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팔천피’ 질주에도 채권·원화가격 왜 폭락? [홍길용의 화식열전]

코스피가 8000선을 회“복했다. 1만 선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이제는 적지 않다. 동시에 경제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가와 환율 불안 때문이다. 당장 따지면 물가는 이란 전쟁, 환율은 외국인 주식 매도 등 달러에 대한 수요 확대가 직접적 원인으로 꼽힌다. 환율이 불안하면 경제도 불안해진다. 만약 경제 위기가 온다면 ‘만스피’는 어렵다. 물가와 환율이 증시와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까?

지난 22일 원화 값이 1달러당 1520원을 넘겼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다시 SNS에 등판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책실장이다. 장관급이니 정책도 정치다.

김 실장은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은 한국 경제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성공의 비용”이라며 “위기의 전조가 아니라 도약의 마찰음”이라고 진단했다.

* 챗GPT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이미지 입니다.


경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돈이 어디로, 왜 움직이는지 그 흐름을 잘 살펴야 한다. 수요와 공급, 양측의 논리를 동시에 이해해야 시장의 윤곽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다. 금리 상승은 달리 말해 돈의 수요가 많아서다. 달러 강세, 즉 다른 주요 통화들의 약세는 달러 수요가 늘어난 결과다. 왜 돈이 필요할까?

저축에서 투자로…정부도 기업도 “돈이 필요해”

미국은 빅테크의 천문학적 AI 투자가 진행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감세와 재정 확장으로 경기를 부양하기 원한다. 일례로 2027회계연도 국방예산도 1조5000억달러를 의회에 요청했다. 올해보다 40% 이상 큰 규모다. 세계 최고의 기업들과 미국 정부가 동시에 달러를 빨아들이고 있다. 수요 우위이니 금리 상승이다.

세계 경제 2위 중국도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고 있다. 막대한 국가부채를 안고 있는 일본도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 재정 확장을 추진 중이다. 유럽도 방위비 증액과 에너지 전환, 전력 망 등 인프라 개선, 산업경쟁력 제고에 투입하는 재정을 늘리고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 돈이 필요하다.

장기적 계획 아래 이뤄지는 이들 국가의 투자와 재정 확대는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 대결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경제 효율이 낮아졌다. 낮은 효율은 고물가로 이어졌고 금리 수준을 높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덕분에 빚으로 경제를 버텨온 주요 선진국 정부의 이자 부담도 커졌다.

잘 하는 게 잘 팔린다 …메이드인코리아, 전성시대

한국을 보자. AI 투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부문에서 경쟁력이 절대적이다. 에너지 인프라 부문에서도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상당하다. 글로벌 방위비 증액의 수혜를 볼 방산 업체들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지금 세계 각국이 주로 사들이려는 것들 대부분이 우리가 잘 만들고, 팔고 싶은 물건들이다.

우리나라 역시 미래 투자에 따른 재정지출 필요가 크지 않을 리 없다. AI 시대에 대비한 각종 인프라와 기술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시급하다. 다행히 한국의 정부 부채 수준은 다른 선진국보다 낮은 편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기업 이익이 폭증하면서 정부 세수도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재정지출을 위해 시장금리 상승을 감수하면서까지 적자 국채를 발행할 이유가 다른 나라보다는 적다. 투자의 시대, 한국 경제는 피해 보다는 수혜를 누릴 위치에 가깝다.

코스피 급등에 …외국인, 차익실현이 환율 자극

문제는 환율과 금리의 ‘불안’이다. 26일 종가 기준 달러/원 환율은 지난해 말보다 4.45%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일본 엔화(+1.26%)보다 가치가 더 하락한 셈이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물가 부담이 커졌고 이는 금리의 가파른 상승으로 이어졌다. 금리는 환율과 불가분이다.

한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지난해 말 3.385%에서 지난 22일 4.064%로 20% 이상 급등했다. 같은 기간 미국(4.15%→4.5%), 영국(4.47%→4.90%), 독일(2.85%→2.96%)은 물론,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부담이 훨씬 큰 일본(2.08%→2.72%)보다도 상승폭이 컸다. 한국 금리상승의 핵심이 재정 문제가 아닌 환율 불안이라는 걸 보여준다. 환율 상승은 원화 자산에 투자한 외국인들에게 환차손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지난해 75% 급등한 코스피는 올해 들어서도 90.96% 상승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포트폴리오에서 한국 비중이 갑작스럽게 커지면서 일부 차익실현을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연초 이후 26일까지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도 금액은 96조4000억원에 달한다. 단연 역대 최대다.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칠 만하다.

코스피 일드갭 매력, 미국·일본보다 월등

더 매력적인 곳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 증시가 더 매력적인데도 환율 불안 때문에 자금이 떠난다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의 이익 전망은 압도적으로 높고 금리 수준은 미국보다 낮다. 채권 대비 주식의 상대적 매력, 즉 일드갭(yield gap)으로 따지면 한국의 매력이 뚜렷하다.

코스피의 일드갭이 미국과 일본 대비 압도적으로 높다.


미국 S&P500은 주식 이익수익률과 10년 국채금리가 거의 붙었다. 채권 대비 주식의 매력이 미미하다. 한국은 코스피 급등에도 선행 PER이 8~9배 수준이다. 이익수익률은 11~12% 수준이고, 10년 국채금리와의 차이도 7%포인트 안팎이다. 주가는 많이 올랐지만, 이익 전망까지 감안하면 채권 대비 여전히 매력적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무역흑자가 급증하면서 외화 수급 여건이 크게 개선될 수도 있지만, 해외투자 자금 마련을 위해 기업들은 수출대금 환전을 늦추고 있다. 사실 수출기업 입장에서 달러/원 환율 상승은 그리 불리한 환경이 아니다. 국민연금과 개인들의 미국 등 해외 금융투자 수요는 여전하다.

K-경제의 그림자 …21세기에 20세기 외환시장

문제는 증시 밸류에이션이 아니라 환율 변동성이다. 지난 4월 한국은행은 자본유출 충격에 대한 원화의 민감도를 추정했다. 0.65로 선진국 통화인 일본 엔화(0.38)보다 훨씬 높고, 신흥국 평균(0.71)에 가까웠다. 한국은행 김지현 이코노미스트는 이 차이의 원인으로 외환시장의 깊이(depth)를 지적했다.

외환시장의 깊이는 충분한 매수·매도 주문이 다양한 가격대에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깊이가 얕으면 대규모 거래가 들어올 때 가격이 크게 출렁인다. 원화 현물 시장은 사실상 역내(on-shore) 중심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통화는 24시간 전 세계 어디서든 거래된다. 원화는 정해진 시간에만 거래된다. 그나마 2024년 7월 거래 마감시간을 연장(15시30분→익일 새벽 2시)했지만, 여전히 제한적이다.

국내 외환시장에서 중개회사를 통해 거래할 수 있는 주체는 외국환은행으로 한정된다. 참여자가 적으면 주문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특정 방향으로 쏠릴 때 충격을 흡수할 완충 장치가 부족하다. 외국인의 원화 현물 거래 접근성이 제한적이다 보니 차액결제선물환(NDF)이라는 우회 시장이 역외에서 기형적으로 발달했다.

“깊고 넓어져야 원활해져” …개방할수록 더 안정될 수

외환위기의 트라우마가 이 구조를 만들었다. 정부는 외환관리를 잘못하면 나라가 흔들릴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시장을 폐쇄적으로 운영해왔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폐쇄성이 원화의 변동성을 키운 원인이 됐다. 자본시장연구원 강현주 선임연구위원이 5월 발표한 보고서가 흥미로운 실증을 보여줬다.

2024년 7월 외환시장 거래시간을 연장한 뒤 갭 리스크(gap risk)가 52.6% 줄었다. 해외에서 밤새 터진 뉴스가 다음 날 서울 개장 때 한꺼번에 반영되던 충격이 절반 이상 완화된 것이다. 거래시간을 늘리면 변동성이 커질 것이란 우려와 정반대 결과다. 역내 정규 장의 변동성은 역외 NDF 시장보다 오히려 낮았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투자 수요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금리가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외환 변동성에 대한 불안으로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상승한다면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흑자와 경제성장을 일부 기업과 업종이 주도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번에도 오해 산 ‘용범열전’ …“본질은 외환시장”

김용범 실장이 최근 SNS에 올린 글이 정치적 논란이 돼 청와대가 이를 해명하는 상황이 또 반복됐다. 이번에도 그의 발언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탓인 듯일까? 그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주목했고, “과도한 쏠림과 변동성은 적극적으로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대책 지원대책도 예고했다.

AI 혁명으로 커지는 우리 경제의 몸집에 걸맞은 외환거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자세히 설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이 획기적으로 커지고, 증시 시가총액은 세계 5위권을 넘볼 정도가 됐다. 20세기의 외환거래 시스템으로는 달라진 경제 체급을 이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특히 김 실장이 외환보유액 확대와 함께 언급한 유동성 안전판 구축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은 더 이상 작은 개방경제라는 말 뒤에 숨을 수 없다. 수출은 지난해 일본을 넘어섰고, 증시는 세계 5위권을 바라본다. 주요 기업들은 AI 투자 사이클의 글로벌 핵심 공급자가 됐다.

디지털자산과 스테이블코인 시대까지 열린다면 우리와 같은 무역 중심 경제구조에서 외환시스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지금 우리 경제의 문제는 달러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달러가 드나들 항구의 수심이 너무 얕고, 접안할 부두도 지나치게 좁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체급이 올라갔다면 원화의 체급도 높아져야 한다.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이 함께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선다면 코스피 2만도 꿈이 아닌 경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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