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동전쟁發 원가 급등에…건설업 상위 19곳, ‘납품단가 인상’ 상생협약

사후제재보다 예방 중심 전환 필요성
신속 대금지급·유보금 관행 폐지 추진
비상시기 납품단가 신속 조정도 논의

서울 도심 내 한 공사현장의 모습. [헤럴드DB]


[헤럴드경제=양영경·서정은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와 건설업계가 불공정 하도급 관행 개선을 위한 상생협약 체결에 나선다. 중동 전쟁 여파로 건자재 가격이 급등하며 협력업체 부담이 커진 가운데 원·하청 간 비용 부담을 분담하고 거래 안정성을 높여 위기 극복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특히 이번 협약에 참여하는 건설업계 상위 19개사가 모두 협력업체 납품단가 인상 계획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과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장, 시공능력평가액 상위 20개 종합건설사 가운데 19개사 관계자가 오는 28일 서울 전문건설회관에서 상생협약을 체결한다.

워크아웃 절차를 진행 중인 태영건설(시공능력평가 19위)만 제외돼 사실상 상위 20개 건설사가 모두 협약에 동참하는 셈이다.

이번 협약은 단순 사후 제재만으로는 현장의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추진됐다.

공정위는 그동안 하도급 대금 미지급과 유보금 설정, 부당특약 등에 대해 제재를 이어왔지만 현장에서 불공정 관행이 반복돼 왔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자율 개선과 사전 예방을 유도하는 것은 물론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상생협력 체계를 구축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9월 30일 세종 6-3 20공구 공공임대주택 건설 하도급 공사 현장을 방문해 건설업계 대표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


앞서 주 위원장도 지난해 9월 건설 하도급업계 현장 간담회에서 하도급 현장 내 상생문화 정착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주 위원장은 “우리 경제의 진짜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하도급 현장에서부터 상생문화가 확산돼야 한다”면서 “공정한 하도급거래 질서 확립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도 최근 과징금 부과 수준이 높아지고 제재 부담이 커지면서 상생협약 활성화와 동의의결 등을 통한 자율시정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제재 이후 법정 다툼으로 가기 전에 사전 예방을 통해 거래 질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협력업체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협약은 협력업체 부담 완화에 초점이 맞춰진다. 공정위와 건설업계는 신속한 하도급 대금 지급을 유도하고 유보금 관행 폐지에도 나설 계획이다.

현재 일부 원청업체들은 기성금 가운데 하도급대금의 90% 내외만 우선 지급한 뒤 나머지 금액은 준공 이후까지 미루는 이른바 ‘유보금’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하도급업체들은 대금 지급이 지연되면서 노무비 지급과 원자재 구매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해 왔다.

부당특약 시정도 협약의 주요 과제로 포함된다. 하도급업체 권리를 제한하거나 산업안전비용, 폐기물 처리비용 등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특약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협약에는 중동 전쟁 여파로 급등한 건자재 가격 부담을 원·하청이 함께 분담하는 방안도 담긴다. 공정위와 건설업계는 하도급대금 연동제 정착과 함께 비상 시기 납품단가를 신속 조정하는 체계 마련에도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연동주기가 남아 있어 원가 상승분이 제때 반영되지 못하고 하도급업체들도 거래 단절 우려로 인상 요구 자체를 꺼리는 사례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번 협약에 참여하는 19개 건설사는 협력업체 납품단가 인상 계획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약이 원·하청이 함께 위기를 분담하는 상생 모델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중동 전쟁 여파로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도 건설사들이 협력업체와의 거래 안정화와 납품단가 조정에 나선 것은 산업 생태계 전반의 연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산업은 수많은 하청업체와의 협업으로 완성되는 구조인 만큼 협력사의 시공능력과 재무건전성에 따라 원청의 프로젝트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며 “상생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전체 품질과 안전 수준을 끌어올리고 장기적으로는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이번 협약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협약이 오랫동안 지적돼 온 불합리한 거래 관행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보금 관행이 폐지될 경우 하청업체들이 공사대금을 제때 받게 되면서 경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원청에 유리하게 일방적으로 적용돼 온 관행도 이번 협약을 계기로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납품단가 조정은 부실시공 문제를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연구위원은 “그동안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따른 비용 부담을 하청업체가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며 “유가와 환율 급등에 따른 부담을 원청과 협력업체가 함께 분담하게 되면 비용 절감을 위해 무리하게 공정을 진행하면서 발생했던 일부 사례들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하청 상생협력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업황 자체가 어려운 만큼 금융 지원 보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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