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평생 처음 투표 못해” 투표용지 부족에 멍든 참정권

서울 송파·강남·동작 일부 투표소 혼란
투표지 없어 밤새운 유권자들 강한 항의
투표결과 불신 ‘선거무효’ 구호도 등장
“누가 당선돼도 문제” “다시 투표해야”


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시민들이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함 반출을 저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 투표소는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 마감 시각을 오후 6시에서 오후 10시로 미룬 곳 중 하나다. 윤창빈 기자


“내 평생 투표 자체를 못 하는 건 살면서 처음 봤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 종료를 앞두고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동작구 일부 투표소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시민들의 거센 반발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이 확정됐음에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4일 오전 7시께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은 밤새 몰려든 시민 150여명이 건물 입구를 에워싸고 긴장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평소 우성아파트 경로당으로 쓰이는 건물 앞에는 잠옷 차림으로 나온 주민과 태극기를 든 시위 참가자들이 뒤섞여 있었다. 일부는 밤을 꼬박 새운 듯 의자에 기대 눈을 붙이고 있었고, 어떤 시민들은 확성기를 들고 “선거 무효”, “투표 형평성이 깨졌다”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 투표소는 전날 전국 14개 투표소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 현장 중 가장 늦게까지 투표가 이어진 곳이다. 당시 선거관리위원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들에게 밤 10시까지 투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일부 유권자들이 절차에 문제를 제기하며 투표 결과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고, 보수 성향 유튜버들과 시민들이 잇따라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선관위는 전날 오후 11시50분께 투표 종료를 선언했지만 시민들의 반발로 투표함 2개를 개표소로 이송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해당 투표함에 약 2000표가 들어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투표 용지 부족 상황 자체가 납득 안돼”…주민들 곳곳에서 거센 항의=전날 대기표 150번대를 받았다는 우성아파트 주민(40) A씨는 “투표 못한 주민들 분노가 심하다”며 “선착순으로 투표권을 가져간다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투표소 맞은편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모(50대) 씨는 “바로 맞은편 17동에 사는데 한숨도 못 잤다”며 “중학생 때부터 이 동네에 살았지만 주민들이 이렇게 언성을 높이는 광경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오세훈 후보가 이기고 있다는데 어느 당이 이기느냐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며 “이 상황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부 유권자들 사이 재투표를 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현진(31) 씨는 “투표소 앞에서 밤을 세웠다”며 “누가 당선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의문 제기하고 다시 투표해야 앞으로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지역 유권자들도 몰려들었다. 서울 구로구에서 왔다는 이정환(28) 씨는 “출장을 다녀오자마자 소식을 듣고 집에만 잠깐 들렀다가 곧바로 이곳으로 왔다”며 “10시간 넘게 현장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는 상황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다”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개표소로 투표함을 이송한다는 원칙엔 변함이 없지만 투표함 회수를 무리하게 강행하지는 않을 예정”이라며 “나머지 개표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원칙적으로는 모든 투표함에 대한 개표가 이뤄져야 절차가 종료된다”고 설명했다.

▶밤새 이어진 반발…분노한 시민들 광화문·과천 집결=잠실에서 시작된 논란은 밤사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있는 경기 과천과 서울 광화문으로 번졌다. 같은 날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정문 앞에는 이번 사태에 반발하는 시민 약 150명이 집결했다. 울산에서 왔다는 권우권(20)씨는 “성인이 된 뒤 처음 한 투표부터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며 “전반적인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첫차를 타고 왔다는 한모(56) 씨는 “국민이라면 당연히 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다른 사람들이 갈 때까지는 나도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은평구 주민 A씨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너무 화가 나 밤에 지하철을 타고 왔다”며 “아이들 생각을 하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한 남성은 “자전거를 타고 대전역까지 간 뒤 KTX를 타고 서울에 왔다”고 했다.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송파구 문정2동 유권자들의 항의도 이틀째 이어졌다.

김민지(58) 씨는 “투표용지가 없다고 해서 돌아갔는데 우리 가족은 결국 투표를 못했다”며 “대국민 사과뿐 아니라 대책과 관계자 엄벌을 바란다”고 했다. 김씨의 딸 박소정(27) 씨는 “전날 5시 넘어서까지도 투표소에서는 ‘용지가 없다’ ‘선관위 연락이 안된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했다.

▶혼란 속 대기표 공유…투표소 대대적 혼란=선거 당일 문정2동 제2투표소에서는 유권자들끼리 대기표를 돌려 쓰는 모습까지도 목격됐다.

김석주(57) 씨는 “마감 전 달려왔는데 대기표는 더 이상 발급을 안 한다고 하더라”며 “누가 투표하고 버리려던 대기표를 주워서 투표했다”고 했다. 일부 유권자들이 격하게 항의하자 관리자는 “그냥 투표하시라”고 하기도 했다.

기다리던 유권자들에 대한 추가 투표 허용 시간이 투표소 마다 상이해 혼란이 가중됐다. 문정2동 제2투표소는 투표 종료 시각인 오후 6시보다 25분만 더 투표를 연장했다.

투표소 마감 직후 만난 박모(42) 씨는 “6시 훌쩍 넘어 투표소를 곧 마감한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토마토를 자르다 달려나왔다”며 “투표용지가 없어 못하고 돌아간건데 충분히 시간을 줘서 투표권을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선거 당일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잠실7동 제2투표소 관련 112 신고는 총 135건이 접수됐다.

김아린·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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