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는 ‘사람’ 그 자체…각자의 감정이 몸의 언어로” [인터뷰]

‘몽유도원무’ 차진엽 안무가·김미애 등 인터뷰
연습은 서로에 대한 탐색부터 시작, 늘 새로워
우리 이야기 켜켜이 쌓아 만든 ‘모두의 산수화’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연습 장면 [국립극장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뿌연 족자가 열리자 산이 걸어 나온다. 먹을 떨궈 빚어낸 능선은 사람의 몸이 되고, 굽이치는 계곡은 생의 궤적이 된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곳을 향한 걸음에 굽이치는 생존의 풍경들이 스민다.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성취와 좌절, 순항과 좌초, 현실과 꿈…. 그 많은 반의어가 빚어낸 모순 같은 삶의 계절들이 지나간다.

무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으로 그려낸 수묵화다. 무대 위의 춤은 정답을 수행하는 기계적 몸짓이 아니다. 안무가와 무용수는 긴 대화를 나눴다. “연습이 끝난 어떤 날엔 그 자리에 서서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고 무용수 김미애는 돌아본다. 그날의 연습에 대한 피드백이나 작품에 관한 토론이 오가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저 “지금 우리의 상태,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전,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김미애)

대화 안에서 누군가는 자기 안의 벽을 허물어가는 과정을, 누군가는 긴 어둠을 통과하는 시간을, 누군가는 스스로의 불안을 털어놓았다. 안무가 차진엽은 그 이야기를 통해 다른 빛깔로 빚어진 ‘삶의 조각’들을 봤다. 오래도록 들었고, 침묵의 순간까지 몸으로 기록했다. 그 삶들이 모여 춤이 됐다.

오랜 대화, 먹(墨)이 번지듯 서로에게 스며드는 시간


‘몽유도원무’는 서로를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2022년 ‘더블빌’로 올랐던 초연 때부터 3연을 맞은 지금까지, 차진엽 안무가는 작품에 함께하는 무용수들과 서로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에게 재연·삼연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춤의 ‘재현’이 아닌 끝없는 ‘발견’이다. ‘발견의 주체’는 무용수다.

“안무라는 영역은 몸짓으로 표현되지만, 본질은 ‘사람’ 그 자체예요. 무용수가 살아온 삶의 궤적, 경험, 희로애락, 지금을 살아가는 마음이 다 춤으로 나오니까요. 그래서 무용수 개인이 너무 궁금해요. 전, 무용수라는 존재와 진짜 사랑에 빠져야 궁금증이 생기고 영감이 와요.” (차진엽)

이번 시즌 ‘몽유도원무’에 처음 합류한 무용수 황용천은 매일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는 “연습실에선 바로 연습을 진행하지 않고 나라는 사람, 그리고 안무가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가진다”고 돌아봤다. 작품에 관한 안무가의 생각을 들려주면, 무용수들은 하나둘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황용천은 “국립무용단에 많은 안무가들이 와서 작업을 하는데 이렇게까지 깊은 정서적 소통을 하게 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 방식 자체가 낯설었다. 무용수들은 주어진 작품, 주어진 안무를 추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몸의 언어로 꺼내는 주인공이 됐다.

차진엽 안무가(왼쪽)와 국립무용단 단원들의 ‘몽유도원무’ 연습 장면 [국립극장 제공]


“‘몽유도원무’를 함께 하기 전엔 단원들의 작업을 보며 뭔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내가 짜여진 스토리 안에 들어가면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작품 자체가 나의 이야기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죠. 그런데 안무가님이 저를 계속 관찰하고 제 삶을 들으며 안무를 수정해 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주셨어요.” (황용천)

연습은 경직된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함께 몸을 풀며 “오늘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차진엽)이 출발이다.

“닫혀있던 숨을 터주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죠. 물론 일분일초 숨을 쉬고 있지만, 연습실에 와서 무용수들과의 터치를 나누며 숨이 틔고 안정감을 느껴요.” (황용천)

‘매일의 루틴’ 같은 몸풀기의 과정이 아니다. 차진엽은 이를 통해 “서로 돌보고 신뢰하며 ‘이 공간 안에서는 무엇이든 다 가능하다’는 안전지대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숨을 나눈다는 것은 누군가를 돌보고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춤을 대하는 태도이자 내 몸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해요. 거기에서부터 정성스러움이 생기지 않나 싶어요.” (차진엽)

그의 이야기를 듣던 박혜지와 김미애도 고개를 끄덕였다. 박혜지는 “꼭 말을 하지 않아도 스킨십과 터치를 통해 마음이 통한다는 게 신선하고 자극이 된다”고 했다.

무용단이라는 수직적 구조 안에선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긴 어려운게 사실이나, 이 작업에서만큼은 달랐다. 그 변화가 김미애에겐 “내면의 본능을 깨워주는 경험”이었다. 안무가가 단단하게 다진 터전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계산하지 않은 감정이 ‘몸의 언어’가 된다. 레퍼토리가 된 작품을 여러 차례 올린다는 것은 무용수에게 반복적 작업일 수 있으나, 이 작품은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와 정서가 스미기에 늘 새롭다.

“고착된 작품을 할 때는 ‘리바이벌’의 개념으로 접근하는데, ‘몽유도원무’는 매번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요. 이번에 함께 하면서도 ‘왜 이렇게 낯설죠?’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흐르는 시간 속에서 바뀌는 나를 알아차리는 상태가 너무 재밌고 배울 게 많아요. 몸을 구현하는 무용수에게 달라지는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은 정말 중요해요.” (김미애)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국립극장 제공]


겨울을 지나 봄으로…무용수들이 통과한 시간


서로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은 생생한 ‘타인의 삶’을 확인했다. 어디서도 꺼내지 못했던 내면의 이야기가 몸을 통해 흘러나왔다. 무용수 개개인이 겪은 삶의 변화는 춤으로 고스란히 투영됐다. 그 시간은 누군가에겐 ‘성장 드라마’였고, 누군가에겐 ‘기다림’이었다.

박혜지는 ‘육아의 고충’을 온몸으로 안고 있던 2년 전 재연 당시 ‘몽유도원무’와 만났다. 그는 “한창 육아로 힘들어서 우울증이 세게 왔다”며 “인생에서 가장 다운됐던 시기였다”고 돌아봤다.

내색하지 않으려 부단히도 애쓰고 있을 때, ‘매일의 의식’처럼 둥그렇게 무용수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그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선배 김미애가 건넨 한마디 때문이었다. “혜지가 요즘 조금 힘든 일이 있나?”고 안부를 물었을 뿐이었다. “제 마음을 알아준다는 생각에 큰 위로가 됐어요.” (박혜지) 차진엽도 그 순간을 기억했다. “서로 눈물 흘리며 마음을 나눴던 순간이 참 소중했어요.” (차진엽)

엄마이자 무용수로 존재해야 하는 무게는 박혜지의 춤을 가두는 철창이었다. 그는 “어두운 표정을 숨기려 앞머리를 내려 얼굴을 가렸고, 춤을 출 때도 자유롭지 못했다”고 돌아본다. 2년이 지난 지금, 품 안의 아이는 여섯 살이 됐고, 박혜지 역시 마음속 무거운 사슬을 끊어냈다. 그는 “그때 비하면 지금은 ‘해방’이다. 완전히 천국”이라며 밝게 웃는다. 김미애는 “아이도 ‘몽유도원무’와 함께 성장했다”며 후배의 어깨를 다독였다.

황용천은 당시 박혜지의 사정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늘 ‘밝고, 완벽하게 잘 해내는 친구’라고만 생각했다.

“멀리서 보면 모두가 평온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정작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맞춰보면 그 속이 그 속인 거예요. 저마다 삶의 무게와 말 못 할 짐을 짊어지고 있어요. 그걸 들여다보는 과정 자체가 ‘몽유도원무’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본질인 것 같아요.” (황용천)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연습실에서의 박혜지(가운데) [국립극장 제공]


김미애에게도 이 작업은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 됐다. ‘과거의 나’를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 그는 온 신경을 자신에게 쏟아붓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였다고 회고한다. 덕분에 몸에 늘 잔뜩 힘이 들어가 풀 줄 몰랐다. 초연부터 긴 시간 ‘몽유도원무’를 작업하며 김미애는 ‘치유의 방법’을 찾아갔다.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내 것을 강요하기보다 먼저 마음을 듣고 기다리는 인내를 배웠어요. 예전엔 춤을 출 때도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면 지금은 놓아주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황용천과 박혜지는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엔 옆에 가면 베일 것 같은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있었는데, 이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선배예요. 우리의 고민을 진심으로 품어주는 ‘대지의 어머니’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요.”

함께 하는 작업…모두의 춤, 모두의 서사


무용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서사는 60분의 무대가 됐다. 때문에 ‘몽유도원무’는 안견의 500년 전 그림을 박제하듯 재현하는 무대가 아니다. 모두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완성된 ‘공동의 산수화’다. 다른 속도로 걷고 있는 인생의 ‘지난한 계절’과 가슴 한편 품은 ‘이상향의 도원’, 하나의 숨으로 얽히고 굽이친 ‘길의 지도’가 무대 위로 펼쳐진다.

차진엽이 김미애에게 건넨 것은 무한한 신뢰이자 ‘존재의 자유’이었다. 그는 “오래도록 무용계에서 이름을 알린 완성형의 무용수이기에 그에게 기술적인 동작을 더 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며 “김미애라는 무용수가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현존’의 경험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수십년간 자기 몸을 다스려온 무용수만이 내뿜는 압도적 ‘존재감’은 굳이 무엇을 보태지 않아도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아무것도 안 해도 다 전달되니 불안해하지 말라’는 확신을 주고 싶었어요. 사실 완성형 무용수일수록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는 게 가장 불안해요. 하지만 ‘김미애’이기에 가능한 것이 있어요. 가만히 서 있어도 관객에게 사유를 안겨주는 힘이죠. 관객도 그걸 느끼길 바랐어요.” (차진엽)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연습실에서의 김미애 [국립극장 제공]


김미애도 그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과 강박은 여전할지라도, 그에게 매일 자각이 찾아온다. 김미애는 “평생 한국 춤을 추며 살아왔지만 과거엔 몸으로 와닿지 않던 본질적인 지점들이 있었다”며 “‘몽유도원무’를 통해 결국 춤의 본질은 하나로 깊게 통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무용단 입단 30년 차가 된 지금도, 무대에 오르는 순간은 여전히 ‘처음’처럼 설렘과 불안이 공존한다고 했다.

“이번 무대에서 과연 어떤 내면의 상태로 관객과 마주하게 될지 온몸으로 온전히 경험하는 것 자체가 제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예요.” (김미애)

가만히 듣고 있던 후배 황용천이 그를 응원했다. 황용천은 “어렸을 땐 명인들이 탁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게 이해가 안 됐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아도 충분히 감동이 전해지는 것이었다. 미애 누나가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변화는 내면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매일 아침 모두가 똑같은 동작을 추는 연습실 풍경에서도 감지된다. 국립무용단의 기본 연습 동작인 ‘국립기본’으로 시작하는 아침마다 그는 후배들을 돌아본다. 김미애는 “거울에 비치는 무용수들을 보면서 저 친구 오늘 몸이 좀 안 좋은가,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보게 됐다”며 “그런 자신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이 작업 안에서 얻은 변화”라고 했다.

차진엽은 이 모든 과정이 협업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얼기설기 펼쳐놓은 그림이나 움직임이라는 재료를 주면 무용수들이 자기 양념과 맛을 더해 요리를 만들어내요. 여태껏 쌓아온 자기 몸의 궤적들을 다시 꺼내 현재의 상태와 마음을 스스로 융합할 때 더 새로워져요. 동작마다 무용수 스스로 새롭게 감각하며 ‘다름의 레이어’가 쌓일 때 하나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차진엽)

나만의 도원(桃源), 모두의 도원


긴 대화 끝에 무용수들은 서로의 계절을 마주했다. 지나온 시간을 곱씹으며 나의 변화를 마주한 지금, 조금은 달라진 시선으로 삶을 마주한다. 그 안에서 저마다의 ‘도원’을 발견했다.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국립극장 제공]


차진엽에겐 ‘몽유도원무’라는 작품 자체가 그가 걸어온 날들의 정화이자 환기였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안무 이후 주어진 ‘영광’과 별개로 그는 혹독한 시기를 보냈다고 고백한다. “의도하지도, 얻으려 하지도 않았는데 주어진 것들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컸어요. 욕심을 부려 결과를 만들어낸 작품들이 부끄럽고, 다 덮어놓고 싶었죠.” (차진엽) 의도적으로 휴식기를 가지며 ‘몸의 원형’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내놓은 작품 중 하나가 ‘몽유도원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치열한 생존의 비극이 있듯, 모든 것은 분리되지 않고 공존해요. 일상에서 상처받고 치열하다가도 연습실에서 환기되고 정화되어 다시 삶으로 투영되는 이 순환이 저에게는 도원이에요.” (차진엽)

김미애에게 도원은 ‘배움’ 그 자체다. 그는 “내가 이 작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의 상태와 시선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용수들을 보며 느끼는 모든 배움이 결국 감사함으로 이어진다”며 “이젠 ‘몽유도원무’를 떠나 다른 어떤 춤을 추더라도 이 안에서 얻은 배움의 온기가 다 연결되어 흘러갈 것 같다. 단단하고 유연하게, 그렇게 계속 저절로 흘러나오는 춤을 향해 가고 싶다”고 했다. 박혜지에게 ‘몽유’는 삶을 지탱하는 가냘프지만 단단한 소망의 춤이다. 그는 “사람은 아주 작은 소망이라도 있어야 살아갈 수 있지 않냐”며 “우리는 모두 각자의 마음속에 도원을 꿈꾸는 소망을 하나씩 품고 있다. 서로 사랑하면서 그 소망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나만의 몽유”라고 귀띔했다.

황용천의 ‘몽유도원무’는 ‘각자의 계절’이다. 누군가는 겨울을 지나고 있었고, 누군가는 봄을 맞았다. 또 누군가는 새로운 길목에 서 있었다. 그 계절들이 엮여 모두의 ‘몽유도원무’를 그렸다.

“우리는 모두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저마다 자기 안의 궤적에 따라 다른 계절을 걷고 있잖아요. 혜지의 계절은 지난번엔 겨울이었지만 이번엔 봄이 된 것처럼요. ‘몽유도원무’는 각 무용수가 자신이 통과하고 있는 계절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그것들이 무대 위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생태계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황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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