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부터 성차별까지…게임 속 ‘진짜’ 세계

게임으로 철학하기 주자안 지음 정세경 옮김 현암사


“사방에 야수가 있다. 늦든 빠르든 너도 곧 그들 중 하나가 될 거야….”

게임 ‘블러드본’에서 개스코인 신부는 플레이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처럼 말을 건넨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보스인 신부의 말을 처음 들은 플레이어는 ‘야수는 바로 너잖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부를 물리치기 위해 수십 번을 죽고 마을 사람들을 죽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그들 중 하나가 돼 있음을 깨닫게 된다.

타이완의 젊은 철학자 주자안의 ‘게임으로 철학하기’는 비디오게임을 좋아하는 저자가 철학으로 게임을 분석하는 책이다. 비디오게임은 ‘허구’이지만 진짜를 사칭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짜는 아니고, 때로 ‘진짜’를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출발해 철학적 사고 실험을 펼친다. 저자는 5개의 스테이지를 통해 23개의 질문을 던진다. 먼저 게임학자 예스퍼 율의 이론을 빌려와 게임을 ‘게임 규칙’과 ‘가상 세계’로 분석하고 ‘경기, 스토리텔링, 시뮬레이션’이라는 비디오게임의 지향점을 살펴본다. 이어 ‘자유의지’를 고찰한다. 게임은 개발자가 설계한 코드와 규칙 안에서만 작동하지만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면서 자유를 느낀다. 이러한 역설의 기저에는 때로 제약이 새로운 선택지를 불러와 자유를 늘리고, 인간은 ‘내가 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다만 게임이 플레이어의 취향을 조종하고 주의력 패턴까지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도파민 자극형 게임에만 매몰되지 말고 뛰어나게 잘 만들어진 게임을 경험할 것을 제안한다.

책은 미학적 관점에서도 게임을 파고든다. 게임의 예술성과 깊이, 무쓸모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탐구한다. 비디오게임도 오락 용도, 감상 방식, 높음과 낮음, 전시회와 상 같은 예술적 기준을 갖추고 있고, 점차 예술의 한 장르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또한 게임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비판에 대해 현재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음을 짚는다. ‘시간 낭비를 하면 안 된다’는 관념 자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동하는 실패의 일환이란 분석은 게이머들에게 위안이 되는 대목이다.

저자의 철학적 사고가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비디오게임 속 윤리 문제를 다루는 마지막 스테이지다. 게임 내에서의 폭력 묘사나 성적 대상화, 게임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성차별과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책에 따르면, 비디오 게임은 이성애자 남성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다. 이성애자 남성 게이머들은 주류로 군림하며 여성과 동성애자 등을 소외시키고, 게이트키핑을 통해 악순환을 낳는다. 게임 속 여주인공의 볼이 통통해졌다며 “PC주의가 개입했다”고 비난하고, 제작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다. 이러한 게임과 커뮤니티 내 성차별적 발언은 여성 게이머들에게 불편함과 불안감을 준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비단 게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라는 점에서 공감을 자아낸다. 게임에 문외한인 사람도 철학적 사유를 곱씹으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게임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익숙했던 게임을 다시 보며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을 책이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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