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권·외주 심의 등 무리한 요구로 사상 첫 파업 카드마저 무력화
독자 노조 전환 명분 뒤 ‘재정 독점’ 획책…비판 여론 속 차주 교섭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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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인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인근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는 모습. 인천=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 노동조합의 투쟁 동력이 급격히 상실되며 내부 균열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파업 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타결하며 실리를 챙긴 삼성전자 노조와 달리,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이미 사상 첫 1차 파업 카드를 허망하게 소진해 사측을 압박할 추가 카드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특히 집행부가 인사권과 외주 의결권 등 무리한 경영권 개입 요구를 고수하면서 협상을 고사 상태로 몰고 가자, 내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당장의 급여 삭감 공포와 고용 불안이 겹치며 집행부를 향한 반발과 균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쟁의행위의 대가는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월급 지급일이 다가오자 쟁의행위에 참여했던 임직원들 사이에서 급여 감소 폭에 대한 문의가 폭증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임직원들이 개인별 급여 명세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통해 선제적인 별도 안내를 진행했다.
파업과 준법투쟁에 참여한 이들은 이달 급여에서 파업 시간에 비례한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기본급이 차감되는 것은 물론, 준법투쟁 과정에서 거부한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이 전면 제외된 채 급여를 받게 된다. 24시간 중단 없이 돌아가는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정 특성상 교대근무와 연장근무 수당 비중이 큰 만큼, 쟁의행위 참여 직원들의 이번 달 월급은 개인별 차이가 있으나 최대 150만원가량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의 사내 여론은 얼어붙었다. 한 조합원은 “무노동 무임금인 거 알았는데 파업 며칠 했다고 이 정도 차감될 줄 몰랐다”며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파업 근태로만 90만원이 빠지고, 평소처럼 잔업과 특근을 안 하니 전월 대비 세전 120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며 구체적인 삭감 수치를 공유했다. 당장 생계 타격을 입은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집행부의 독단적 투쟁 방식에 대한 불신이 급격히 확산되는 양상이다.
집행부가 임금 협상이라는 본질을 벗어나 인사·경영권을 단체협약 문서에 명문화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굽히지 않는 점도 내부 분열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 직원은 “회사 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건지 너 죽고 나 죽자고 나오는 노조 같다”며 “답이 안 나오는 경영권 요구하지 말고 임금 및 처우 협상이나 빨리 마무리하자”고 성토했다. 주가 하락과 수주 차질을 우려하며 “공부 열심히 하고 스펙 쌓아서 입사한 직장을 잃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목소리도 나왔다.
이러한 반발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영위하는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의 특성을 무시한 채 삼성전자 등의 투쟁 프레임을 억지로 대입하려는 집행부의 오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직원은 “해봤자 몇백에서 몇천 더 받자고 매년 잘 나오던 밥상을 왜 뒤집느냐”라며 “특출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업맨들이 열심히 따오는 수주로 고객사 돈 받아 가며 연맹하는 CMO 업계에서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마느냐”고 비판했다.
조합원들이 급여 삭감과 수주 경쟁력 저하 우려로 가슴을 졸이는 사이, 노조 집행부가 뒤로는 자신들의 안위를 챙기기 위한 독소 조항을 무리하게 획책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내 여론은 분노로 들끓고 있다. 노조 집행부가 초기업 노동조합 탈퇴와 독자 노조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의원회와 조합원의 재정 감시 권한을 무력화하고 집행부의 이권을 강화하는 규약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집행부는 오는 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총회를 개최하고 ‘초기업 노조 탈퇴 안건’을 처리하겠다고 공지했으나, 정작 숨겨진 ‘규약 개정안’의 실체가 알려지자 조합원들은 깊은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 제21조(임원의 신분보장)를 보면, 통상적인 변호사비와 벌금 지원을 넘어 집행위원회의 자의적 판단만으로 임원진에게 ‘생계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의결권을 독점시켰다. 조합원들은 수당이 깎여 생계 타격을 입는데, 집행부는 조합비로 자신들의 생계비를 정당성 없이 지출할 수 있는 활로를 열어둔 셈이다. 여기에 개정안 제28조(회계) 3항에 ‘투쟁기금 적립 및 긴급 재정조치’ 조항을 신설하며, 대규모 기금 조성 권한마저 대의원회가 아닌 임원 소수의 거수기구인 집행위원회 의결 사항으로 귀속시켰다.
노동계 관계자는 “초기업 노조 탈퇴라는 거대 명분을 불투명한 재정 권한 집중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노조 민주주의 역행”이라며 “이번 개정안 추진은 조합 내부의 강한 반발은 물론, 집행부가 향후 대외적인 도덕성과 신뢰도 면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안팎의 압박 속에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사는 지난 한 달간의 공회전을 끝내고 차주부터 다시 임단협 협상 테이블에 앉을 전망이다. 사측은 노조가 보낸 교섭 공문에 대해 12일까지 답변 메일을 보낼 예정이며, 차주부터 본격적인 교섭이 재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