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K-민주주의” 쉼 없이 달려온 6개월…상견례부터 최종 악수까지 [삼성전자 노사협상 타결]

“경쟁사 수준 이상 보상” 요구한 노조
12월부터 수십차례 물밑 대화와 교섭
끈질긴 대화 끝에 잠정합의 이끌어


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안에 서명한 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K-민주주의를 보여줬다.”(김영훈 고용노동부장관)

지난 6개월간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노사의 간극은 도저히 좁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끈질긴 대화 앞에선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대화의 저력’을 보여줬다고 언급한 이유다. 100조원 이상 피해가 예상됐던 초유의 삼성전자 총파업, 그 시작부터 잠정합의를 이뤄내기까지 긴박했던 반년이었다.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노사는 임금교섭 1차 본교섭을 시작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노조동행 등이 꾸린 공동교섭단은 초과이익성과급(OPI)의 투명화 및 성과급 상한해제, 베이스업(공통 인상률) 7% 등을 골자로 교섭을 시작했다.

노사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한건 지난 2월부터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서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사용하고, 성과급의 상한을 폐지하면서 경쟁사 이상의 보상이 필요하다는 기류가 강해진 것이다. 노조는 “경쟁사 수준 이상으로 보상해달라”고 요구하며 “더 이상 의미있는 진전을 만들기 어렵다”고 교섭 결렬을 선언하며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신청에 들어갔다. 6일간의 집중교섭에도 불구하고 중노위는 조정 중지를 결정했다.

공동교섭단은 공동투쟁본부로 전환, ‘성과급 상한폐지와 성과급 산정 기준 투명화’를 내걸며 총파업 투표를 진행했다. 전체 조합원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실시한 결과 93.1%의 찬성으로 쟁의권을 확보했다.

이에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직접 나섰다. 전 부회장과 노조의 미팅으로 노사는 임금 교섭을 재개했다. 사측은 업계 1위를 달성하면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사용하고 성과급 상한선을 초과하는 특별 포상을 제안했지만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를 제도화해야 하고, 적자사업부인 파운드리·시스템LSI 등에 보상이 적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수차례 이어진 교섭에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노사 갈등은 극에 달했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은 3월 총파업을 독려하며 “파업 불참시 해고 1순위” 등 강도 높은 발언을 하고 노조 가입자가 비노조원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사측이 경찰에 고소장까지 접수하며 노사 관계는 멀어졌다.

경쟁사 이상의 대우가 필요하다는 노조의 주장에 동감한 직원들은 속속 초기업노조에 합류했다. 2025년 9월 전 6000명에서 시작한 초기업 노조는 6개월만에 7만5000명으로 과반노조 지위를 확보했다. 4월 17일 초기업노조는 공식 과반 노조 출범을 선언하면서 총파업의 동력을 키웠다.

4월 23일 평택캠퍼스에서 진행된 총파업 투쟁 결의대회에서는 4만명이 모이며 사측을 향한 압박수위를 높여갔다. 최승호 위원장은 “이 투쟁은 삼성전자의 미래를 위한 싸움이며,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위한 싸움”이라며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 15% 성과급 재원 사용을 주장하며 총파업 강행 의지를 밝혔다.

노조가 예고한 18일간의 총파업 기간 동안 30조원 이상의 피해액이 예상되는 등 총파업으로 인한 불안감은 확산됐다. 갈등이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사측은 5월 노조를 향해 먼저 대화의 손을 내밀었다. 전영현·노태문 대표이사 명의로 “경영진 모두가 책임있는 자세로 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이후 노사는 파업을 열흘 남짓 남긴 상황에서 중노위 중재로 1차 사후조정 절차에 들어갔다. 하지만 노조는 “성과급 상한폐지 투명화·제도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최종 결렬을 선언했다.

총파업 시계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며 사측은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사장단 18명의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한 후 평택사업장을 방문해 노조에 추가대화를 제안했다. 중노위도 노사에 2차 사후조정을 요청했다. 김영훈 장관도 노사를 찾아 양측의 입장을 들었다.

막혀 있던 노사 관계의 혈을 뚫은 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도 다 제 탓으로 돌리겠다”며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 몸 한 가족”이라며 “지혜롭게 힘을 모아 한 방향으로 나아가자. 삼성인(人)임을 자부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독였다. 이 회장의 사과 이후 사측도 노조가 주장한 교섭위원 교체를 수용하며 2차 사후조정 전 물밑대화가 이어졌다.

총파업을 3일 앞둔 18일부터 진행된 중노위 주관 2차 사후조정에는 박수근 중노위원장이 직접 참석해 조율을 맡기도 했다. 상황은 절박했다. 25시간 마라톤 회의가 이뤄졌지만 파업을 하루 앞둔 20일 오전 11시 30분께 사측은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회사 경영의 기본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며 최종결렬을 선언했다.

하지만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끝나야 끝난다’며 오후 4시께 노사를 모아 직접 추가 교섭에 나섰고, 약 6시간 30분 만에 노사는 추가 교섭에 잠정 합의, 결국 총파업 유보를 이끌어냈다. 사업성과의 10%대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는 파격적 보상안에 합의했다. 노조는 오는 22일부터 6일간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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