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원도 배제 못해…고환율에 금융권 건전성 사수 최대 과제

당국 NDF 거래 환율 급등 ‘주범’ 간주
스무딩 오퍼레이션 등 조치 이어갈 듯
금융권 CET1 하락 등 건전성 악화 비상
중소기업 중심 대출 연체율 확대 우려도


8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딜링룸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돼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555.2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직전 거래일 주간 종가(1539.1원)보다 16.1원 오른 것이다. 시가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6일(1590원) 이후 가장 높다. 윤창빈 기자


[헤럴드경제=김은희·김벼리·서상혁·정호원 기자]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550원선마저 넘어서면서 금융권 전반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주식 매도가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가운데 중동 전쟁 장기화, 미국 금리 인상 전망까지 더해지며 환율 상단을 1600원까지 열어둬야 한다는 비관론도 힘을 얻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례 없는 ‘고환율 쇼크’에 정부는 일부 투기적 거래가 쏠림 현상을 가속했다고 진단하고 시장 안정화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국, 일부 투기적 거래 겨냥해 경고=8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7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1555.2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관계 당국은 NDF(역외선물환) 시장을 중심으로 한 투기적 외환 거래를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의 ‘주범’으로 보고 있다. 이 시장에서 끌어올린 환율이 시장의 환율 상승 기대감으로 이어지면서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NDF란 해외에서 외화를 직접 거래하지 않고, 만기 시점 환율 차이만 정산하는 파생상품이다. 증거금(보증금)만 내면 실제 금액의 수십 배까지 투자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적은 돈으로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구조다.

전날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주재한 긴급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참석자들은 NDF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NDF 거래를 국내 외환시장으로 흡수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당국이 외환시장 거래 24시간 연장 등 ‘원화의 국제화’를 추진하는 것도 NDF 거래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방안 중 하나다. 해외에서 이뤄지는 불투명한 거래를 국내로 끌어들여 투기성 외환거래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외환시장을 24시간 개방한다고 해서 바로 환율이 안정화될지는 미지수다. 상대적으로 심야 시간대 거래량이 적기 때문에 가격 변동성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동시에 과도한 쏠림을 막기 위해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 조정)과 국민연금 외환스왑 등 단기적 조치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스무딩 오퍼레이션은 한은이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팔고 원화를 사들이는 외환시장 매도 개입을, 국민연금 외환스왑이란 국민연금이 한은으로부터 직접 달러를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두 조치 모두 외환보유액에서 달러를 풀어 환율을 안정화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만큼, 앞으로 외환보유액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에 외환보유액은 전월보다 8억8000만달러 줄어든 4269억9000만달러였다. 특히, 외환보유액 감소에도 현금성 자산인 예치금은 전월 대비 25억9000만달러 늘어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향후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를 위한 추가 실탄을 마련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외환당국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윤경수 한은 국제국장과 이형렬 재경부 국제금융국장 명의의 메시지를 통해 “환율은 수급요인 이외에도 NDF 등 일부 투기적 외환거래가 변동성을 증대시킨 것으로 판단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펀더멘털(기초체력) 대비 과도한 변동성과 일방향의 쏠림을 결코 용인하지 않고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재차 경고했다. 구두 개입 직후 원/달러 환율은 다소 상승폭이 줄었으나 여전히 154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상 우려 등으로 코스피가 7500선 아래로 떨어진 8일 오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그래프를 살펴보고 있다. 윤창빈 기자


▶실물경제 타격 땐 금융권 전반 부실로=환율 상승 압력이 세지면서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도 자본 건전성과 유동성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 이들에게 닥친 과제는 자본 건전성 지표인 자기자본비율 사수다. 환율이 오르면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 가치가 커지면서 위험가중자산(RWA) 규모가 불어나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 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0.02%포인트가량 떨어지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한 달간 환율이 70원 가까이 올랐다는 점을 고려하면 CET1 역시 0.14%포인트가량 내렸을 것으로 보인다.

환율 상승은 외화 유동성 압박으로도 작용하는데 은행으로서는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지고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산정에도 불리하다.

금융권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단연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환리스크 헤지 능력이 취약한 중소 수출입 기업을 중심으로 대출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연체율 증가는 금융권 입장에서 부실여신 확대, 대손충당금 부담 가중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장기간 이어진 경기 둔화로 대출 건전성은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 비율은 2021년 3월 말(0.62%) 이후 5년 만에 0.6%대에 진입했다. 부실채권 잔액이 3개월새 1조원 이상 늘어난 여파다. 연체율 역시 같은 시기 0.56%를 기록했는데 같은 달 기준으로는 2016년(0.63%)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환율이 특정 금액을 넘어서는 것보다는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가 훨씬 중요하다”라며 “실물 경제로 전이되거나 중소기업 연체율이 올라가면 은행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커진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건전성 지표를 면밀히 점검하며 실물경제에 미치는 환율 상승 영향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수출입 기업 중 환율 변동에 직격탄을 맞는 취약 업종을 추려 업체의 리스크 영향을 분석 중이다.

외화 포지션도 ‘헤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만 은행 내부적으로 환율 변동에 따른 매도, 매수 포지션 지침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환율 급등에 따른 환손실 리스크는 크지 않다는 반응이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환율의 수준보다는 오르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은행에서는 대출금리 인상 움직임까지 감지돼 실물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은 이날 변동형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우대금리를 0.20%포인트 축소했다. 이에 따라 대고객 금리가 상승해 ‘KB스타아파트담보대출 Ⅱ’를 기준으로 금리 상단이 연 4.92%에서 5.12%로 조정됐다. 앞서 NH농협은행도 이달 1일부터 주담대 5년 고정형과 6개월 변동형의 금리를 0.2%포인트 인상한 바 있다.

이는 대출 규모를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면서 시장금리 전반에 상승 압력이 이어지고 있어 차주의 이자 부담은 당분간 확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내외 악재에 당분간 변동성 불가피=전문가들은 최근의 환율 급등이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국의 통화정책 긴축 우려가 맞물린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주말 사이 발생한 이란의 보복 미사일 공격 등이 국제 유가와 수입 물가를 자극해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봤다.

구조적인 국내 요인 역시 환율 상방 압력을 높이고 있는데, 미국의 인공지능(AI) 버블 붕괴로 반도체 경기가 꺾일 경우 국내 경제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상승압력이 지속되고 있고 1600원까지는 갈 수도 있다”며 “국내적 요인이 상당하고 미국 금리도 높아지고 있는데다 유가도 장기간 높은 수준에서 지속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주 내에 중동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환율 1550원 선이 뚫릴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지점장도 “6월 중순까지는 불가피하게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봤다.

이번 환율 위기 국면에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지점은 외환당국의 ‘방어 능력’이다.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 선이 위협받으면서 정부가 시장 개입에 나설 실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명예교수는 “통상 외환보유고를 통한 개입으로 환율을 막아서지만, 현재 보유고가 4000억달러 미만으로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당국의 개입 여력이 별로 없다”며 “실탄이 없다는 점을 간파한 투기 세력이 유입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이나 재정 지출 축소 같은 전통적인 정책 수단도 내수 침체 우려로 쓰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유일한 돌파구로 ‘한·미 통화스왑’ 체결 가능성을 기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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