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서 희토류 위력 확인한 중국, EU·미국 ‘디리스킹’ 저지 총력전[디브리핑]

디브리핑(Debriefing:임무수행 보고): 헤럴드경제 국제부가 ‘핫한’ 글로벌 이슈의 숨은 이야기를 ‘속시원히’ 정리해드립니다. 디브리핑은 독자와 소통을 추구합니다. 궁금한 내용 댓글로 남겨주세요!

 

중국, 제조업·희토류 무기화 가속…서방 공급망 재편에 맞불
정상회담서 ‘강하게’ 나가지 못한 트럼프 “미국 희토류 취약성 드러나”

 

중국 장쑤성의 한 공장에서 직원들이 휴대전화용 카메라 렌즈 생산설비에서 일을 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미국과 유럽이 제조업과 첨단산업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을 추진하자,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전방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최근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희토류를 포함한 중국의 핵심 광물 영향력이 다시 부각되면서, 중국은 희토류 등 핵심 광물 패권을 더 강화할 조짐을 보인다. 중국의 시장 장악이 가속화되면서 서방의 탈중국 전략이 구조적 한계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17일(현지시간) 중국이 최근 “중국 산업 및 공급망 안보를 해치는 행위를 실행하거나 지원하는 외국 정부·기업에 대응한다”는 내용의 신규 규정을 잇달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일정이 마무리되던 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차우스(求是)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제조업 강화 발언 모음집을 공개했다. 이는 중국 제조업 경쟁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상공회의소 의뢰로 작성된 최근 보고서는 “중국의 목표는 기존 시장 지위를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급망 다변화 시도를 적극적으로 억제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역할을 유지하는 데 있다”며 “최근 규제 변화는 사후 대응에서 벗어나 미래를 겨냥한 선제적 경제 강업 전략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최근 유럽연합(EU)을 겨냥한 제조업 패권 강화에도 나섰다. EU는 현재 역내 제조업 육성을 위한 ‘산업 가속화법(IAA)’ 도입을 논의 중이다. 이른바 ‘메이드 인 유럽’ 정책으로 불리는 해당 법안은 공공 조달 계약에서 역내 기업을 우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목표는 2035년까지 제조업 비중을 EU 경제의 2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틱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IAA가 의도하는 공급망 다변화 시도 자체를 겨냥한 법적 방패를 구축했다”며 “외국 정부가 기업들의 탈중국 공급망 전환을 압박하거나 유도하려 할 경우 중국은 이를 자국법 위반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최근 공개한 5개년 계획에서도 국제 정세를 “지정학 경쟁이 점점 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미래를 이끄는 주요 요인”이라고 규정했다. 공급망 위험 재편, 역내 제조업 경쟁력 강화 등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 중국의 산업 패권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안보를 경제정책 전반의 최우선 원칙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주 발표된 미국 상공회의소 보고서는 중국이 오랫동안 확보해온 저부가가치 공급망 지배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자국의 점유율을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중국 제조업 비중이 계속 확대될 경우, 서방 경제가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이 글로벌 제조업 점유율을 높일수록 다른 국가 기업들의 수익성과 마진은 줄어들고, 결국 연구개발(R&D)과 혁신 재투자 여력도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벤처캐피털과 민간 투자 역시 중국 기업이 장악했거나 중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산업을 점점 기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특히 독일 자동차 산업 지역, 일본 전자산업 도시, 이탈리아 기계산업 지구 등 특정 제조업 중심 지역들이 장기적인 구조조정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세수 감소와 공공서비스 약화가 연쇄적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로이터]

일각에선 지난 14~15일 이뤄진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가 트럼프 행정부의 취약한 핵심 광물 공급망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이디 크레보레디커 CFR 선임연구원은 온라인 세미나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이 중동에서 엄청난 첨단 무기 시스템을 소모해 버렸고, 미사일 보충 생산에는 희토류가 가장 중요하다는 불편한 현실 속에 이번 회담에 임했다는 사실”이라며 “중국이 완벽하게 목줄을 죄고 있는 희토류에 미국은 큰 취약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첨단 무기 재고 부족과 중국이 가진 사실상의 희토류 독점권이 맞물리며,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가 무역 문제와 관련해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