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천피의 역설’ 외인 올해 120조 엑소더스, 증시·환율 덮쳤다 [금융시장 ‘검은 금요일’]

외인 매도 폭탄에 금융·주식시장 ‘경고등’
20일 연속 순매도, 환율 금융위기 후 최고
대탈출 외국인에 코스피 8000선마저 위협
환율 1500원대 고착·장기화 우려도 커져


반도체 대형주 급락으로 코스피지수는 5일 장중한때 8000선을 위협받을 정도로 급락하며 ‘검은 금요일’을 연출했다. 원/달러 환율도 1540원을 넘어서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각종 지표를 살펴보고 있다. 임세준 기자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첫 ‘팔천피’ 시대를 열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자금 이탈이 이어지면서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120조원 가까이 순매도한 외국인은 최근 20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나타내면서 전례 없는 대탈출에 나섰다.

이에 반도체 대형주 급락으로 코스피는 5일 장 초반 8000선을 위협받을 정도로 급락하며 ‘검은 금요일’을 연출했고, 원/달러 환율도 1540원을 넘어서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외국인 매도세가 환율 급등과 맞물리면서 증시와 외환시장의 불안이 동시에 커지는 모습이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해 초부터 이달 4일까지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제외한 코스피 시장에서 총 116조60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특히 5월 4일부터 6월 4일까지 최근 한 달 동안에만 60조6000억원을 순매도하며 매도 강도를 크게 높였다.

외국인 매도 물량은 국내 증시를 대표하는 반도체 대형주에 집중됐다. 올해 들어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60조2000억원어치, SK하이닉스를 40조8000억원어치 각각 순매도했다. 두 종목의 순매도 규모만 101조원에 달해 전체 외국인 순매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외국인 순매도세는 이날도 계속됐다. 10시 20분 현재 외국인은 1조6000억원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20거래일 연속 ‘팔자’를 기록하게 된다. 이는 역대 9번째로 긴 순매도세다.

이에 코스피 지수는 전장보다 316.21포인트(3.66%) 하락한 8323.20으로 출발해 낙폭을 키우고 있다. 개장 직후에는 급락에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오전 10시 기준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6.49% 하락한 8078.73에서 거래 중이다.

특히 외국인이 집중적으로 매도한 반도체 대형주의 하락세가 거셌다. 이날 삼성전자(-5.83%)는 급락해 단숨에 33만원대로 밀려났으며, SK하이닉스(-7.70%)도 210만원대로 내려섰다. 아울러 SK하이닉스 최대주주 SK스퀘어(-8.08%)도 급락 중이다.

코스닥 지수는 1000선이 붕괴하며 하락하고 있다. 이날 코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14.51포인트(1.38%) 하락한 1035.22로 출발해 낙폭을 키우고 있다. 오전 10시2분 현재 코스닥 지수는 5.12% 떨어진 995.98를 기록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현재 외국인 매도세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규모는 물론이고 이정도로 긴 기간 탈출한 사례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외국인은 지난달 7일부터 지난 4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19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충격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했던 2020년 3월 5일부터 4월 16일까지 30거래일 연속 순매도한 이후 약 6년 만의 최장 기록이다.

하루 순매도 규모도 기록적인 수준이다. 지난 4일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도액은 6조9880억원으로 집계돼 역대 두 번째 규모를 기록했다. 역대 최대 기록 역시 올해 나왔다. 지난 2월 27일 기록한 7조812억원이 사상 최대 순매도액이다.

외국인 자금 이탈이 이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0.7원 내린 1529.0원에 거래를 시작한 후 장중 1540원을 넘어섰다.

시장에서는 외국인 매도세와 원/달러 환율 상승이 서로를 부추기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 투자로 수익을 내더라도 최종적으로는 달러 기준 수익률을 따진다. 따라서 원화 가치가 하락해 환율이 상승하면 주가가 오르더라도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코스피가 상승하더라도 원화 약세 폭이 더 크면 달러로 환산한 투자 성과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때문에 환율이 상승 국면에 접어들면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 비중을 줄이거나 투자금을 회수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최근 외국인 순매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 집중되면서 원화 자산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외국인 매도 자체가 다시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운다는 점이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매도한 뒤 자금을 본국으로 송금하기 위해 원화를 달러로 바꾸면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늘어난다. 달러 수요 증가는 곧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높아진 환율은 다시 외국인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구조다.

실제로 외인 순매도와 환율 고공행진은 함께 길어지고 있다. 외인 순매도는 이날로 20거래일 연속 이어지고 있고,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13거래일 연속 1500원대를 웃돌았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주식 매도와 매수 흐름은 우리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외국인의 비중만큼 중요한 환율 변동 요인으로 작용해 왔는데 5월 중순 이후에는 일평균 3조원 수준으로 매도 규모가 급격하게 커졌다”며 “이 요인들은 당장에 소멸할 것 같지 않다”고 강조했다. 홍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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