중국의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있었지만, 닉슨 행정부는 중국 공산당 정부와의 관계 개선이 미국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닉슨 전 대통령은 만리장성을 방문해 “이것은 정말 위대한 성벽이고, 위대한 민족이 건설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이후 워싱턴 국립동물원에 판다 한 쌍이 도착하면서 미중 화해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1975년 포드 방중…문화대혁명 말기에도 관계 정상화 추진

1975년 베이징에서 함께 식사하는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과 덩샤오핑 중국 부총리. [게티이미지]

1975년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방중은 마오쩌둥 사망 10개월 전, 문화대혁명 말기 혼란 속에서 이뤄졌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미국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계속 추진했고, 이는 결국 1979년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공식 수교로 이어졌다.

1984년 레이건 “중국 경제에 자유시장 정신 주입”

레이건 여사는 베이징 방문 중 베이징 동물원에서 판다를 관람했다.[AP]

강경한 냉전주의자였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4년 중국을 방문했지만 소련을 대하듯 중국 공산당 체제 전복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대신 무역과 경제 협력을 강조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방중 이후 “중국 경제에 자유시장 정신이 주입되고 있는 것에 고무됐다”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1989년 부시 방중 뒤 톈안먼 사태…미중관계 급랭

1989년 2월 톈안먼 광장을 방문한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 몇 달 뒤 중국군은 같은 장소에서 수백~수천명의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AP]

1989년 2월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중은 미중 관계가 개선 흐름을 보이던 시기에 이뤄졌다. 부시 전 대통령은 1974~1975년 베이징 주재 미국 연락사무소 소장을 지내며 사실상 대사 역할을 수행한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꼽힌다.

당시 양국 관계는 점진적으로 강화되는 분위기였지만, 같은 해 발생한 톈안먼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 사건은 미중 관계를 급격히 냉각시켰다.

부시 대통령 방중 기간에는 이후 갈등을 예고하는 사건도 있었다. 미국 측은 국빈 만찬 초청 명단에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이자 반체제 인사였던 팡리지를 포함했지만, 중국 정부는 행사 직전 그를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에 미국 측은 공식 항의했다.

이후 중국군이 같은 해 6월 톈안먼 광장 일대에서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자, 팡리지는 부인 리수셴과 함께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해 약 13개월간 머물렀다.

당시 미국 대사를 지낸 윈스턴 로드는 훗날 “단순한 만찬 문제가 결국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1998년 클린턴 시대…“중국도 결국 변할 것” 기대감

1998년 힐러리 클린턴 여사와 딸 첼시와 함께 중국 진시황 병마용 발굴 현장을 둘러보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AFP]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중은 미국 중심 세계화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이뤄졌다. 미국 사회에서는 중국이 세계 경제 질서에 편입되면 정치적으로도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강했다.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은 영어 연설과 공개 기자회견 등을 통해 개방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중국 전문가 오빌 셸은 당시를 회상하며 “클린턴과 장쩌민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존재를 즐기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2001~2008년 부시 시대…中 급부상, 美 금융위기로 자신감 변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1년 상하이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AFP]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 당시 방중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세계 무대 중심으로 부상하던 시기와 맞물리며,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등장’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

부시 전 대통령에게는 네 번째 중국 방문이었다. 당시 세계 경제는 고도 세계화 흐름 속에 있었고 중국 경제는 빠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이라크 전쟁 장기화까지 겹치면서 중국 내부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이 방향을 잃고 있다는 인식을 키워갔다.

중국 내부에서는 자국의 부상이 사실상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는 자신감이 강해졌고, 반대로 서방 체제는 퇴폐적이고 한계가 드러난 모델이라는 시각도 확산됐다.

동아시아 역사학자인 존 델루리는 “많은 사람들이 2008년을 전환점으로 본다”며 “당시 중국은 자신감에 차 있었고 미국인들은 이를 오만함으로 받아들였다”고 평가했다.

2009~2016년 오바마 시대…남중국해·사이버 갈등 본격화

2016년 마지막 방중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NYT]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기에는 갈등이 본격화했다. 중국은 남중국해 군사 활동과 사이버 스파이 활동을 확대했고, 미국은 ‘아시아 중시 정책’을 통해 중국 견제에 나섰다.

2016년 오바마 전 대통령 방중 당시에는 중국 측이 전용기 계단 설치를 지연해 오바마 대통령이 기체 뒤편으로 내려야 했고, 이를 두고 중국의 달라진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2017년 트럼프 “당신은 특별한 사람”…그리고 무역전쟁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첫 임기 당시 베이징 방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당신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NYT]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첫 방중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향해 “당신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양국 정상은 자금성을 함께 둘러봤고 대규모 투자·무역 계약도 발표했다.

하지만 그 직후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본격적인 무역전쟁에 돌입했다. 관세 부과와 기술 제재, 공급망 재편이 이어졌고 이후 팬데믹과 반도체 통제, AI 경쟁까지 겹치면서 미중 관계는 사실상 신냉전 수준으로 악화됐다.

NYT는 “미국 대통령들은 오랫동안 무역과 교류 확대가 중국의 정치적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기대했지만, 현재 중국은 오히려 미국의 쇠퇴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 스팀슨센터의 중국 프로그램 책임자인 윤선은 “시진핑은 자신이 미국 대통령과 동등한 세계 지도자라는 점을 인정받길 원한다”며 “중국은 이제 미국과 대등한 초강대국 관계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NYT는 “중국은 지금 더 강해질 시간을 벌고 싶어한다”며 “관세와 제재를 완화해 안정적 환경을 확보하는 동안 기술 자립과 공급망 재편을 계속 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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